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0만원 이력서 사진도 아깝지 않다

차완용 기자 입력 2015. 3. 27. 05:44 수정 2015. 3. 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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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내일'은 있다 / 르포 - 애끓는 '현장' 속으로

실로 오랜만에 대학교 캠퍼스에 발을 디뎠다. 지난 2005년 2월 졸업식을 끝으로 대학 캠퍼스와의 연을 끊었던 기자에게 모처럼 대학교 캠퍼스를 찾을 기회가 온 것이다. 물론 기쁘고 재미있는 일 때문은 아니지만(취재) 모처럼 밟은 대학교의 잔디는 기자에게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제 갓 겨울을 벗어난 3월 셋째주, 기자에게 취업 전선에 내몰린 이들을 취재하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졌다. 어디를 어떻게 취재해야 할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대학생이 돼보자. 직접 들어가 보자.' 이렇게 기자는 취업준비생(취준생)의 열기가 가장 뜨거울 대학 현장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여기에 한가지 더. 좀 더 생생한 현실을 들여다 보기 위해 한명의 조력자를 섭외했다. 올해로 취업준비 2년차를 맞은 이상민씨(가명·29). 이씨는 서울 소재 S대학교를 지난해 졸업했으며 공기업 취업을 준비 중이다. 취업준비를 위해 노력하는 이씨의 일과를 하루 종일 함께하며 대한민국 취준생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서울시내의 한 대학교에서 학위수여식을 마친 졸업생이 취업정보가 붙은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뉴스1 양동욱 기자

◆ 취준생들로 도서관마다 '열공' 모드

지난 18일 오전 8시. 오랜만에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점퍼를 걸쳤다. 구두 대신 운동화도 신었다. 노트북을 대신해 한동안 메본 적이 없는 백팩도 짊어졌다. 그리고 향한 곳은 S대학의 도서관. 이곳에서 이씨를 오전 9시에 만나기로 했다.

취업재수생인 이씨는 오전 6시 자신의 모교인 학교 도서관에 도착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이유는 조금이라도 늦으면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서다. 입구에서 이씨와 만나 도서관에 들어섰다. 도서관 안에는 듬성듬성 빈 자리가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책들이 놓여있어 빈 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이씨가 옆자리를 맡아줘 자리에 착석할 수 있었다.

이씨의 공부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봤다. 모두 토익, 토플, 공무원수험서와 한자능력시험서 등을 펼쳐놓고 공부에 빠져 있었다. 한시간쯤 지난 뒤 이씨와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미 밖에는 공부하다 잠시 나온 학생들이 여럿 보였고 이들의 얼굴은 너나없이 심각했다.

이때 이씨가 도서관 분위기를 대략 설명했다. 이 시간(오전 10시)에 도서관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취준생이다. 대학졸업을 앞둔 취준생은 물론 취업재수생과 입사를 포기하고 자격증시험이나 고시 등에 매달리는 이들이라는 것.

그는 한가지 더 귀띔했다. 취준생에게는 취업시즌인 이맘때가 1년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기다. 이씨는 "(나는) 공사만을 목표로 입사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쓰지만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일반기업에도 원서를 넣어야 하는지 고민된다"며 "아마 다른 취준생도 자신이 원하는 기업만 선택할지 아니면 가용범위를 넓혀 다른 기업에도 원서를 써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단 내가 목표로 한 직장이 공기업이니까 올해까지는 공기업만 원서를 넣을 것"이라며 "올해가 마지막이고 내년에는 일반기업체에도 원서를 넣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시나 자격증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도서관 앞에서 만난 공인회계사시험 준비생인 박준민씨(28)는 "기업들이 채용공고를 내면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며 "집에서도 어디든 취직하기를 은근히 바라는 것 같은데 (공인회계사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어서 쉽게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후 다시 도서관에 들어가 2시간쯤 더 공부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상반기 채용에 응시하기로 한 이씨는 영어와 전공분야인 무역과 관련된 서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봤다. 슬슬 지루해지려는 찰나. 이씨가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우리 둘은 이씨가 평소 점심을 해결한다는 학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식당은 점심시간답게 인산인해였다. 이제 갓 입학한 새내기부터 고학년생까지 한데 섞여 시끌벅적했다. 즐거울 것만 같았던 식사시간. 하지만 곳곳으로부터 취업에 대한 이야기가 들린다. 아마도 올 상반기 주요기업들의 공채시즌이 시작된 영향으로 보였다.

건국대학교 법학관에서 열린 기업채용설명회. /사진=뉴스1 정회성 기자

◆ 10만원짜리 사진부터 학원까지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차를 한잔한 후 이씨는 특별히 들를 곳이 있다고 했다. 학교 인근이 아닌 지하철을 이용해 강남역으로 향했다. 이씨가 찾은 곳은 다름 아닌 사진관. 이번에 입사지원서에 붙일 사진을 찍으러 온 것이다. 이곳에서 기자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 사진을 찍기까지 1시간가량 기다리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신천지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씨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취업사진을 잘 찍기로 소문난 곳이어서다. 이른바 '취업사진 전문사진관'. 입사하려는 회사에 맞게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해주고 옷도 빌려준다. 특히 1대 1 리터칭이라며 얼굴 대칭을 맞춰주고 배경도 바꿔주며 여기저기 손도 봐준다. 원하면 옷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지원자의 기를 살리는 이야기도 들려주는 등 가격이 비싼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사진을 찍은 후 다시 학교 도서실로 돌아왔다. 이때 시간이 오후 4시. 이때부터 약 3시간동안 더 공부에 집중했다. 이후 가방을 챙겨 다시 장소를 이동했다. 이동한 곳은 다름 아닌 종각. 바로 영어회화학원이었다. 이씨는 매일 오후 8시부터 1시간 동안 이곳에서 비즈니스 영어회화 수업을 듣는다. 벌써 1년가량 됐다.

이씨는 "요즘에는 어학연수나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워낙 많아 영어회화가 기본"이라며 "최소한 입사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지 않도록 회화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요즘은 토익이나 토플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며 "대기업이나 공사에 들어가려면 학벌, 자격증, 외국어 등 무엇 하나 남들보다 뒤처지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학원수업은 같이 들어갈 수 없어 인근 커피숍에서 이씨를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고 나온 이씨와 이씨의 집으로 향했다. 이씨는 자신이 나온 대학교 인근에서 지금도 자취를 하고 있다. 집이 경상도 진주인 까닭에 대학 때부터 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했는데 아직 취업을 못한 탓에 학교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학교 근처가 공부할 수 있는 도서관이 가깝고 저렴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그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이씨의 집은 4평 남짓으로 침대와 책상, 행거 등이 자리를 거의 차지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곳에서 이씨와 커피 한잔을 마시며 취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씨는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졸업 후 아직 취직을 못해 초조하다. 조금만 더 늦으면 취업 자체가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하고 취직을 해서 자리를 잡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결정하는 직장이 앞으로 평생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내가 원하는 회사에 꼭 들어가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꼭 취업에 성공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

www.moneyweek.co.kr

) 제37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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