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탈출할 때도.. 세월호 갑판에선 "기다려라"

2015. 3. 1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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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항소심 3차 공판] 퇴선명령 여부 공방 치열.. 생존자들은 진술 거부

[오마이뉴스 박소희 기자]

▲ '속옷 차림' 탈출, 이준석 세월호 선장

해경이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승무원들의 탈출 장면을 담은 영상을 28일 공개했다.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00t급)의 한 직원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은 이 영상에는 승무원들이 제복을 벗고 123정에 허겁지겁 오르는 장면이 담겨 있다. 심지어 이준석 선장은 속옷 차림으로 세월호를 떠나 123정에 오르기도 했다. 뒤편에는 123정에 타고 있던 이형래 경사가 심하게 기운 갑판에 올라 구명벌을 펼치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 해경 영상 갈무리

세월호 참사 당일 선원들이 탈출하던 순간, 갑판 위에 있는 외부 스피커에서도 기다려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는 사실이 지난 10일 확인됐다. '선원들은 승객의 선내 대기 상황을 알면서도 먼저 빠져나왔다'는 검찰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새로 등장함에 따라 이준석 선장 등의 살인혐의를 둘러싼 법정 공방은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날 광주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서경환) 심리로 열린 선원들의 항소심 3차 공판에서 검찰은 두 개의 동영상을 근거로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은 아예 없었다고 주장했다. 2014년 4월 16일 9시 45분경 조타실에서 빠져 나오는 선원들을 찍은 123정 동영상과 같은 시각 단원고 고 김동협 학생이 객실에서 촬영한 동영상이었다.

"현재 위치에선 편안히 기다리시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시기 바랍니다."

음향 전문기관이 두 파일의 음질 개선 작업을 한 동영상에선 사무부원 강혜성씨의 선내 대기 방송이 흘러나왔다. 조용하던 방청석이 술렁였다. 몇몇 유족은 분노를 참기 어렵다는 듯 선원들을 욕했고, 곳곳에서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기다려라'고 한 선내 방송, 선원들은 정말 몰랐을까

▲ 피고인석에 앉은 이준석 선장

지난해 11월 11일 1심 선고공판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검찰은 "123정 촬영 동영상에 녹음될 정도의 큰소리로 계속 외부 스피커에서 선내 대기 방송이 나온 만큼, 피고인들도 들을 수 있었다"며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을 보면 '퇴선 명령이 있었다'는 일부 피고인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라고 했다. '퇴선명령이 있었지만 사무부에 전달되지 않았다'며 이준석 선장과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의 살인혐의를 무죄로 본 1심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였다.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달라진 선원들의 진술 역시 논란거리였다. 이준석 선장의 경우 해경 조사에서는 "퇴선명령을 하려고 했는데 못했다"고, 검찰 조사 때에도 "퇴선지시를 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1심 때부터 법정에선 줄곧 "김영호 항해사에게 퇴선명령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강원식 항해사는 검찰 조사에서 '왜 아무런 조치 없이 퇴선했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못했고, 퇴선명령의 시기에 관한 말이 매번 조금씩 달라졌다. 김영호 항해사는 진술이 그때그때 다르기도 하지만, 퇴선명령 주장 자체는 1심 재판 때에야 하기 시작했다. 검찰은 이 점을 근거로 선원들이 '이준석 선장이 김영호 항해사에게 퇴선명령을 내렸다'며 입을 맞췄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고인들의 진술 번복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재판부는 '계속 정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생각을 못했다'는 이준석 선장의 말은 퇴선방송을 지시했다는 그의 주장과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서경환 부장판사는 '이것저것 시도를 하느라 조타실의 다른 상황은 기억이 없다'는 강원식 항해사에게 "그런데 선장이 퇴선명령한 것은 기억 나느냐"고 물었다. 또 김영호 항해사에게는 "생존자들은 사무부 박지영과 강혜성이 계속 무전을 쳤다고 하는데, 연락이 안 왔냐"고 질문했다.

그러나 선원들과 변호인들은 피고인들이 조사나 재판과정에서 당황한 탓에 세부 내용이 달라졌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준석 선장은 검찰에서 '퇴선명령을 안 했다'고 말한 이유를 묻는 변호인에게 "그때 계속 조사를 받다 보니까 굉장히 힘들고, 죄책감에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다"고 해명했다.

강원식 항해사는 자신이 '조타실에서 선내 대기 방송을 들었다'고 적힌 검찰 조서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에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그게 '선내 대기하라'는 내용인 것을 알아서 그렇게 말했다"며 "조타실에서도, 밖으로 나올 때도 방송은 안 들렸다"고 했다. 김영호 항해사의 변호인은 재판 도중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그를 몰아세우는 분위기를 두고 "피고인이 매우 얼어 있는 상태인데 (검찰은) 다그치고, 뒤에서는 뭐라고 하고, 이런 재판이 어디 있냐"며 항의하기도 했다.

생존자들은 정신적 고통 호소... 증언 거부하기도

▲ 생존 학생들 '울지마 이제 살았어'

16일 오전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에서 구조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치료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이희훈

퇴선명령 여부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그만큼 검찰과 선원·변호인은 치열하게 다퉜다. 결국 진실이 무엇인가를 따지려면 제3자의 증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재판부는 당시 선원들과 함께 조타실에서 대기한 필리핀인 가수 부부를 1심에 이어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두 사람은 '정신 장애로 더 이상 증언하기 어렵다'며 10일 불출석했다( ☞ 1심 법정증언 바로 가기).

이날 법정에 나온 또 다른 생존자 윤길옥씨 역시 "매일 저녁에 먹는 약만 한 20알인데, 그걸 먹어도 잠을 못 잔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직 병원에 입원해 화상 치료를 받고 있는 그의 얼굴빛은 여느 사람들보다 누런 편이었다.

"제 머리는 지금 완전... 정신병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때 물속에서 삶을 포기했는데... 바닷물 먹고 '아 내가 이렇게 가는구나' 했는데... 구명조끼를 입어서 몸이 떴다. 근데 나와 보니 손톱이 하나도 없더라. 얼마나 긁었는지…. 또 사고 당시 매점에 있었는데 여학생 한 명이 못 나왔다. '아저씨 살려달라' 했는데, 제가 (화상을 입어) 다리를 움직이질 못하니까... 그게 꿈속에까지 나타나서 해군한테 매점 쪽을 찾아봐달라고 몇 번 말했다. 그런데 부산물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더라."

법정은 또 다시 눈물 바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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