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요정의 역사

2015. 3. 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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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우리나라 요정(料亭)의 역사는 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1908년 국가 소속 공인 예술가인 관기(官妓)가 폐지되자 궁중 기녀들이 가무영업 허가를 받고 유흥음식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게이샤가 나오는 일본식 요정을 본 따 술과 요리를 먹으며 기생들의 가무를 즐길 수 있는 한국식 요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45년 광복 전 서울에는 명월관을 비롯해 국일관, 송죽관 등의 요정들이 이름을 날렸다. 정치인, 기업인, 상인 등이 주로 출입했다.

기생 조합이자 교육기관인 권번 출신의 기생이 한복을 입고 창, 잡가, 노랫가락 등을 가야금 병창으로 부르거나 검무, 남무, 북춤 등을 추면서 주흥을 돋웠다.

광복 이후엔 권번 출신 기생들이 거의 자취를 감추고 대개가 단순히 술을 따르며 말벗 상대가 돼주는 이른바 '화초기생(花草妓生)'이 요정의 새로운 풍속도를 열었다.

이후 근대화를 거치면서 요정은 점차 정권 실세와 고위 관료가 은밀히 하는 접견 장소로 발전한다.

칸막이 방으로 이뤄진 요정의 특성상 밀실 접대의 온상으로도 부상했다. 이 자리에서 인사 청탁과 돈거래 뿐 아니라 성 접대까지 성행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서울의 대표 요정들도 이젠 모두 자취를 감췄다.

대표적으로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선운각'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후처로 알려진 인물이 1967년에 문을 연 고급 요정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연회를 가졌고, 외국 원수와의 만찬 장소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시해 이후 우여곡절 끝에 전통 한정식집으로 바뀌었다가 2000년 들어 경영악화로 이마저 문을 닫았다.

현재는 한 종교단체가 기도원과 청소년 선교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 성북동의 '삼청각'도 권력 실세만 드나들던 유명 요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때 방문단의 만찬장으로 쓰려고 만든 곳이다.

이후 1980년대까지 정치인 등 유력 인사들이 밀담을 나누는 요정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강남 룸살롱 문화가 확산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서울시의 문화시설 지정을 받아 복합 문화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1953년에 처음 문을 연 종로구 익선동의 '오진암'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단골집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후 1970~80년대 정·관계의 최고 실력자들이 자주 모습을 비추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부암동으로 자리를 옮겨 전통 문화공간이 됐다.

현재 과거와 같은 요정은 성매매 단속을 피해 다수가 음지로 물러난 상태다. 이 때문에 여자 도우미가 있는 고급 한정식집 정도가 남아있는 요정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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