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머리 염색 덕분에 목숨을 구한 여성

박병일 기자 2015. 3. 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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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의 여성 '세일러 길리엄스'는 동갑내기 남자친구인 '브렌든 베가'와 함께 캘리포니아 주 산타 바바라에서 등산길에 올랐습니다. 등산이라고 해봐야 산 속 숲길을 따라 오르는 수준이었지만 등산을 거의 해보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는 그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산길은 험했고 내려오기도 전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산에서는 평지보다 빨리 어두워진다는 것을 몰랐던 두 사람은 당황하면서 차를 세워둔 곳까지 기억을 더듬으면서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습니다. 곧 엄청난 불행이 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

길리엄스가 바위에서 점프해서 뛰어내리는 순간 불행이 시작됐습니다. 착지를 잘못하는 바람에 왼쪽 다리가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던 것이었습니다. 불행은 겹겹이 찾아온다더니 그들의 휴대전화는 배터리가 다 소진돼 꺼져 있었고 해가 저물어 사방이 온통 컴컴해졌지만 플래시조차 없었습니다.

남자친구인 '베가'가 길리엄스를 등에 업고서 내려오다가 넘어지면서 베가의 안경까지도 산산조각 났습니다. 또, 바위 돌 위로 넘어지는 바람에 베가의 팔꿈치에 금이 갔고 길리엄스는 오른쪽 발목까지 부러졌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두 사람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고민 끝에 베가 혼자서 내려가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밤새도록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 다음날에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점점 의식이 혼미해졌어요."도움을 청하러 간 베가는 소식이 없고 하루 밤을 옴짝달싹 못하고 바위 위에 앉아 지새운 길리엄스에게는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어느 순간, 아무도 저를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누구도 저를 구할 수 없어 이제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다음날, 길리엄스는 폐까지 숨이 차오르고 소리를 지를 힘조차 없었습니다. 다리의 통증도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바닥에 쓰러졌는데 얼굴 위로 파리들만이 윙윙 소리를 내며 길리엄스의 절망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각, 세 명의 등반객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니콜과 그녀의 남자 친구 조, 그리고 오빠 피터였습니다. 서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면서 산길을 오르던 중 니콜이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바위 틈 사이로 뭔가 빨간 빛이 스치듯 보였습니다."이 산길 주변은 바위들과 작은 조각 돌이 잔뜩 널려 있던 곳이기 때문에 그 빨간 빛깔이 뭔가 싶었어요. 그래서 조금 더 다가가 유심히 살펴봤는데, 젊은 여자가 쓰러져 있는 것이었어요."니콜이 발견한 빨간 빛깔은 바위 옆에 쓰러져 있던 길리엄스의 머리였습니다. 길리엄스가 등산하기 얼마 전에, 머리를 빨간 빛깔로 염색했는데 회색 바위들 사이에 그 머리 빛깔이 스치듯 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길리엄스에게는 불행 중 기적 같은 행운이었습니다. 길리엄스를 발견한 니콜의 얘기를 들어보겠습니다. "그날이 월요일 오후였거든요. 그 시간은 대개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때 취업을 하지 못해 집에서 쉬던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월요일에 등산도 가능했죠."

길리엄스를 발견한 세 사람은 휴대전화로 구조를 요청하기로 했습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피터가 자연과 하나가 되야 한다며 휴대전화를 놓고 오자고 했지만 조는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유일하게 휴대전화를 챙겨왔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길리엄스의 가족에게 길리엄스의 낙상 사실을 알렸고 911에도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곧바로 구조 헬리콥터가 왔고 길리엄스를 태우고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길리엄스는 다섯 차례의 수술을 받고 11개월간 입원한 뒤에야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길리엄스가 산속에서 기다리는 동안 구조를 요청하러 갔던 베가는 어떻게 됐을까요? 안경조차 없는 상태에서 어두운 산길을 헤치고 가던 베가는 그만 절벽 위에서 떨어져 숨지고 말았습니다. 베가의 어머니는 길리엄스가 병원 이송 직후 응급 처치를 받은 뒤 베가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장례 일정을 늦췄습니다.

길리엄스의 이 같은 사연은 SNS를 통해 미국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사건 발생 1년 뒤인 어제, 허핑턴 포스트(Huffington Post)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현재 길리엄스는 건강을 되찾았고 당시의 정신적 충격도 극복했습니다."몇 주 전에 애로요 국립공원에 다녀왔어요. 이제는 꼭 정해진 산길로만 다녀요."//박병일 기자 cokkiri@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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