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내년 2월까지 '미등록' 캠핑장 처벌 못해..안전기준도 없어

박일경 2015. 3. 25. 18: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관광진흥법 부칙에 벌칙조항 유예기간 둬
6개월 유예기간 내 등록만 하면 문제없어
부실한 안전기준..사실상 없는 것과 같아
사진=세계일보 DB

지난 22일 강화도 캠핑장 화재 사고로 5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관련법에 따르면 내년 2월까지 '미등록' 야외캠핑장을 처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등 중대한 입법 오류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가 행정적으로도 캠핑장에 대한 안전기준도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시행규칙상 별표에 기술된 안전기준이 허술해 소방당국의 점검사항이 아닌, 사업주 보고사항으로 돼있어 사실상 시설기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경찰이 이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강화도 캠핑장에 대한 소방당국의 안전점검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법령상 당국의 점검사항도 아니고 점검해야 할 의무도 부과되지 않아 전국의 다른 유사한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25일 본지가 확인한 결과, 관광진흥법이 지난 2009년 3월 '여행업·관광숙박업·관광객 이용시설업 등을 경영하려는 자는 특별자치도지사·시장·군수·구청장에게 등록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개정됐다.

하지만 강화 캠핑장과 같은 '야영장업'에 대한 등록절차는 별도로 규정되지 않다가 올해 2월3일 '야영장업은 야영에 적합한 시설 및 설비 등을 갖추고 야영편의를 제공하는 시설을 관광객에게 이용하게 하는 업'이란 부분이 추가됐다.

문제는 야영장업에 대해 등록의무를 새로 지게하면서 유예기간을 6개월 동안 둔 까닭에 시행일이 오는 8월4일부터라는 데 있다.

법이 바뀌면서 새롭게 규제를 받게 된 야영장업에 대한 유예를 인정한 바람에 기존 미등록 야외캠핑장은 올해 8월4일까지로 돼있는 유예기간 내에만 주무관청에 야영장업 등록을 완료하면 아무 문제없이 합법적인 사업장으로 인정받게 되는 입법 공백이 초래됐다.

이로 인해 관광진흥법 상 벌칙조항도 미등록 캠핑장에는 무용지물이 됐다. 관광진흥법은 등록하지 않고 여행업·관광숙박업·관광객 이용시설업 등을 영위한 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으며, 징역형과 벌금형을 병과할 수 있다.

게다가 관광진흥법 위반행위를 하면 그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법인과 개인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 양벌규정도 두고 있으나, 8월4일까지인 유예기간 때문에 정작 미등록 캠핑장의 실소유주와 사업주는 처벌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쉽게 말해서 과거 이 법에서 규제가 없던 야영장업은 올해 8월4일까지 주무관청에 별개의 등록을 하지 않은 미등록 캠핑장이라 하더라도 실정법상 미등록사업장으로 단속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특히 관광진흥법에 따라 야영장업의 등록을 한 자는 문화체육관광부령인 관광진흥법 시행규칙에 의한 안전 및 위생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강제조항도 있으나, 이 역시 지난 2월3일 개정되면서 6개월간의 유예기간을 설정해 시행일이 올 8월4일부터다.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캠핑장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안전·위생 등 시설수준이 법으로 정한 기준에 미달되더라도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마저 내릴 길이 막힌 셈이다.

국립과학수사원과 전기안전공사 관계자들이 지난 22일 인천 강화군의 글램핑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으로 현장 감식을 벌이고 있다. 강화=이재문 기자

그렇다면 올해 8월4일 이후에는 이때까지도 등록하지 않은 미등록 캠핑장을 벌할 수 있게 될까. 답은 아니다. 개정 관광진흥법은 부칙 단서에 '개정규정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고 또다시 유예기간을 6개월 더 두고 있다.

한 마디로 미등록 캠핑장이 등록하지 않은 채 내년 2월까지 아무런 규제 없이 영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내년 2월까지는 강화 캠핑장 화재와 동일한 사고가 재발해도 실정법 위반은 없다는 어이없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이달 불거진 '미등록' 인천 강화도 글램핑장 화재 사태에도 "법 위반사항은 없다"는 전날 내려진 이 사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유권해석은 그래서 논란이 된다.

이처럼 관광진흥법과 대통령령인 관광진흥법 시행령, 문화체육관광부령인 관광진흥법 시행규칙상 유예기간이 제각각이다.

하위법령은 상위법상 기간을 준수하는 게 원칙인데, 문체부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도 허술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검토과정에서도 관련법령·법규상 유예기간을 맞추는 기본적인 입법 작업조차 안 하는 실수를 범한 것으로 보인다.

안전사회시민연대는 "글램핑용 텐트시설이 가연성 소재이고 전열기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관계부처가 당연히 파악하고 화재 안전대책을 강구했어야 했지만 실태 파악도 못했다"고 질타했다. 이 단체는 ▲캠핑장 관련 시설의 허가제 전환 ▲야영시설에 대한 전수조사 ▲근본적인 화재 안전방안을 담은 법률 제정 등 전부 3가지 사안에 대한 시정조치를 정부에 요구했다.

관광진흥법 시행규칙상 야영장업 시설별 일람표. 자료=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부령인 시행규칙상 별표의 안전기준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소화기, 확성기 등 방송장비, 안전게시물, 대피공간, 관리요원 등에 관한 구체적인 기준을 밝히고 있는 여타 시설과 달리, 유독 야영장업에 대해서는 등록하려는 사업주 스스로가 공란을 채워 등록 시 첨부자료로 자율 제출하게 하고 있다. 이마저도 등록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소방당국 의무점검사항이 아닌, 사업주 자체보고사항이어서 야외캠핑장에 대한 안전기준이 없는 꼴과 다름없다. 이번에도 소방당국의 안전점검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 같은 제도 하에서는 예견된 '인재'(人災)인 것이다. 법률상 당국의 점검사항도 아니고 점검해야 할 의무도 없다.

문체부의 허술한 정부안에 국회 입법권 직무유기까지 겹친 이번 참사는 비금융(제조업)·금융산업은 각종 규제로 묶어두고 국민생명과 직결되는 안전관련 규제는 '내수를 살리겠다'며 서비스업 및 레저산업 활성화를 위한 규제완화 명문으로 풀고 있는 거꾸로 가는 정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다.

여객선 가동연수를 늘려줘 노후화된 여객선으로 운항하다 과적에 침몰한 세월호 참사와 '판박이'다. 책임을 물어 해양경찰청을 해체하고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기도 했으며, 올해 예산에 안전예산을 대폭 확대했다고 정부는 호들갑을 떨지만, 안전 불감증은 여전하다.

안전시민연대는 "정부는 세월호와 경주 마우나리조트, 고양터미널 화재, 판교 환풍구 붕괴 등 각종 참사 직후에는 종합 대책을 내놓는다고 요란을 떨다가 시간이 흐르면 흐지부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박일경 기자 ikpark@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