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스 스토리] 군용차량 타고 사라진 소년들..씁쓸한 죽음

하대석 기자 2015. 3. 3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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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식

나이 14살.

이제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소년

1.4후퇴 이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울에서 의정부까지 군용차에 몸을 싣고 신문을 팔러 다녔던 이대식 군.

어느 날, 소년은 밤 12시가 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 며칠 뒤 같이 신문을 팔던 소년의 친구가 가족에게 찾아왔습니다. 친구가 전해준 것은 이대식 군의 운동화와 신문 팔아 번 돈 몇 푼이 전부였습니다. 친구는 이대식 군이 몇몇의 소년과 함께 "돈을 많이 벌어오겠다"며 군용차량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가족은 수십 년 동안 이대식 군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심지어 1983년, 어머니는 백발에 성치 않은 몸으로 '이산가족 찾기 방송'에 출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들 이대식 군의 행방을 모른 채 돌아가셨습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2000년대 초 북파공작원의 실체가 세상에 공개되면서 북파공작원 유족에 대한 위로금과 보상금 지급이 이뤄졌습니다. 형제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방부에 이대식 군의 인적사항을 넘겨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것은 이대식군의 전사 통지서. 이대식 군은 특수임무 수행중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사망 당시 이대식 군의 나이는 고작 열다섯. 놀랍게도 그는 '북파공작원'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족은 수십 년이 지나서야 대식 씨의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이대식 군과 같은 소년 북파공작원들은 한두 명이 아닙니다.

심지어 파주의 몇몇 마을에서는 소년들을 강제 징집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북파됐다고 주장하는 이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약 2주동안 짧은 훈련을 받고, 새벽에 10여 명씩 무리 지어 임진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이들은 맨몸으로 첩보활동을 하며 사살되거나 체포되거나 혹은 실종됐다고 합니다.

소년들은 어째서 북파공작원이 됐던 걸까요?

당시 대북 침투 공작 책임자였던 김진수 씨의 증언입니다. 작전 관련 회의를 하던 중 한 소위가 독일 나치 소년단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어린 소년단을 모집해 첩보공작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진수 씨는 그 자리에서 반대를 했지만, 대장의 지시로 작전이 실행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식적인 기록은 그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 당시 살아 남은 북파공작원들과 부대 관계자들의 증언만 남아있을 뿐입니다.

국방부는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취재진의 요청에 '군사기밀'이라 답할 수 없다고 했으며, 지금까지 '소년 북파공작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록 밝혀지지 않았던 군부대의 어두운 그림자.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내몰렸던 소년들의 아픔은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SBS 스브스뉴스)

▶ '소년 북파 공작원' 실체 확인…쉬쉬한 정부

하대석 기자, 권재경 인턴 기자 subusunews@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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