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400만원 토해낸 김 부장의 '잔인한 2월'

노진섭 · 김지영 기자 2015. 3. 5. 16:1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15년 2월은 직장인에게 '잔인한 달'로 기억되고 있다. 월급명세표를 보고 큰 폭으로 증가한 세금 액수를 확인한 직장인들은 경악 수준을 넘어 분노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는 취지로 세법을 바꿨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 아무개씨(51)는 주말에만 서울 집에서 지낸다. 서울에는 아내와 두 아이가 살고, 자신은 직장 때문에 대전에서 빌라를 얻어 살고 있다. 그는 "월 급여 실수령액이 430만원가량인데 올해 연말정산 후 400만원 가까이 토해내게 됐다"며 "월급이 통째로 날아가서 세금을 내기 위해 빚을 내야 할 판"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 일러스트 신춘성

연봉 4900만원인 김 아무개씨(42)는 직장생활 16년 동안 한 번도 연말정산 때 추가로 세금을 내본 적이 없고, 지난해엔 50만원 정도를 환급받았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30만원을 토해내게 됐다. 미혼이지만 월세·생활비 1000만원, 보험료 1400만원 등 연간 4000만원 가까이 지출했다. 연말정산에 유리하다고 해서 신용카드를 없애고 체크카드만 사용했다. 서울에 있는 집에는 부모가 살고, 자신은 직장 일로 춘천에서 월세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다. 그는 "부모에게 생활비로 1000만원 정도 드린 것이야 누락된다 해도 그렇지, 너무 많은 세금이 나왔다"며 "어머니에게 앞으로 생활비 쓸 때마다 현금영수증을 챙겨달라고 했고, 나도 월세 확인증을 챙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패션기업 8년 차 직장인 윤 아무개씨(36)는 올해 70만원을 토해내야 한다. 지난해엔 150만원을 돌려받았다.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연봉 5000만원, 15평(49.5㎡)의 원룸 전세, 몇 년째 타고 다닌 렉서스도 그대로였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부양가족은 3명이나 된다. 아버지와 조부모님을 부양가족으로 등록했다. 의료비가 연봉의 3% 미만(150만원 미만)이고 기부금과 교육비는 0원이라 공제를 못 받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신의 연봉 70%가량을 지출했다. 그런데도 '13월의 세금 폭탄'을 제대로 맞은 것이다. 그는 "답답한 마음에 이의제기 하려고 관할 세무서에 전화를 했는데 누구 하나 제대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돈은 내라면 내겠지만,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궁금할 뿐이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우 아무개씨(29)는 연봉 3000만원대 5년 차 여성 직장인이다. 지난해 세금을 추가로 부담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6만원을 내게 됐다. 1년 동안 현금 900만원, 신용카드로 약 500만원, 교통비 60만원, 월세 등을 지출했다. 그는 "처음에는 20만원 정도 추가로 부담할 뻔했지만 모시고 사는 부모를 부양가족으로 해서 이 정도"라며 "돈의 액수가 얼마든 연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올랐기 때문에 이번 세 부담은 증세가 맞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간혹 세금을 환급받는 이도 있지만,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근무하는 미혼녀 이 아무개씨(33)는 2만5867원을 돌려받게 됐다. 지난해에는 23만원을 돌려받았으니 10배 가까이 쪼그라든 것이다. 부양가족은 없지만 지출이 적지는 않다. 연봉 4321만원 가운데 신용카드와 직불카드로 각각 1974만원과 1124만원을 지출하는 등 현금을 빼더라도 3000만원 이상 썼다.

↑기업 실무자들이 2월27일 서울 역삼동에서 열린 연말정산 강의(CFO아카데미)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5500만원 이하 연봉자 79% 세금 부담 늘어

새정치민주연합 장병완 의원이 건설 분야 한 공기업으로부터 제출받은 2014년 연말정산 결과 자료에 따르면, 연봉 5500만원 이하 직원 225명 가운데 178명(79%)의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 특히 5500만원 이하자 중 84명(37%)은 지난해 환급을 받았으나 올해는 추가 납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봉 5500만?7000만원 구간의 경우 167명 가운데 155명(92%)의 세금이 늘어났고, 지난해 환급을 받았다가 올해 추가로 내게 된 직원은 75명(44%)에 달했다.

당초 정부는 연봉 5000만원 이하에는 추가 세금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5500만~7000만원 구간은 세금이 늘어나더라도 2만~3만원에 그치며, 8000만원 이상은 33만원, 9000만원 이상은 98만원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국납세자연맹 홈페이지에는 정부의 예측치를 벗어나는 사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내가 열심히 일해 번 돈에서 국가가 세금을 너무 많이 떼가니 열심히 일한 의미가 없어졌다." "결정세액 자체가 올랐는데도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 "세금으로 1개월 치 월급이 모두 나가고, 상여금의 40%를 떼어가니 삶이 너무 힘들다."

이에 대해 정부는 같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라도 공제 항목이나 부양가족 수 등 개인별 특성에 따라 편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 개별 사례에 대해 평가하기는 이르다"며 "3월10일께 국세청이 원천징수 의무자인 기업으로부터 연말정산 결과를 취합해야 전체적인 판도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처럼 개인별 환경이 제각각임에도 정작 세법 적용은 그렇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꿨다. 소득공제는 전체 소득에서 일정 부분을 미리 떼어낸 소득에 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매긴다. 세액공제는 소득에 세율(12~15%)을 매기고 항목마다 세금을 빼주는 방식이다. 같은 5000만~6000만원대 직장인이라도 부양가족 수, 의료비, 교육비 지출이 천차만별이다. 그런데 정부는 평균값을 일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상현 한국납세자연맹 정책전문위원은 "부양가족이 몇 명이고 의료비와 교육비가 얼마일 때 세 부담이 어느 정도 된다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며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은 세액공제로 전환할 때 수년간에 걸쳐 수정하면서 연착륙했다면 우리는 갑작스레 이 세법을 적용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 보니 이상한 현상도 속출하고 있다. 검소하게 살수록 세금 부담이 늘어났고, 연봉이 적은 직장인이 수백만 원의 세금 폭탄을 맞았다. 결혼 2년 차 주부 송 아무개씨(29)는 남편과 단둘이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해왔다. 이 부부는 술·담배를 하지 않고 외식 등 지출을 줄여 알뜰하게 살아왔다.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했고 지난해 지출은 600만원 정도다. 그는 "이번 연말정산 후 36만원을 더 내게 됐다"며 "검소하게 살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한 주부가 영수증 금액을 확인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증세 맞다" 울분

돈을 써도 공제 대상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아내와 딸 2명 외에 부모를 부양하고 있는 40대 가장 주 아무개씨는 "어머니가 병환 중이어서 지난해 생활비 외에 소비 지출은 거의 없었고 가사도우미 비용 2000만원에 간병비 2700만원 등 모두 4700만원을 사용한 게 큰 지출"이라며 "그러나 이런 비용은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연말정산 후 약 40만원의 세금이 추가로 부과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50대 황 아무개씨는 연봉 5000만원의 월급쟁이다. 그는 "한 번도 세금을 환급받은 적이 없고 매년 20만~30만원을 토해냈는데 이번에는 그 금액이 100만원 가까이 불어났다"며 "아내와 함께 중3 딸 하나를 키우면서 대출 이자와 생활비에 허리가 휠 지경인데 세금마저 오르니 죽을 맛"이라고 하소연했다. 30대 직장인 배 아무개씨의 세금을 제한 실수령액은 월 200만원 정도인데 130만원을 토해내야 할 지경이다. 그는 "계약직(비정규직)이어서 상여금도 없는데 50만원 조금 넘는 돈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같은 현상을 두고 정부는 증세가 아니라고 하지만 국민은 증세라고 본다. 이 아무개씨는 "지난해보다 연봉은 겨우 200만원 올랐는데 결정세액은 143만원에서 277만원으로 두 배 올랐다"며 "교육비 600만원 빠진 것을 제외하면 지난해하고 똑같은 조건인데 세금은 너무 늘어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정 아무개씨(31)는 지난해 첫 딸을 낳았다. 그런데 올해 32만원을 뱉어내야 한다. 지난해 세법 개정으로 출산공제가 사라진 데다 지난해부터 업무가 바뀌어 주말에도 출근해 종합소득 금액이 3000만원을 넘어 올해부터 부녀자 공제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에는 애가 없어도 3만원을 돌려받았는데 올핸 오히려 마이너스"라며 "애 둘 낳은 직장 동료는 100만원을 내라고 했다던데 거기에 비하면 나는 나은 편"이라며 씁쓸해했다.

직장인들의 불만이 들끓자 정부가 선심 쓰듯 내놓은 대안은 할부 납부다. 추가로 낼 세금이 10만원을 넘을 경우 3개월 동안 나눠 내도록 한 것이다. 한마디로 목돈이 없으면 할부로라도 내라는 것이어서 조삼모사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인 조 아무개씨는 "어차피 돈 나가는 건 마찬가지인데 나눠 낼 수 있도록 해준 정부에 감사해야 하나"라고 꼬집었다.

연봉 동결·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 감소

최근 경기 침체로 직장인들의 연봉이 수년째 동결되거나 심지어 하락해 가뜩이나 수백만 원씩 실질소득이 감소하고 있는데, 4대 보험료와 각종 세금까지 꾸준히 올라 구매력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 아무개씨의 연봉은 5924만5000원으로 3년째 동결된 상태다. 이 기간에 월급은 한 푼도 오르지 않았지만 물가, 세금, 4대 보험료 등이 꾸준히 인상됐다. 연봉이 올라야 명목임금 가치가 유지되는데, 최근 경기 침체를 이유로 연봉을 동결하거나 심지어 깎인 경우가 많아 수년째 근로소득자들의 실질소득(구매력) 수준이 악화된 상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김씨의 연봉이 동결된 3년 동안 국민연금 본인 기여금은 17만100원, 건강보험료 11만469원, 고용보험료 5만9245원, 근로소득세 2만3682원 등 총 36만3496원이 인상됐다"며 "결국 3년 동안 약 665만원 손해를 본 셈"이라고 분석했다.

배우자와 6세 아들이 있는 김 아무개씨가 화가 난 이유도 비슷하다. 수년째 연봉은 그대로인데 4대 보험료는 계속 오른 것이다. 국민연금 기준소득월액 상한액은 2011년 375만원에서 2014년 408만원으로 33만원 올랐다. 국민건강보험료와 장기요양보험료 가입자 부담액도 3%(2011년)에서 3.19%(2014년)로 0.19% 올랐고, 고용보험료도 0.55%(2011년)에서 0.65%(2014년)로 인상됐다. 결국 김씨의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은 3년 동안 총 36만3496원 늘어났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중소 제조업체와 도소매·서비스 업종 근로소득자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거나 일부 명목임금 자체가 줄어들었는데 물가와 각종 세금, 사회보험료가 올라 삶이 팍팍해지고 있다"며 "건강보험료가 지금처럼 매년 오르면 정치권의 인기 영합적 복지 공약과 맞물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직장인의 월급봉투만 노린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부동산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 등에 대한 세 부과에 대해서는 제도 개선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직장인 김 아무개씨는 "법인세는 놔둔 채 왜 월급쟁이에게 세금 걷을 생각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가난한 자영업자도 있지만 고소득 자영업자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부족한 재정을 메워야 하는 정부는 담뱃세·근로소득세·주민세·자동차세 등 서민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가하는 세금을 올리고 있다. 이는 국민의 조세 저항과 소득 불평등을 야기한다. 이 때문에 조세 형평성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똑같은 나이의 외벌이 가장으로, 부양하는 부모와 2명의 대학생 자녀 학비까지 똑같다는 가정하에 임대사업자와 근로소득자의 연간 세 부담을 추산해보니 근로소득자의 소득세가 임대사업자보다 무려 12배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직장인 김 아무개씨는 "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는 동료를 보며 위안을 받아야 할 판"이라며 "정부가 덜 떼고 덜 돌려주는 것이라는데, 월급쟁이에게서 뭘 덜 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부가 솔직히 증세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봉 5000만원대 중산층 세 부담 고소득층보다 늘어"

중산층의 세금 부담이 고소득층보다 많이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홍기용 한국세무학회장이 납세자연합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전년 대비 2014년 세 증감 여부를 분석한 결과다. 다양한 사례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연봉 5000만~7000만원 사이 중산층에서 세 부담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 자녀를 둔 5인 가구가 자녀당 교육비 300만원을 썼을 경우, 연봉 5000만원에서는 세금이 이전보다 48% 늘어났다. 반면 1억원 이상은 21%, 3억원 이상은 13%, 5억원 이상은 9% 등 고소득으로 갈수록 세금 부담률이 낮아졌다. 같은 조건에서 세액공제를 받았지만 소득 대비 세금 부담률이 증가한 것은 오히려 중산층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세액공제는 소득이 늘어날수록 세 부담이 적어지는 역진성을 보인다. 홍 회장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금액만 보면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늘어났을지 모르지만 소득에 비해 내는 세금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것"이라며 "교육비나 의료비 지출이 더 커져 세 부담 능력이 떨어진 사람이 세금을 더 내게 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진섭 · 김지영 기자 / no@sisapress.com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pres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