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손흥민을 긴장시켜서 우즈벡전이 좋았다

홍재민 입력 2015. 3. 28. 11:08 수정 2015. 3. 28.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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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대전] 공격 에이스 손흥민은 자유로웠다. 경기 내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활기찼다. 하지만 결실이 없었다.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된다"라는 일선 지도자들의 말이 생각났다.

27일 저녁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평가전을 가졌다. 밤공기는 쌀쌀했지만 대전월드컵경기장을 찾은 3만8천 관중은 태극전사를 열렬히 반겼다. 붉은악마가 아닌 일반 관중석에서 파도 응원이 먼저 시작되었다. 1월 아시안컵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것 같아 반가웠다.

하지만 겉만 같을 뿐 속살은 크게 달랐다. 이날 선발 출전한 양 팀 22명 중 아시안컵 8강전을 뛰었던 선수는 7명뿐이었다. 한국은 손흥민, 이정협, 곽태휘 외에 8명이 바뀌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실험을 시도했다. 그 덕분에 이재성과 정동호는 A대표팀 첫 소집에서 데뷔하는 행운을 선물받았다.

자타공인 공격 에이스인 손흥민은 왼쪽 측면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92년생 동갑내기 친구 이재성이 오른쪽에 섰다. 선택권은 손흥민이 쥐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손흥민은 여기저기 생기는 공간을 찾아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을 이재성이 따라 맞추는 식이었다.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지가 쉼 없이 이루어졌다.

손흥민은 이른바 '프리롤(free role)'이었다.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가 지닌 드리블, 스피드, 테크닉 그리고 결정력을 감안하면 대표팀 경기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2015년 대한민국의 공격 전술은 손흥민에게 맞추는 편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게 잘 안될 때이다. 손흥민의 공격은 파괴력은 큰 만큼 안 풀렸을 때 실망감도 크다.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이 그랬다. 전반 11분 공격이 상징적이었다. 환상적인 패스 연결이 페널티박스에 진입한 손흥민까지 연결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터치가 길어 기회가 무산되고 말았다. 마치 손흥민 개인의 실수로 요약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손흥민의 자유가 지나간 곳마다 실망감만 남아있었다. 구자철의 선제득점 도움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끊기고 저기서 막혔다. 손흥민이라서 팬들의 탄식은 더 컸다. 설상가상 반대편에 있는 이재성이 펄펄 날았다. K리그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젊은 미드필더는 거침없었다. 상대 진영에서 순간적으로 생기는 공간을 잘도 찾아냈다. 친구이자 에이스를 무안하게 만드는 맹활약이었다.

후반 들어서도 손흥민은 풀리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한 시간을 채운 손흥민을 남태희로 교체했다. 손흥민은 고개를 떨군 채 벤치로 향했다. 기자석이 너무 멀어 표정까지 볼 순 없었지만 아마도 자신의 플레이가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도 손흥민은 평소답지 않게 인터뷰 없이 지나쳤다.

한 경기만으로 손흥민을 나무랄 순 없다. 주장 기성용은 "6월 시작되는 월드컵 지역예선, 더 나아가 2018년 월드컵까지 길게 바라보고 있으니 이 한 경기만으로 판단하긴 어렵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61분이란 출전시간은 그의 부진보다 체력과 컨디션을 위한 코칭스태프의 배려라고 이해해야 옳다.

손흥민에게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은 누구나 겪는 '운수 나쁜 날'이었을지 모른다. 그가 찬 프리킥 2개가 어떻게 날아갔는지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귀중한 교훈으로 삼기에도 딱 좋았다. 지금 손흥민은 어느 유니폼을 입든 붙박이 주전인 동시에 에이스 노릇을 한다. 팬들은 그가 항상 잘하리라 기대한다. 그런 기대는 동기부여가 되어야지 부담감으로 변질되면 곤란하다.

이 한 경기만으로 손흥민이 벤치로 밀리진 않는다. 반짝반짝 빛났을지라도 이재성은 여러 면에서 손흥민에 비해 미숙하다. 손흥민은 이미 FIFA월드컵, AFC아시안컵, UEFA챔피언스리그, 분데스리가를 경험한 프로 5년차다. K리그 클래식 2년차 이재성과는 큰 차이다. 더군다나 손흥민은 지금 피곤하다. 지난 시즌, 브라질월드컵, 올 시즌 전반기, 아시안컵, 후반기 등으로 계속 뛰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평가전은 손흥민에게 자기발전을 위한 선제적 경험이 되어줄 수 있다. 쭉쭉 뻗어나가는 지금처럼 모든 일이 잘 풀릴 수만 없기 때문이다. 레버쿠젠은 물론 대표팀에서도 경쟁자들은 많다. 2002년 이후 한국 축구에는 인재가 미드필드에 집중되고 있다. 대표팀 전북 콤비인 한교원과 이재성 모두 측면 미드필더들이다. 이청용, 남태희, 구자철, 김보경 등 빽빽하다. 언제 벌어질지 모를 주전경쟁을 부담 없는 자리에서 미리 맛봤다고 할 수 있다.

선수단을 태운 버스가 떠나고 출입통제가 해제되었다. 늦게까지 남았던 팬들은 선수 출입구 쪽에 붙어있던 경기 포스터를 조심스레 떼내며 즐거운 A매치 현장관전을 마무리했다. 경기 중 함성과 박수로 짐작하건대 그들에게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은 아마도 살아 움직이는 손흥민을 봤다는 사실일 것 같다. 팬들은 손흥민을 기대한다. 평가전이라는 여유, 경쟁자가 던진 교훈, 팬들의 기대를 손흥민이 긍정적으로 섭취하면 더 좋은 선수로 발전할 수 있다.

글=홍재민, 사진=FA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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