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포드, 무엇이 경제를 살리는 길인가?

박종훈 입력 2015. 3. 9. 06:01 수정 2015. 3. 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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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7]

삼성전자가 내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며 임금을 동결했다. 10만 명에 이르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의 한 해 임금을 모두 합치면 8조 원 정도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그 3배가 넘는 25조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임금 동결을 결정한 것이다. 게다가 경영자총협회(경총)도 올해 임금인상률을 1.6% 범위 내에서 조정할 것을 회원 기업들에 권고하였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지금 경제상황이 그나마 괜찮을 때 선제적으로 임금 동결을 해 놓으면 앞으로 불황이 닥쳐와도 보다 쉽게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확보하기 위해 실질 임금을 낮추게 되면 가계 소득이 더욱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내수시장을 더욱 위축시켜 불황을 앞당기는 무서운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대공황 직전 미국에서 일어났던 경제 현상을 꼭 빼닮았다.

모두가 가난해진 경제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대공황이 오기 직전인 1920년, 미국은 짧은 불황을 겪었다. 이윤이 줄어든 기업들은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고 남은 근로자들의 임금도 평균 20%나 삭감하였다. 공화당 출신의 워런 하딩(Warren Harding) 당시 미국 대통령은 빠른 경제 회복을 위한 길이라고 믿고, 이 같은 대량해고와 임금삭감을 지지하였다.

그 결과 1923년부터 미국의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지만 줄어든 임금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929년 대공황이 올 때까지 6년 동안 기업의 이윤은 62%가 넘게 늘었지만, 근로자들의 실질 소득은 고작 11%가 늘어나는데 그쳤다. 기업들은 값싼 임금을 이용해 대량생산으로 막대한 양의 물건을 쏟아냈지만, 정작 실질임금이 줄어든 근로자들은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물건을 살 돈이 없으니 소비로 이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근로자들은 빚더미에 의지해 간신히 삶을 이어가는 한계상황으로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근로자들의 임금을 억제한 덕분에 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였지만, 1920년대 후반부터 이미 미국 경제는 세계 대공황이라는 비극을 향해 위험한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1929년 주가 대폭락을 신호탄으로 한순간에 빚더미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디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 빚더미에 신음하는 근로자들이 대량소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물건 값은 점점 더 빠르게 떨어졌고, 기업들의 창고에는 팔리지 않는 재고가 수북이 쌓이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문제점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유지하도록 기업을 압박하기 시작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시 미국 기업들은 손쉽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임금을 유지하는 대신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방법으로 정부에 맞섰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들이 급속히 늘어나자,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아예 실종되고 디플레이션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기업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근로자 해고가 수요 감소라는 악순환을 몰고 와 미국 경제는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근로자가 무너지면 기업도 생존할 수 없다

지금처럼 우리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무엇보다 나라 전체의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든든한 중산층을 복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소득 가운데 가계로 돌아가는 몫이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으로 추락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기업의 가처분 소득은 무려 80%가 늘어났는데, 가계 소득은 그 3분의 1도 늘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에서 어떻게 소비가 늘어나길 기대할 수 있을까? 이대로 간다면 공장에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아무도 이를 사줄 수 없는 1929년 대공황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가계가 빚더미를 늘려가며 가까스로 소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미 대공황에서 확인한 것처럼 빚더미를 늘려 생존하는 방식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다. 더구나 일단 빚더미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면, 더 이상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수단은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삼성 vs. 포드, 한국 경제를 위한 길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끈 헨리 포드(Henry Ford)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수요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간파한 선구적인 경영자 중 하나였다. 컨베이어 벨트를 도입한 다음 해인 1914년, 그는 포드사 근로자들의 임금을 하루아침에 2달러대에서 5달러로 파격적인 인상을 하였다. 게다가 이렇게 임금을 올리면서도 근로시간은 거꾸로 하루 9시간에서 8시간으로 한 시간이나 줄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포드가 근로자의 복지를 염려하는 너그러운 사업가나 자선가는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기업들이 한 푼이라도 임금을 줄이려고 애쓸 때, 헨리 포드는 왜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 그는 근로자가 바로 소비의 주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자신이 만든 물건조차 살 수 없을 정도로 소득이 낮다면,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시대를 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소비의 주체인 근로자가 부유해져야 자신도 부유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노동운동을 적극 반대하고 노조를 탄압한 보수적인 경영자로 유명한 헨리 포드가 앞장서서 근로자들의 임금을 파격적으로 인상한 것이다.

근시안적으로 자신의 기업만 놓고 보면 임금을 낮춰야 이윤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경제 안에 있는 모든 기업이 임금을 낮추고 근로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하는 방법을 택한다면, 경제 전체가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피해는 대공황 때처럼 결국 기업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될 것이다.

지금 최악의 장기 불황을 눈 앞에 둔 위기의 우리 경제에서 대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만 살고 보자는 근시안적인 이기심이 아니라, 경제 전체의 장기적인 미래를 내다보는 헨리 포드의 지혜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국민들의 성원으로 성장해 온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은 보다 큰 안목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제 국민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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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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