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마트 월급 100만원.. 女노동자가 봉이냐"

변태섭 2015. 3. 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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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증언 대회서 성토

여성 많은 마트·청소·학교급식 업계… 오래 다녀도 저임금 못 벗어나고

전체 16.9%는 최저임금도 못 받아

"장갑을 끼고 일하는데도 마트에서는 고객보다 화려하면 안 된다면서 손톱에 매니큐어도 못 칠하게 해요. 입사 4년차와 12년차의 월급 차이가 5만원 밖에 안 나는데, 신나게 일할 사람은 드물죠. 오죽하면 마트에 취직했던 젊은이들이 '몹쓸 일자리'라며 나가겠습니까."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40대 여성 근로자 김모씨의 월급은 110만원 정도다. 연차가 쌓여도, 성과를 내도,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해 받은 월급은 최저임금(시급 5,880원)을 넘지 못했다. 2011년 입사 때부터 줄곧 그랬다. 그래서 동료들은 "최저임금이 곧 최고임금"이란 슬픈 농담을 주고받는다.

오래 일한다고 근무 숙련도를 인정해주는 것도 아니다. 김씨는 지난해 월급으로 95만~98만원을 받았는데, 입사 12년차인 동료의 월급도 103만원으로 큰 차이 없었다. 그는 "대형마트는 일자리가 마땅치 않은 중년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토대로 눈부신 성장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나마 김씨가 일하는 마트는 상황이 나은 편이다. 다른 대형마트는 기본급 50만~60만원에 각종 수당을 더해 월급을 최저임금에 맞추는 '꼼수'를 쓴다. 이렇게 하면 기본급을 기준으로 지급하는 상여금 액수가 줄기 때문이다.

근무 시간 내내 매장에서 휴대폰을 소지하지 못하게 하는 곳도 있다. 김씨는 "업무효율을 위한 조치라지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대형마트측에선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8일)을 앞둔 5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열린 '최저임금 여성노동자 증언 기자회견'에서는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여성노동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김경자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성 노동자가 주류인 대형마트ㆍ청소ㆍ학교급식 업계일수록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며 "107년 전과 똑같은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정치적 평등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계기로 지정됐다.

학교급식실에서 일하는 이현숙 전국교육공무직본부 경기지부 급식분과장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는 월급 통장을 볼 때마다 '학교에서 밥을 짓는 교사'라는 자부심마저 무너져 버린다"며 "기본급이 조금 올라 100만원 남짓 월급으로 받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도대체 어떻게 생활하라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월급으로 116만원을 받는다.

청소노동자인 홍은숙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고려대분회장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관리자들이 트집 잡으면서 '그렇게 일할 거면 집에 가서 애나 봐라'는 식으로 폭언하거나 성희롱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2010년 대학에서 청소 업무를 시작한 그는 입사 당시 월급으로 98만원을 받았고, 현재는 138만원을 수령한다.

김진숙 홈플러스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장은 "대형마트가 임금을 최저임금에 맞춰 주면서 다른 중소마트 역시 그렇게 맞춰진 상황"이라며 "많은 사업장이 최저임금의 본래 취지를 왜곡해 마치 최저임금이 적정한 것처럼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4 성인지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여성 취업자 중 45.2%가 비정규직이며,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간한 '최저임금 지표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는 여성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비율이 16.9%로 남성(7.3%)의 두 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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