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사회] 사이비 과학과 정치인 / 김우재

2015. 3. 1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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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 신앙의 문제에 사회가 관여할 이유는 없다.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다. 얼마 전 디즈니랜드에서 발병한 홍역이 미국 사회를 긴장시켰다. 백신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백혈병에 걸린 자녀를 둔 미국의 한 남성은 백신을 맞지 않은 아이들의 등교를 금지해 달라는 소송을 청구했다. 면역력이 없는 아이에게 바이러스는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 부모의 개인적 신앙이 사회적 차원의 제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된다. 개인의 신앙이 타인의 일상을 침해하는 권력이 되는 순간, 사회적 차원의 문제가 된다.

정치인이란 일상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직업이다. 미국 공화당의 배리 라우더밀크 의원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하원 과학위원회 소속이다. 영국 보수당 의원 데이비드 트레디닉은 영국 의료제도의 위기를 점성술의 도입으로 해결하자고 말했다. 가장 황당한 것은 미국 상원의원 제임스 인호프가 비닐봉지에서 눈을 꺼내며 지구온난화는 거짓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사실이다. 그도 공화당 소속이다. 공화당은 이제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지구과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의원은 백신 거부 운동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오바마는 일부 가정의 우려는 이해하지만, "과학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했고, 힐러리는 지구가 둥글고 하늘이 파란 것처럼 "백신 접종은 효과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에 반발한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접종 의무화를 반대하면서 백신 논란은 미국 대선의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이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미국 건국의 주축에 과학자 벤저민 프랭클린이 있었고, 워싱턴, 제퍼슨, 매디슨 모두 정책을 결정할 때 과학적 근거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과학의 가치가 사회와 연결되는 지점을 이해하고 민감하게 반응했던 인물들이다. 그런 정치인들이 세운 미국조차 창조과학과 같은 사이비 과학에 의해 교사가 징계되는 원숭이 재판을 겪고, 이제 또다시 백신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서구엔 정치인들의 과학적 무지가 무능으로 여겨지는 전통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니다. 황우석 사태의 이면에 과학에 무지했던 정치인들의 지지가 있었다. 황우석을 지지했던 정치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다. 황우석의 연구가 조작으로 밝혀진 뒤에도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는 공개적으로 황우석 지지를 천명했다. 4대강 건설이 과학적이라며 지지했던 정치인과 과학자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명칭에 사이비 '창조과학'이 버젓이 들어 있는 부서로 과학기술부의 기능을 이관하며 사이비 과학자들의 친교모임인 창조과학회 소속 장순흥 교수를 교육과학 분야 인수위원으로 선임했다. 곧 미래부에서 선교회가 발족해 이슬람을 이단으로 규정하더니, 장순흥 교수는 기독교 이념으로 개교한 한동대학교 총장에 부임했다. 한 국가의 과학 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인물이 사이비 과학자라는 이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적 차원의 문제란 권력의 문제다. 권력자들이 과학에 대해 지닌 태도는 정책에 반영되고,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킨다. 공직자의 윤리적 책임만이 청문회의 단골 메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에 무지한 공직자의 선택 하나하나가 우리 일상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가 진화론을 거부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 그들이 이미 사라진 천연두로 우리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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