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방'에 내몰리는 청년들, 외로움이란 절벽 앞에서..

이원광|정혜윤 기자|기자 2015. 3. 3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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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이원광 기자, 정혜윤 기자]

"'감사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이 두 마디가 전부입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한 원룸촌의 옥탑방. 휴학생 박모씨(28)는 울산인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취업준비에 애쓰고 있다. 친구 옥탑방에 얹혀살고 있으나 밤에 잠시 머물뿐 얼굴을 마주할 일은 드물다. 대화상대는 편의점 직원과 식당 아주머니가 전부. 박씨는 "어머니가 해주시던 밥상이 그립다"며 한숨지었다.

청년실업 장기화로 인해 원룸과 고시원 등 독방에 내몰리는 취업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취업 뿐 아니라 외로움이란 절벽에 몰리고 있었다.

서울 소재 4년제 사립대학 휴학 중인 박씨는 26일 오전 7시 도서관 자리를 맡기 위해 홀로 집을 나섰다. 아침식사는 2개에 1000원인 바나나와 주스 하나. 2시간 남짓 회계와 경영, 경제 분야 스터디를 마치면 다시 도서관에서 홀로 오후를 보냈다.

저녁 식사도 혼자다. 오후 6시30분 학교에서도 제일 싼 학생식당을 찾아가 홀로 밥을 먹는다. 학생식당을 찾는 이유는 단 두 가지. 가격과 속도다. 오후 6시쯤은 사람이 몰릴 수 있으니 일부러 30분 늦춰서 이곳을 찾는다. 저녁식사를 마치면 취업을 위한 외로운 싸움이 이어진다. 밤 11시30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귀가하면 밤 12시가 넘기 일쑤다.

고향 대구를 떠나 혼자 살고 있다는 김모씨(29) 역시 취업전선에서 홀로 싸우는 쳇바퀴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다. 보문동 원룸에서 지내는 김씨는 일주일 간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우울한 생각 한번 하면 끝도 없으니까… 되도록 아무 생각 안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을 응원하면서도 가슴 한켠에 우울함이 커졌다. 김씨에겐 지난해 5월까지 함께 살았던 친구의 빈자리가 컸다. 김씨는 "돈이 없으니까 친구와 함께 주로 산책을 하며 서로 위로했는데 지금은 혼자"라며 한숨지었다.

이성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박씨는 "연애를 포기한다는 게 헛소리인줄만 알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굳이 소개팅할 생각도 없다"며 "인연을 만나도 잘해줄 입장이 아니지 않나"고 덧붙였다.

이어 외로움과 자신감 상실에는 빈곤한 경제력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전했다. 최근 심하게 다퉜다는 김씨는 여자친구 이야기에 고개를 숙였다. 취업준비하다 연애를 시작했다는 김씨는 "이력서 사진을 보고 '좋은 데 가서 찍지 그랬냐'는 여자친구 말에 '돈이 없어 그랬다'고 소리를 쳤다"며 미안해했다.

외로움에 내몰린 취업준비생들을 더욱 슬프게 하는 건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이다. 취직과 결혼, 출산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 얼굴 볼 면목이 없다고 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지난 명절 친구분이 아기를 안고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며 "딱히 표현하지 않으시지만, 죄송스런 마음 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부모님께서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을 때 가슴이 찢어진다고 전했다. 김씨는 "어머니가 일전에 갑상선암 수술을 하셔서 약을 드시고 아버지도 성하신 데가 없다"며 "부모님 내용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혼자 많이 울었다"고 했다.

막연한 미래 앞에서 이들은 취업과 가족과의 삶은 가뭄 속 '비'와 같다고 했다. 박씨는 "외로움에 기약이 없다는 사실이 취준생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면서도 "기우제를 지내다보면 언젠가 비가 내리는 것처럼… '잘될거야' 혼자 그렇게 주문을 걸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광 기자 demian@mt.co.kr, 정혜윤 기자 hyeyoon1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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