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경제에 '공정한 분배'가 절실한 이유

박종훈 입력 2015. 3. 16. 06:05 수정 2015. 3. 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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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8]

'임금 없는 성장'은 어떻게 경제를 파괴하는가?

지난 5일 경영자총협회(경총)가 올해 임금을 1.6% 범위 내에서 조정할 것을 회원 기업에 권고하였다. 과도한 임금 인상이 경기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임금 상승을 억제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은 그들이 주장하는 '과도한 임금 인상'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금융연구원 자료를 보면 2007년 이후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실질 노동생산성은 9.8% 올랐는데, 실질임금은 오히려 2.3% 감소하였다. 한 마디로 생산성 증가로 인한 과실을 기업이 혼자 독차지하고도 모자라 근로자의 몫까지 챙긴 것이다. 이렇게 임금 인상을 억제한 덕분에 최근 5년 동안 기업의 가처분 소득이 무려 80%나 늘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 정부는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면 투자가 증가하고 일자리도 더 늘어날 것이라며 기업의 몫을 늘려주는데 정책적 여력을 집중해 왔다. 그 결과 기업의 이윤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지만, 기업은 돈을 쌓아둔 채 투자를 하지 않았고 경제 성장은 점점 더 정체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동안 우리 정부와 대기업들이 간과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노력한 만큼 정당한 몫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공정한 분배 시스템'이었다. 자신이 노력해도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최선을 다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정한 분배 구조는 단순히 누가 이익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 경제 전체의 파이(Pie)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분배구조를 바꿔 파이(Pie)를 키운 칭기즈칸의 지혜

칭기즈칸이 태어난 12세기의 몽골은 인구가 200만을 넘지 않는데다 부족별로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던 약소국가였다. 그런데도 칭기즈칸은 그 작은 몽골 부족을 기반으로 주변국 2억여 명의 인구를 다스리는 강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강력한 제국의 지배자로 떠오른 배경에는 분배 시스템의 아주 작은 변화가 큰 역할을 하였다.

당시 몽골 초원에서는 부를 축적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약탈이었다. 다른 부족과 싸워 양이나 말 같은 가축을 빼앗고 노예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제활동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몽골에서는 전투에 참여한 소수의 귀족들만 약탈품을 차지할 권리가 있었고, 약탈품은 먼저 차지한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전쟁 후의 이러한 약탈의 결과에 따라 귀족들의 부(富)가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몽골족은 일단 전쟁이 유리하게 흘러가면 적을 섬멸하기보다 약탈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전쟁에 패한 부족은 물자를 그대로 두고 달아나면 남은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고, 나중에 설욕을 위한 복수에 나설 수 있었다. 이처럼 적의 섬멸보다 약탈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분배구조는 약탈과 복수가 반복되는 악순환을 만들었고, 초원의 통일을 막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칭기즈칸은 이 같은 초원 부족들의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분배의 규칙을 완전히 바꿨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 개인적인 약탈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자신의 가족이라도 큰 벌을 내렸다. 그리고 전쟁이 완전히 끝난 뒤, 약탈한 물건들을 한 곳에 모아 각자의 역할과 전공(戰功)에 따라 공정하게 분배했다. 게다가 전쟁에 참여한 소수의 귀족만 약탈에 참여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후방 지원이나 병참에 나선 전사들까지 모두 골고루 전리품을 나누어 받았고, 심지어 이전의 전쟁에서 숨진 전사의 유족들에게까지 전리품이 배분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간단한 규칙 하나가 칭기즈칸의 군대를 초원의 최고 강자로 완전히 탈바꿈시켰다. 공을 세운 대로 전리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전사들이 약탈보다 명령에 따라 적을 섬멸하는 데 주력하게 되었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충분히 전리품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은 그의 군대를 더욱 용맹하게 만들었고, 전사한 군인의 유족에게도 전리품을 나눠준다는 확신 덕분에 칭기즈칸의 군대는 더더욱 목숨을 아끼지 않고 승리를 위해 싸웠다. 또한, 후방 지원을 한 사람들에게도 일정 기준에 따라 전리품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칭기즈칸의 군대는 강력한 후방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전사를 잃은 소외된 계층까지 공정한 분배를 통해 전사를 다시 배출할 기회를 갖게 되자, 초원의 어떤 부족보다도 넓은 인재 풀(Pool)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 같은 공정한 분배 시스템은 몽골 제국의 성장을 촉진하고 더욱 풍요로운 분배를 가져오는 선순환을 일으켜, 몽골이 세계 최강의 제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현대 경제학에서도 확인된 칭기즈칸의 지혜

공정한 분배가 성장의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경제 관료나 경제단체들의 '신념'과는 대조적으로, 칭기즈칸의 지혜는 현대 경제학에서도 계속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에서 공정한 분배는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연구의 첫 포문을 연 것은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알레시나(Alesina) 교수와 이탈리아 보코니 대학교의 페로티(Perotti) 교수였다. 이들이 1960년부터 1985년까지 71개 나라의 불평등과 성장 관계를 조사한 결과, 소득 불평등은 사회 불안을 키우고 그 여파로 투자의 불확실성이 커져 결국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의 베나부(Benabou) 교수는 불평등에 관한 연구 23개를 모아 재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 23가지 연구가 각기 다른 데이터와 기간, 그리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득 불평등의 격차가 경제 성장을 낮추는 결정적인 원인임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인간 심리를 바탕으로 한 행동경제학에서도 인간은 전통 경제학의 기본 가정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만을 따지는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정함을 함께 추구하는 존재'임이 이미 많은 실험들을 통해 증명되었다. 따라서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제구조에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게 되고 아예 포기하고 만다. 이런 현상이 경제 전반으로 퍼지게 되면 국가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장기적인 성장 동력은 영영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다.

칭기즈칸 Vs 21세기 대한민국, 무엇이 경제를 살리는 방법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대기업에 돈을 몰아주면 경제가 더 빨리 성장하고, 그로 인해 대기업의 돈이 넘쳐흐르면 언젠가는 중소기업이나 근로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낙수효과(Trickle-down)'의 신화를 고집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대기업만 돈을 벌고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중소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할 것이며, 어떻게 기술 개발을 통해 뿌리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몰락한 지금, 몇몇 대기업만으로 우리 경제를 지탱하려는 시도는 마치 병참(兵站) 없는 군대가 승리하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허황된 꿈이나 다름이 없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가계의 주머니 사정이 급속하게 쪼그라들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경제 구조에서는 기업이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이를 사줄 수 있는 소비 기반이 조성될 수가 없다. 때문에 과도하게 수출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 경제 상황에 휘둘리는 '천수답(天水畓: 빗물에만 의지한 논) 경제'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가계의 몫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결과, 쪼들린 가계가 출산까지 기피하면서 20~30년 뒤의 장기적인 성장 동력까지 훼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장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들은 흔히 '파이를 키우기도 전에 나눠 먹을 생각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달리, 실제 경제에서는 어떻게 분배하느냐가 경제 성장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기본 시스템과 규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구조에서 도대체 누가 최선을 다하겠는가? 지금처럼 인구구조 악화와 기술 혁신의 둔화로 장기불황이 눈앞에 다가온 상황에서 우리 경제를 지킬 가장 강력한 성장 동력은 바로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분배 시스템을 바로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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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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