[야구는 구라다2] 강정호 삼진과 거래하다

스페셜 입력 2015. 3. 31. 11:08 수정 2015. 3. 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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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아마 벅 쇼월터 같으면 싸늘했을 거다. '어디서 저런 애를 데리고 왔지?' 하면서. 하지만 인상도 푸근한 클린트 허들 감독은 애지중지, 금지옥엽 다루듯 했다. 마치 피붙이라도 되는듯 살뜰히도 챙겼다.

일주일 내내 안타 하나 못쳤다. 붕~붕~ 강풍기만 돌렸다. 주변의 수근거림이 시작됐다. '레벨이 안맞는 것 같다, 메이저에서 뛸 실력이 아니다, KBO리그는 마이너 애들이 가는 곳이다.' 등등. 그래도 맘 좋은 그는 미동도 없었다. "괜찮을 거다" "적응기다" 하면서 무던히도 참아줬다. 개막 로스터? 당연히 포함시킬 것이라고 못 박았다. 편애한다고 오해받을까 걱정될 정도다.

그 동네 기자들마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 저렇게 한쪽 다리 들고 이상하게 치는 데도 계속 가만히 놔둔다며 지적질이 이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심각했다. 35번의 타석에서 무려 12개가 삼진이다. 안타는 고사하고, 셋 중에 한 번은 1루로 뛰어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타율이 곤두박질, 바닥을 뚫을 때 쯤. 드디어 터졌다. 그것도 알토란 같은 2개가 연달아서. 7회 적시타, 9회 결승 2점 홈런. 팀이 낸 4점 중에 혼자서 3타점을 올렸다.

허들 감독 신났다. 가뜩이나 뭐 칭찬해줄 것 없나 고민이었는데…. 기자들에게 보란듯이 자랑을 늘어놨다. "오늘 정말 좋았다. 변화구 떨어져도 잘 골라내고, 빠른 공은 받아쳐서 좋은 타구를 만들어냈다. 자신감을 되찾는 데 이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우린 꾸준히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면서 잊지 않고 한 가지를 일깨웠다. "그는 이제 투 스트라이크가 되면 레그 킥을 자제하고 있다. 전과는 달라진 부분이다. 오늘 아주 좋았다."

투 스트라이크 이후 레그 킥을 자제하다

레그 킥이란 아시다시피 왼쪽 다리를 들었다가 내리면서 치는 동작이다. 그렇게 치면 뭐가 좋은가. 체중을 실어 훨씬 더 강한 스윙을 할 수 있다. 타구를 멀리 보낼 수 있다는 뜻이다.

반면에 나쁜 점은? 거리 빼고는 거의 다 손해다. 빠른 볼에 대해서 타이밍 늦기 십상이고, 정확성도 떨어지며, 무엇보다 변화구를 추적하는 데 불리하다.

때문에 그의 미국 진출이 결정된 후로 많은 전문가들이 레그 킥을 포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에서야 통했지만, 150㎞ 넘는 투수들이 즐비한 곳에서는 어렵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계속 해왔던 타격폼이다. 별 문제 없을 것"이라며 마이 웨이를 고수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파이어리츠가 그를 스카우트 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란한 수비력? 정교한 컨택 능력? 아니다. '거리'다. 40홈런을 치는 유격수라는 게 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레그 킥을 하지 말라는 건, 핵심 경쟁력을 포기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의 고집은 충분히 납득된다.

하지만 문제는 부쩍 늘어난 삼진 숫자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35번의 타격 기회에 12번이나 당했다는 건 심각한 수치다(볼넷은 4개). 땅볼이나, 뜬공이나 어차피 똑같은 아웃 카운트 1개라고? 아니다. 무기력한 삼진은 본인이나 팀,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 뿐이다. 물론 진루타나 상대 실책에 대한 기대감조차 없애버린다는 실질적인 이유도 있지만….

결국 투 스트라이크 이후 레그 킥을 자제한다는 건 일종의 절충이다. 장타의 확률을 희생하더라도, 삼진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즉 투수와 조금 더 끈끈한 승부를 하겠다는 의지라고 봐야 한다. 소신을 조금 양보하는 대신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겠다는 거래다. 그래서 허들 감독도 이를 기특하게 여겨 "달라진 부분이 아주 좋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소신도 중요하다…그러나 변화도 용기다

강정호의 친구 류현진이 미국에 올 때 김병현이 그런 말을 했단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대로, 네 방식대로 해라. 남들 뭐라건 신경쓰지 말라"고.

물론 ML 선배의 말이 틀릴 리 없다. 감 놔라, 콩 놔라. 미디어에서 뭐라거나 말거나, 한국에서 하던 방식대로 소신을 갖고 이어가는 건 중요하다. 사이영상 수상자도 하는 불펜 피칭, 마이너리그 등판도 '필요없다. 안해도 된다'고 호기 넘친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때로는 차분하게 현실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변화를 선택하는 것도 용기다.

이치로는 미국에 오기 직전 일본에서 7년 연속으로 타격왕을 차지했다. 타율만 높은 게 아니었다. 그때는 한 해에 15~20개 정도의 홈런도 기록했다(평균 16.7개). 그러나 2001년 미국에 오면서 레그 킥의 일종인 시계추 타법을 버렸다. 빅리그 투수들의 수준, 구장 크기를 느끼고 스스로 수정을 택한 것이다. 이후 한 해 홈런은 평균 10개 미만에 머물러야 했다. 한 시즌에 100타석 이상 늘어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일본 시절에 비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셈이다.

강정호가 화려한 레그 킥으로 장타를 뿜어내는 장면은 모두가 고대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생존해야 한다. 그리고 진화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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