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회장 비밀장부' 감췄던 컨테이너 야적장 가보니..

2015. 3. 30. 20: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르포 l 의정부 호원동 야적장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업계 불문율 탓에

리비아대사 금고에 장물까지 없는 게 없어

컨테이너 철문을 열자 어둠 속 서류 더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밀장부 몇권은 넣어둘 수 있는 금융권 개인 대여금고가 작았던 것일까. 방산비리 혐의로 구속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숨겨둔 각종 무기중개 사업 관련 자료가 무더기로 발견된 곳은 서울 도봉산 자락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 대로변 컨테이너 야적장이었다.

도심 외곽, 1.5t짜리 컨테이너 수십, 수백개가 쌓여 있는 컨테이너 창고 야적장에는 '구린' 물건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망한 자영업자의 한숨이 묻은 집기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한 이의 이삿짐, 서둘러 떠난 외국인의 짐까지 갖가지 물건들이 모여든다.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이면 'OK'서울 외곽 등 100여곳서 성업중이삿짐·망한 자영업자 집기부터은행 폐수표까지 보관품 다양"부부 이혼한 탓 이삿짐 떠맡아"

의정부시 장암동에서 고속도로로 향하는 큰길 안쪽 공터에는 컨테이너 수십개가 2층으로 나란히 쌓여 있다.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지게차가 서 있는 공터 입구에는 역시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ㄱ물류창고 사무실이 있다. 29일 오후 서울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 변영웅(42)씨가 컨테이너 문을 열고 트럭으로 자재를 싣고 있었다. "아무 때나 와서 개인 창고처럼 쓰고 있어요. 한번 임대하면 창고업체 쪽에서 따로 신경 쓰지도 않아요. 그냥 내 맘대로 열고 쓸 수 있으니까 편하죠."

이곳에는 변씨처럼 다달이 이용료를 내고 물건을 맡겨둔 자영업자들이 많다고 한다. ㄱ업체를 운영하는 조아무개(55)씨는 "이사를 앞두고 집은 빼줘야 하는데 막상 들어갈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삿짐을 맡겨놓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개인 창고처럼 이용되는 컨테이너 야적장은 물류 이동이 많은 인천과 수도권 외곽, 경기 고양·남양주·의정부·하남 등에 집중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은 전국에 100여개의 컨테이너 야적장이 있다고 했다.

업체마다 차이는 있지만, 컨테이너 창고의 가장 큰 경쟁력은 보증금이 없다는 점이다. 컨테이너 안에 어떤 물건을 보관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라고 한다. 의정부 지역의 경우 대부분 한 달에 15만~20만원의 임대료를 내면 1.5~2.5t 규모 컨테이너를 빌릴 수 있다. 변씨는 "자재가 비만 안 맞으면 되는데, 야적장에 시시티브이(CCTV) 카메라도 달려 있어 도난 걱정은 별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양한 물건이 모여드는 만큼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조씨의 경우 이삿짐을 맡긴 부부가 그새 이혼을 하면서 8개월 가까이 짐을 찾아가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애초 임대계약을 할 때 '두달간 연락이 없고 임대료를 내지 않으면 임의 처분하겠다'고 했는데, 선뜻 버리지도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규태 회장처럼 회사 장부나 서류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의정부시 의정부동 ㄴ물류창고를 운영하는 김아무개씨는 "내부 수리에 들어간 은행에서 폐수표와 각종 전표를 넣어두고 가기도 한다. 사무실이 좁은 업체의 경우 회계장부를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씨의 야적장이 보관을 맡았던 물건들은 길거리 '1000원짜리 뽑기'용 상품부터 단종된 구형 국산 승용차 부품 주형틀까지 다양했다.

이곳에서 가장 특이한 물건은 2011년부터 4년째 보관 중이다.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면서 본국으로 급히 돌아간 주한 리비아대사의 짐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김씨는 "자기 나라로 돌아간 대사한테 연락도 안 된다. 물건을 맡겼던 사람이 '폐기해도 좋다'고 했는데 금고까지는 폐기를 못 했다. 정부 기관 등에서 몇년 전 리비아대사 물건에 대해 문의를 해오긴 했는데, 정작 물건을 찾아가지도 않았다"고 했다. 업체 관계자들은 컨테이너 안에서 장물이 발견돼 경찰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컨테이너 창고 영업은 부동산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같은 이사철이 성수기다. 하지만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공터에 컨테이너를 쌓아두는 식의 컨테이너 창고 허가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대형 건물 안에 컨테이너를 넣어두는 '기업형 스토리지' 업체도 늘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그래도 창고 가운데는 컨테이너 창고가 제일 안전하다. 다른 사람이 열어볼 생각을 안 하니 도난 염려가 적다"고 했다.

의정부/허승 기자, 김성환 기자 raison@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할머니들 "기껏 1번 찍어줬더니 아그들 밥값 가지고…" 성토'성적 금기' 깨온 뒤부아 '알몸 승부수'[단독] 세월호 희생자 위자료가 8천만원…교통사고?[화보] 사람 잡는 키스…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니?[화보] '80년대 책받침'을 평정한 스타들

공식 SNS [통하니][트위터][미투데이]| 구독신청 [한겨레신문][한겨레21]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