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등굣길 가로 막던 차단문이 열렸다

장성길 2015. 3. 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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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가는 지름길이 막히자, 4m 담을 넘어 등교한다?" 처음 제보를 접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선뜻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기사 내용을 보지 않고 제목만 보신 분들 가운데서는 '해외토픽'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방송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부산 기장군의 한 아파트 단지에는 일반인들에게 24시간 개방되는'공공보행통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바로 옆에 1,500가구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자, 이 아파트 측에서 전자식 차단문으로 막았습니다.

등굣길이 2배가량 멀어지자 일부 학생들은 철조망이 쳐진 4m 담을 넘어 등교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기존 아파트와 새 아파트 측은 6개월 넘게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 다시보기 <뉴스9> '공공통로' 차단…4미터 담 넘어 등교 '아찔

KBS의 첫 보도가 나간 건 지난달 중순, 초등학생들이 봄 방학하기 전이었습니다. 20일 가량 지난 지금 등굣길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입주민이 카드를 대야만 열리던 전자식 차단문이 24시간 개방됐습니다. 담당 관청인 기장군청에 따르면 방송이 나가고 열흘쯤 뒤인 지난달 25일, 해당 아파트 측에서 입주자대표회의를 열었고, 회의에서 차단문을 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안전이 가장 시급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여기다 기장군청과 교육청의 적극적인 중재도 한몫했습니다. 차단문은 새 학기 시작에 맞춰 지난 1일부터 개방했습니다.

차단문이 열린 지 사흘 뒤, 등굣길 풍경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찾아가 봤습니다. 출입 카드를 들고 있는 입주민이 문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며 옹기종기 모여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담을 넘는 아이들도 없어졌고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등굣길을 걷는 학부형들의 표정도 밝았습니다. 차단식 문을 설치했던 아파트 주민 가운데서도 통로 개방을 반기는 분이 많았습니다. 누군가 열어주길 바라면서 차단식 문 앞에 모여 있던 아이들의 모습은, 해당 아파트나, 새 아파트 주민 모두에게 불편한 광경이었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안전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됐습니다. 사실 등교 시간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우르르 몰려다니면 운전자들에게는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겁니다. 그래서 담당인 기장군청에서는 다음 달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의 하나로 교통안전 도우미 4명을 뽑아, 등하교 때 2명씩 각각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해당 아파트에서는 현재 경비원분들이 수고를 해주시고 있고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새 아파트 쪽에서도 입주민들이 돌아가며 등하굣길 교통지도를 도울 예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해당 아파트 주민들의 또 하나 걱정거리인 쓰레기 무단투척이나, 기물파손 등은 새 아파트 학부모들이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 남겨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두 아파트 단지 사이의 갈등의 '원흉'이었던 전자식 차단문도 곧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공공보행통로 때문에 아파트단지 간 갈등을 겪는 사례는 부산 기장군 뿐만 아닙니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보안 및 관리상의 이유'로 잠금장치를 설치했는데요, 이웃의 또 다른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중심 상가로 가는 길이 막히자 관청에 집단 민원을 내는 등 수개월째 갈등이 빚어졌고, 현재 국민권익위원회가 나서 중재안까지 내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보행로를 둘러싼 갈등이 워낙 첨예하다보니, 신축 중인 아파트 단지 옆에 사는 학부형은 이 아파트가 공공보행통로를 막지 않을까 우려하며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00에 살고 있는데 집 앞에 다음 달 00 주상복합 1500세대 착공과 분양을 한다네요.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철거 벽이 세워지며 학생들이 우회도로로 다니고 있어요. 이곳은 도보 10분 거리 내에 초중고가 하나씩 있습니다. 2월 개학 때는 하교 시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담임선생님이 아이들을 집 앞까지 데려다 주셨죠. 시행사에 강력항의한 결과 몇몇 아르바이트생들이 길목을 몇 군데 지키고 있지만 안전대책은 여전히 미비합니다. 앞으로 준공까지 30여 개월을 우회하여 다녀야 하고 취재하신 것처럼 공공보행통로가 새 아파트 입주민에 의해 폐쇄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00에서 한 학부형이

공공보행통로를 막는 것은 명백한 불법입니다. 하지만 사유권 침해를 걱정하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이야기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가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산 기장군 사례가 전국 수많은 보행통로 갈등을 푸는 좋은 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법의 논리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입주민들이 대화하고 조금씩 양보하면서 말입니다. 가로막힌 담과 문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되새기면서요.

☞다시보기 <뉴스9> '4m 담 넘는 위험한 등굣길'…차단문 개방 결정

장성길기자 (skja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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