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야구 똑바로 하이소" 감독도 구단도 화들짝

박관규 입력 2015. 3. 27. 21:09 수정 2015. 3. 27.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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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Cover Story] 사령탑까지 흔드는 팬심

작년 5개구단 감독 교체 입김

롯데 골수팬 구단 인수 운동도 모기업 악영향 학습효과 작용

'팬심의 압박' 찬반 맞서

"특정팬 목소리 지나치게 부각, 팬 요구 점점 과격해질 것"

프로야구 개막을 하루 앞둔 27일 오후 황규호(42)씨는 부산시내 곳곳을 다니며 야구단 설립 참여의향서를 돌렸다. 협동조합을 만들어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하겠다는 뜻이다. 석 달전 시작할 때만 해도 지인을 중심으로 의향서를 돌렸지만 이젠 처음 본 부산시민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선다. 이날 해운대의 한 대포집에서 만난 야구 팬으로부터 수고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고마(그만) 해라"고 질책하는 팬들도 있었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골수 롯데 팬인 황씨는 신임 감독 선임을 둘러싼 구단 내 마찰과 구단의 선수단 사찰 문제가 불거지자 1인 시위와 촛불집회에 참석한 뒤 아예 시민 구단 설립에 발벗고 나섰다. 지난 달엔 부산지역 시민단체, 팬들과 함께 롯데의 시민구단 전환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황씨는 "인터넷 기사 댓글에 허황된 대선 공약을 걸었던 '허경영 같다'고 묘사하지만 진정한 야구팬이라면 이런 롯데를 어찌 두고만 보겠는가"라고 말했다. 조합원 모집과 자금 모금 등 여러 장벽으로 보면 실현 불가능한 꿈이다. 하지만 지금의 프로야구 팬심을 보여주는 사례다. 프로야구 구단을 특정 기업 소유로 보지 않고 사회적 구단 내지 공공 자산으로 보는 의식수준이다. 황씨는 실제로 "자이언츠 주인은 대기업이 아닌 부산 시민"이라고 했다.

프로구단 절반, 팬을 위한 감독 선임

지역 자산으로 보는 팬들의 사고와 팬 게시판, 소셜네크워크를 통한 여론 형성이 결합되면서 팬 영향력이 갈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성적부진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지난해 10개 구단 감독 교체의 절반이 사실상 팬들의 압력에 따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3년 임기가 보장됐던 송일수 두산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뿐만 아니라 재계약 6일 만에 이루어진 기아 선동열 감독의 자진 사퇴도 팬들의 반대에 따른 것이었다. 롯데(공필성(내정)→이종운) SK(이만수→김용희)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밑바닥을 헤매고 있는 한화의 구단주 김승연 회장은 1인 시위에 서명운동까지 벌인 팬들의 요구를 수용, 개성이 강해 껄끄러운 김성근 감독을 영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감독 교체ㆍ선임이 그간 그룹 오너의 선호나 프런트 입김에 좌우됐던 점을 감안하면 팬심에 대한 구단의 자세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A구단 관계자는 "팬 의견을 시즌 중에 반영할 수 없지만 시즌 종료 후 구단을 리빌딩할 땐 팬심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까지 예민하지 않았다. SK에서 세 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김성근 감독이 2011년 시즌 도중 경질되자 문학구장에 프런트 규탄 플래카드를 내걸고, SK유니폼을 모아 불태울 정도로 격렬히 반발했지만 구단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금 프로구단이 팬심의 향배를 주시하는 것은 반발의 조직화와 함께 모기업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학습 효과가 작용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10개 구단을 대상으로 한 팬심 수용성 정도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 구단은 팬심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팬 의견을 모니터링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적극 살펴본 뒤 사후조치 하거나 살펴 본다'로 10개 구단 모두 대답했다. 모 구단은 SNS 등에서 팬들의 의견에 답글을 올리는 등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한 신생팀 프런트는 "야구의 일부로서 팬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고 좋은 의견을 반영하는 것은 구단의 임무"라고 말하기도 했다.

팬들 "경영논리 걷어내고 야구 즐길 수 있는 환경 조성해라"

물론 팬심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서는 양론(兩論)이 맞선다. 한 구단 홍보팀장은 "온라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부 팬의 의견이 전체 팬심인 것처럼 잘못 알려질 위험이 있다"며 "무조건 팬 의견을 구단이 따르다 보면 팬 요구도 점점 과격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설문에 응답한 또 다른 구단 프런트는 "팬들이 결과론적인 비난을 쏟아내는 데 이를 받아들이다 보면 제대로 야구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로구단 감독을 역임한 K씨 역시 "팬을 우선 고려하게 되면 경기 자체에 집중할 수가 없고 내 안위를 생각하는 플레이를 지시할 수 밖에 없다"며 "결국 팬들에게도 멋진 경기를 보여줄 수 없어 프로야구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팬심의 적절한 수위를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일부 팬들은 시즌 중에 연패 등 문제가 불거지면 팬 게시판 등을 통해 선수는 물론 감독, 프런트 교체를 요구하며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팬들의 입장은 다르다. 두산 팬인 회사원 정모(29)씨는 "특정 팬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부각되는 측면이 있지만 구단이 선수들이 야구를 잘 할 수 있는 환경 조성보다는 구단의 독단이나 경영논리로 운영한다"며 "팬들의 과한 행동도 이 때문에 나온다"고 말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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