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의미 없고, 재미도 없어 .. 하루 1~2시간 '딴짓' 김 대리

김기찬 입력 2015. 3. 7. 00:29 수정 2015. 3. 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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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공허 노동'에 빠진 직장인들

직장인 이영훈(가명·41)씨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그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포털 사이트다. 출근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인터넷 서핑을 한다. 그날의 화젯거리와 주요 뉴스를 훑고야 업무를 시작한다. 업무 중에도 짬이 나면 자신의 취미인 목재공예와 여행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다. 점심시간 전후에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카카오톡이나 메신저가 오면 수다도 떤다. 가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위 '멍 때리기'도 한다.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개막전 때는 평소 응원하던 최나연 선수의 경기를 인터넷을 통해 재방송으로 봤다. 이씨는 "하루에 대략 1시간30분에서 2시간은 업무 이외의 다른 일에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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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룬드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롤란드 폴센(Roland Paulsen)은 이런 유형의 근무시간 중 딴짓을 '공허 노동(empty labor)'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최근 스웨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바에 따르면 근로자들이 일하는 동안 하루 평균 2시간가량을 개인 여가활동에 사용했다. 대체로 인터넷 서핑이나 휴가지 예약, 메신저로 잡담하는 형태다.

 공허 노동은 스웨덴뿐 아니라 전 세계 근로자라면 누구나 한다. 한국에선 잡코리아가 2013년 9월 직장인 6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9명이 업무시간 중에 딴짓을 한다고 응답했다. 딴짓 1위는 메신저(39.6%)였다. 이어 스마트폰, 뉴스 검색, 인터넷 쇼핑, 직장 동료와 수다가 그 뒤를 이었다. 하루 평균 59분21초를 이런 데 썼다. 중간 직급일수록 딴짓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 과·차장급은 하루 평균 1시간2분, 대리급은 1시간1분인데 말단인 사원·주임급은 57분이고 직장 내 최고참인 부장급은 55분이었다.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이와 비슷한 조사 결과를 내놨다. 미국 경영컨설팅업체인 샐러리닷컴은 미국 직장인 가운데 64%가 근무시간 중에 업무와 관계없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고 2013년 9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딴짓을 하는 직장인 중 68%가 주당 1~2시간을 개인적인 일을 하는 데 쓰고 21%는 주당 2~5시간, 8%는 6~10시간을 업무와 관계없는 일에 사용했다. 10시간 이상 허비하는 직장인도 3%였다. 미국 직장인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 쇼핑이나 메신저 채팅, 전화 잡담, 스포츠 시청도 했다. 미국 대학농구(NCAA) 시즌에는 86%의 직장인이 업무시간에 경기를 봤다. 심지어 근무시간에 포르노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프랑스의 올페오(Olfeo)도 같은 해 설문조사를 했다. 직장인 58%가 하루 평균 63분을 인터넷 서핑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근로자들은 왜 공허 노동에 빠지는 것일까. 무한경쟁 시대를 헤쳐 가는 데 따른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폴센은 하루에 절반 이상 극단적으로 빈둥거리는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그 결과 상당수는 업무가 더 과중해졌다. 그러나 노동시장 전체가 극단적 경쟁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업무 강도와 근로자들의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는 최근 연구 경향과는 다른 결과다. 폴센은 "공허 노동에 빠지는 이유는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의미 없고 지루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을 적게 하고 삶을 즐기려는 바람도 있지만 일 자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공허 노동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폴센은 지적했다. 그의 조사 결과 근로자 중 상당수는 "본인의 업무가 개인의 욕구뿐 아니라 회사의 요구 역시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가 있고, 회사나 상사에게 불만을 토로해 본 경험이 있다"고 했다.

 이런 공허 노동은 대체로 고학력에 고임금을 받고 직무 자율성이 높은 사무직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 이유를 폴센은 "과업 수행을 위해 필요한 시간과 노력 투입 정도를 관리자가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임금이나 생산직 근로자는 고용주가 작업현장을 강력하게 감시하는 경향이 있어 공허 노동이 쉽지 않다.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특히 인터넷과 친숙한 밀레니엄세대는 컴퓨터에 많은 창을 열어 놓고 업무와 사적인 일을 능수능란하게 처리한다"며 "허비되는 업무시간이 늘고 생산성이 떨어져 경영진의 고민이 깊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허비되는 시간을 보수로 환산하면 연간 7590억 달러에 달한다는 조사(샐러리닷컴)도 있다.

 하지만 공허 노동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샐러리닷컴의 빌 콜먼(Bill Coleman) 부사장은 "근무시간 중에 인터넷으로 딴짓을 하는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새로운 영업 아이디어가 나오고, 근무환경을 즐겁게 만드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창조적 낭비라는 얘기다. 예컨대 구글과 같은 회사는 사내에 다양한 레저시설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직원에게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공허 노동을 조장하는 경영이다. 구글 입장에선 이런 공허 노동이 근로자로부터 기발한 생활 속 아이디어를 건져 내는 원동력인 셈이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취임한 뒤 "연가 보상을 없앤다. 일만 하면 생산성이 오르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으름을 권장하는 것 같지만 근무시간을 통제하는 옛날 방식 대신 지식노동에 걸맞은 여유와 한가함이 생산성을 올린다는 발상이다.

 폴센은 "강력한 관리감독이나 인터넷 사용 조회와 같은 통제로 공허 노동을 축소시키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신 "직무와 노동 과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근로자에게 제공하고, 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S BOX] 엑셀 화면인데 카톡·애니팡 … PC 위장 프로그램 속속 등장

공허 노동은 따분한 업무시간에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사 입장에선 다르다. 업무 태만으로 비칠 수 있다. 최근엔 직장인들이 공허 노동이란 소소한 즐거움을 즐기면서 상사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카카오톡 PC 버전은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엑셀과 같은 배경을 제공한다.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지만 상사가 보기에는 엑셀로 업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렇다고 이모티콘까지 숨길 수는 없다. 이모티콘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감쪽같이 채팅을 즐길 수 있다. 화면을 빠르게 전환하기 위해 Alt+Tab 기능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온라인쇼핑을 하다 상사가 오면 재빠르게 업무 화면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컴퓨터 아래쪽의 작업표시줄까지 감추진 못한다. '보스키'라는 프로그램은 작업표시줄까지 싹 지워 줘 시치미 떼기에 그만이다.

 애니팡과 같은 게임을 엑셀 화면으로 구현한 것도 있다. 엑셀 블록으로 3개를 맞춰 지워 나가는 게임이다. 물론 상사가 보기에는 컴퓨터 화면에 그래프도 있고, 숫자도 있어서 엑셀 작업을 하는 줄 안다.

 일에 지쳐 에너지를 소진한 근로자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잘만 쓰면 회로차단기 역할을 하며 숨 돌릴 기회를 준다. 물론 과하면 베짱이로 전락시킨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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