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 재앙? 고령화사회 삐딱하게 보는 교과서

정지용 2015. 3. 31.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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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94개 단원 분석 결과

52%가 부양 부담 등 부정적 서술, '노령화' 대비에 국가 역할만 강조

청소년들 능동적 노후 설계 막아 "세대 갈등 키울 염려… 수정 필요"

"장수는 축복인데 돌아보니 문제가 생겼다. 돈이 더 필요하게 된 것이다. 연금이나 언제든 채용돼 일할 능력이 없다면 오래 사는 것은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다."(중학교 사회 교과서)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가족 내의 노인 위치가 불안정해졌다. 대부분의 노인이 빈곤, 건강, 악화, 무력감, 소외감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

현행 초ㆍ중ㆍ고교 교과서가 고령화 사회를 다루며 '오래 사는 것은 재앙'이라는 등 노인에 대한 부정적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나왔다. 교과서를 통해 노년 생활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형성되고, 세대 갈등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30일 박윤경 청주교대 교수 등이 한국교육과정학회에 제출한 '초중고 교과서의 고령화 사회 관련 내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으로 삼은 57권의 도덕, 사회, 경제 교과서는 대부분 고령화를 '노인 부양 부담의 증가', '경제 성장 둔화', '국가 경쟁력 약화' 등의 부정적인 관점으로 기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윤경 교수 등은 분석을 위해 초등학교 국정 교과서와 중고교 검정교과서 중 시장 점유율 상위 3위 안에 드는 교과서를 선정해, 이 가운데 고령화 및 노후 준비와 관련된 94개 단원을 뽑았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현상을 다룬 교과서들의 59개 단원 중 31개 단원(52.5%)이 부정적인 관점에서 서술됐다. 반면 '실버 산업 성장', '사회에 대한 노인의 영향력 증가', '노인들의 새로운 활동 증가' 등 긍정적으로 다룬 단원은 8건(13.6%)에 그쳤다.

이 같은 묘사는 청소년들이 노인을 고독, 슬픔, 외로움의 대명사로 여기게 하고, 조손 가정의 노인-손자(녀) 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윤경 교수는 "학교급이 올라가도 대체로 동일한 내용이 반복돼 학생들이 고령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며 "세대 갈등을 키울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과서들은 또 노령화 사회에 대비하는 주체로 개인보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5개 단원이 고령화 사회에 대비해야 한다고 서술했는데 이 중 국가와 사회의 대비에 초점을 맞춘 것은 21건(77.8%)으로 압도적이었다. '개인과 가족'이 대비해야 한다고 서술한 것은 4건(14.8%), 국가와 개인 모두를 언급한 것은 2건(7.4%)에 불과했다.

박윤경 교수는 "개인의 노후 준비를 복지 제도에만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데, 교과서들이 국가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학생들에게 적극적인 노후 설계의 필요성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교과서에선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고령화 사회에 대비한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부실한 수준"이라며 "실제 노후준비는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과 괴리감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윤경 교수는 "이러한 기술 방식은 청소년들이 고령화 측면의 다양한 측면을 이해하고 능동적인 노후 설계를 준비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며 "현재 학교 교육에서 고령화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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