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의 타인의 시선] 양복 아닌 유니폼, 은퇴는 차두리처럼

조회수 2015. 3. 30. 09: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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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는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게 가장 명예로운 일이다."

2007년 8월 22일. 지금은 수원삼성 지휘봉을 잡고 있는 서정원의 은퇴식이 열렸다.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서정원과 그의 가족들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한 바퀴 돌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 하프타임이었다. "멋지다"를 연발하며 보고 있는데, 우연히 만난 축구인이 한 말이 머리를 때렸다.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선수라. 감이 오지 않았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그려보기 어려웠다. 한국보다 축구역사가 긴 유럽 혹은 남미의 스타들이 은퇴하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정장보다 유니폼이 멋있기는 어렵지만, 유니폼을 입고 은퇴한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최고의 무대에 설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국가대표팀 경기 혹은 최고 레벨에 있는 소속팀 경기를 소화한 후 박수를 받는 기분은, 정말 경험해본 이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네딘 지단의 은퇴경기는 감동적이었다. 지단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아름다운 결말을 맺지 못했지만, 이보다 앞선 시점이었던 2006년 5월 7일, 소속팀 레알마드리드에서는 누구보다 행복하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지단은 비야레알과의 리그 경기에서 8만 팬 그리고 가족 앞에서 은퇴경기(홈)를 치렀다. 지단은 이날 골을 터뜨리며 마지막까지 화려하게 장식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팬들은 지단의 유니폼이 그려진 종이를 펴 들고 영웅의 마지막을 기억했다. 이날 지단과 유니폼을 교환한 후안 리켈메를 비롯한 비야레알 선수들도 박수를 보냈다.

2011년 6월 8일. '축구 황제' 호나우두의 은퇴식은 또 어땠나. 말이 은퇴식이지 루마니아와의 A매치 날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코파아메리카'를 준비하고 있었다. 급하다면 급하다고 할 수 있는 시기에 브라질축구협회는 황제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호나우두는 이날 전반 30분에 교체로 들어가 약 17분을 뛰었다. 골은 넣지 못했지만, 현역 최고 선수인 후배 네이마르와 호비뉴의 패스를 슈팅으로 연결할 수 있었다. 이어진 하프타임에는 호나우두의 은퇴식이 벌어졌다. 호나우두는 은퇴할 때도 가장 화려했다.

지단의 은퇴식 이후 9년, 호나우두의 은퇴경기 이후 4년이 흐른 2015년. 한국에서도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선수를 볼 수 있게 됐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17일 우즈베키스탄, 뉴질랜드와의 친선 2연전에 나설 선수 명단을 발표하면서 차두리를 언급했다. 그는 지금껏 한국에서 대표 선수들이 은퇴할 때는 다소 소극적인 형식이었다고 들었다. 하프타임 때 은퇴식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이벤트보다는 은퇴 경기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차두리를 뉴질랜드와의 친선전에 차두리를 선발 출전시키겠다"라며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전반이 끝나기 전에 교체시켜 팬들의 박수를 받게 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차두리는 지난 27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는 뛰지 않았다. 그는 이 경기가 끝난 후인 28일 대표팀에 합류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오는 31일 서울월드켭경기장에서 벌어지는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은퇴식이 아닌 은퇴경기를 치른다. 차두리는 이미 특별한 유니폼도 지급 받았다. 이름과 배번(22)이 흰색이 아니라 황금색이다. 차두리는 황금색 마킹이 된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누비게 되고, 경기 중에 박수를 받으며 국가대표로서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이 같은 마무리는 지난 2002년 황선홍과 홍명보의 은퇴경기 이후 13년이다. (이운재는 은퇴경기에 출전 후 정장을 입고 하프타임에 행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해 평가하기엔 이르다.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뒀지만, 아직 '2018 러시아월드컵' 예선전과 '2015 EAFF 동아시안컵'과 같은 중요한 일전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박수를 받을만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타를 어떻게 대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이번 은퇴경기는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차두리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기 때문은 아니다. 차두리의 은퇴식이 우리의 인식을 바꿔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차두리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나서며 모든 관중에게 박수 받는 모습을 본 선수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겠나.

"은퇴는 차두리처럼"

덧)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하는 차두리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차두리는 선수로서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를 넘지 못했지만, 다른 종류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차두리는 선수들의 스타고, 팬들의 영웅이다. 초등학교 시절 자신의 '2002 한일월드컵' 활약을 TV로 봤던 젊고 경력이 없는 선수들에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선배, "나는 많이 져 봤다. 선수들을 돕고 싶다"라고 자신의 아픔을 언급하며 마음의 문을 열 줄 아는 이다. 차두리와 함께하는 선수들은 차두리의 일이라면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것도 이때문이다.좋은 선수지만,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은 현실이다.좋은 선수이자,좋은 사람인 차두리.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

글= 류청 풋볼리스트 취재팀장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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