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혼시대]"혹시 또 헤어지면 계산 복잡해져" 재산은 따로 관리

박주연 기자 2015. 3. 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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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혼자들이 털어놓은 고민

▲ 자녀와의 갈등·편견·상속 문제 등 걸림돌 많아… "능력 있어 여러 번 결혼했다는 말, 우리에겐 비아냥"

상당수 다혼자들은 두 번 이상 결혼이 깨졌다는 이유로 스스로 움츠러든다. 이들이 드러내놓고 다혼자임을 밝히지 않는 이유다. 실제로 경향신문과 선우 부설 결혼문화연구소의 설문에 응한 삼·사혼자의 74%가 직장 등 주변에 다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번 이혼하고 2009년 세 번째 결혼을 해 잘살고 있다는 김현미씨(51·가명·작가)는 "이혼은 실패가 아니라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도 이혼과 재혼을 쉽게 하지 않는다"며 "능력이 있어 여러 번 결혼했다는 말이 우리에겐 비아냥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자녀문제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부터 걸림돌로 작용한다. 특히 자녀가 많은 다혼자를 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방 자녀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고민거리이기 때문이다. 실제 재이혼의 상당수는 자녀 갈등이 주원인이다. 또 드러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배우자 자녀에 대한 상속문제도 걸린다.

두 번 이혼한 후 삼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초등학교 교사 윤지민씨(54·가명)는 "결혼 직전에 남자들의 부모 때문에 깨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자기 자식의 재산이 내 아이에게 분배되는 걸 꺼린 탓이다. 그때마다 서글펐다"고 회고했다. 윤씨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식이 수모를 당하게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아이가 장성하면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지금까지 약속을 지켰다. 윤씨는 이제 자신의 삶을 찾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만약 세 번째 결혼할 남자가 재산이 많아 자식들이 끝내 결혼을 반대하면 굳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형태로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사별·이혼을 거쳐 4년 전 삼혼에 성공한 오정희씨(50·가명·교수)는 "자녀가 있는 경우 여자의 다혼과 남자의 다혼은 다르다"고 말했다. 여자의 아이는 엄마의 재혼으로 성이 다른 집안의 아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씨는 아이에게 친부의 성을 그대로 쓰게 했다. 오씨는 "명절 등 집안행사 때 시댁에 가면 내 아들의 위치가 모호하다. 다혼가정이 잘 유지되려면 남편은 물론이고 시부모와 시댁식구들이 아이까지 자기 식구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제사문제도 거론했다. 명절이면 시댁에서 차례를 지낸 뒤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함께 사별한 아내의 제사를 지내는 것도 못마땅하다고 했다. 오씨는 "내 아들이 함께 절할 수도 없고, 또 나는 뭐가 되느냐"고 말했다. 오씨는 계모에 대한 편견도 지적했다. 그는 "실제 통계를 보면 친부·친모의 학대가 훨씬 많은데 '계모=나쁜 엄마'로 보는 그릇된 시선이 계모에겐 큰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자녀 간의 충돌로 파국을 맞는 다혼부부도 적지 않다. 건축업에 종사하는 박태훈씨(57·가명)는 1983년 결혼 4년 만에 이혼하고 이듬해 초혼인 12살 연하의 아내를 맞았다. 하지만 딸이 아빠를 빼앗겼다고 여기면서 새엄마와 갈등을 빚었다. 동생을 낳자 사춘기 딸은 가출하는 등 더욱 빗나갔다. 아내는 그런 딸을 감싸주지 못했고 박씨는 아내가 마뜩잖았다. 그러다 아내는 고민을 상담해주던 교회 전도사와 밀회를 나누는 사이가 됐고, 급기야 둘째 딸까지 데리고 외국으로 도주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박씨는 간통혐의로 아내와 남자를 고소했다. 술로 날을 지새우고 자살까지 시도했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긴 터널을 지난 그는 "언젠가 찾아올 둘째 딸을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차리자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7년 만에 아내를 용서하고 소도 취하했다. 2005년 그는 16살 연하의 초혼 아내를 맞아 지금까지 잘살고 있다. 박씨는 "두 번째, 세 번째 결혼이 원만하지 못한 가장 큰 요인이 자식문제인 것 같다"며 "우리집은 몸이 약해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한 아내가 전처 딸을 잘 키워줬고, 딸이 유학 가고 결혼할 때도 헌신적으로 돌봤다"고 말했다.

다혼부부의 경제적 문제도 간단치가 않다. 각자의 재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혼 때는 함께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내 것, 네 것 구별이 없다. 하지만 다혼자들은 "상대방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함께 이룬 것이 아니라서 내 것이라는 생각이 안 든다"고 말한다. 그래서 다혼자 중에는 자신의 재산을 새 배우자에게 공개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설문에 응한 100명의 삼혼자·삼혼 희망자 중 "재산을 다 공개하고 둘의 재산을 합치겠다"고 답한 사람은 44%뿐이었다. 나머지는 '새 배우자 것은 새 배우자가, 내것은 내가 관리하겠다'(30%)거나 "일부만 공개하겠다"(10%)고 응답했다. 재산을 다 공개하지 않거나 일부만 공개하는 이유로는 '나중에 혹시 또 헤어지면 계산이 복잡해질 수 있으니까'(60%)가 가장 많았고, '전처와 일군 재산이니까 내 핏줄에게 더 물려주기 위해서', '왠지 손해보는 것 같아서'가 각각 10%를 차지했다.

하지만 재산을 솔직하게 공개하지 않는 '너 따로, 나 따로' 식의 재정운영은 갈등과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나 다혼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2012년 이혼경력이 있는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삼혼생활을 하고 있는 임미나씨(52·가명)는 "재산을 서로 투명하게 오픈하고 합치면 배우자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생긴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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