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보육은 세금폭탄인가? 성장동력인가?

박종훈 2015. 3. 5.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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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6]

지난 1월 8일 인천 어린이집 폭행 사건은 어린이를 둔 부모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 폭행 사건의 근본 원인이 포퓰리즘에 의한 무분별한 무상보육 확대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부 언론은 우리나라처럼 과도한 무상보육 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다며, 어린이집 폭력과 미래세대에 대한 세금 폭탄을 막기 위해 당장 무상보육을 축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의 아동 복지 투자가 포퓰리즘이라는 오명을 써야 할 정도로 정말 과도한 수준일까? 2012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아동 복지 투자는 국내총생산(GDP)의 0.8%에 불과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32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었다. 4% 안팎 수준인 북유럽 국가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영국(5위)이 3.8%, 10위인 프랑스가 3.2%였다. 유럽국가 중 한국과 유아복지 투자가 비슷한 수준인 나라는 '복지 국가'로 우리나라에 잘못 알려진 그리스 정도밖에 없었다.

만일 어린이집 폭행 사건이 과도한 아동 복지 포퓰리즘으로 일어난 것이라면,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는 어린이집 폭행이 만연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어린이집 폭행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라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무상보육으로 미래세대에 천문학적인 세금 폭탄을 떠안기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동의하기 어렵다. 2015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예산은 각각 10조 수준으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2040년이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복지 정책이 지금과 똑같이 유지된다고 가정할 때 노인 인구의 급증으로 기초연금 예산은 한 해 100조원을 돌파하게 되지만, 지금처럼 출산율 하락이 가속화되면 무상보육 예산은 10조 원대를 넘어서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무상보육의 세금 폭탄 문제는 기초연금과 비교할 때 문제라고 할 수도 없는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청년이나 아동을 위한 복지만을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오판이다. 저출산·고령화에 시달리는 우리나라에서 청년과 아동에 대한 복지 투자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유아 복지에 4~5배나 더 많이 투자하는 이유는 결코 포퓰리즘 때문이 아니라, 출산율을 높이고 인적자본을 확충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이다.

누가 감히 복지투자를 단순 비용이라고 단언하는가?

우리나라 경제 관료들은 복지에 지출되는 돈은 그저 사라지는 돈이고, 콘크리트를 짓는데 돈을 써야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착각을 뒤집는 놀라운 복지 투자 실험이 2008년 나미비아(Namibia)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이뤄졌다. 나미비아는 1990년에야 독립한 늦둥이 신생국가이다. 그런데 독립 이후에도 여전히 소수의 백인이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탓에 대부분 흑인들은 50%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나마 직장을 가진 흑인들도 대부분 낮은 임금을 받으며 단순 노동에 종사하고 있었다.

[사진 제공 = 나미비아의 '빅(BIG) 프로젝트'] http://www.bignam.org/BIG_pictures.html▲ 위의 주소를 클릭하시면 더 많은 사진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나미비아에서도 오치베라-오미타라(Otjivero-Omitara)는 가장 가난한 마을 중 하나였다. 2007년 11월 당시 오미타라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는 가구가 전체의 75%에 이르고 있었다. 주민들은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렸고, 돈만 생기면 현실의 괴로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다. 특히 어린이들은 42%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고, 돈을 벌기 위해 농장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몇 주씩 학교에 결석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2008년 1월, 오미타라 마을에서 놀랍고 획기적인 실험이 시작되었다. 나미비아의 시민단체가 세계 여러 나라의 도움을 받아 60세 이하의 주민들 930명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한 달에 100 나미비아 달러, 우리 돈으로 1만 5000원의 기본 소득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21세 이하 어린이들의 몫은 그들의 보호자에게 지급했다. 이 계획은 근로세대를 위한 복지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기본소득 프로젝트(the Basic Income Grant pilot project)'로 앞의 영문자만 따서 '빅(BIG) 프로젝트'라고 불렀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도입할 당시, 나미비아의 부(富)를 독점한 백인 부자들은 젊은 근로계층에게 이러한 복지혜택을 주면 나태해져서 그들의 인생을 더욱 망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와 달리 이 프로젝트는 놀라운 기적을 가져왔다.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자 밀가루와 이스트를 사서 빵을 굽거나 옷감을 사서 옷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한 청년은 가게를 연 지 2년 만에 직원 두 명을 고용할 만큼 성공했다. 젊은 근로세대가 좌절과 절망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갖고 창업을 시작하자, 마을 전체가 놀라울 정도로 활력을 찾기 시작하였다.

빅 프로젝트가 도입된 지 단 2년 만에 '식량 빈곤선(Food Poverty Line)'에 있는 사람들의 비중이 72%에서 16%로 기적적인 감소세를 보였고, 마을의 실업률은 60%에서 45%로 낮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놀고 먹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백인 부유층의 부정적인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시민단체가 제공한 기본소득을 제외하고도 마을 주민들의 소득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118 나미비아 달러에 불과했던 마을 주민들의 1인당 월 평균소득이 불과 2년 만에 152 나미비아 달러로 늘어났다.

마을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축이란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먹고 사는 데 급급해 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아이들도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나는 부모들을 목격한 마을 어린이들이 절망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잘 설계된 복지 투자는 결코 사라지는 돈이 아니라 경제를 더욱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복지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가장 강력한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복지투자는 비용'이라는 고정관념을 고수하고 있는 소수의 비관론자들은 이 프로젝트가 소규모 마을이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우길 수도 있다. 하지만 비슷한 복지 실험이 인구 2억 명이 넘는 브라질에서도 똑같은 성공을 거두었다. 2003년 룰라 다 실바(Lula da Silva) 전 브라질 대통령이 시작한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복지 정책은 폴 울포위츠(Paul Wolfowitz) 전 세계은행 총재가 "효과적 사회정책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다.

잘 설계된 복지 투자는 어떤 부양책보다 강력하다

OECD 국가 중에 우리나라처럼 아동 복지를 단순히 포퓰리즘으로 보는 나라는 거의 없다. 오히려 미래의 성장동력을 만드는 가장 강력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프랑스는 1970년 합계출산율이 2.47로 떨어지자 이를 국가비상사태로 보고 아동과 청년 복지에 강력한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저출산·고령화가 시작된 선진국 중에서 2.0이 넘는 합계출산율을 유지하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프랑스는 아동과 청년 복지 투자를 저출산·고령화와 싸우기 위한 강력한 무기로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콘크리트를 지어야만 투자라고 고집하는 이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얘기겠지만, 유아복지 투자는 다른 어떤 투자보다도 사회적 가치가 높다. 미국에서 2003년 진행된 페리 프리스쿨 프로그램(High/Scope Perry Preschool Program의) 연구 결과, 유아 보육에 단돈 1달러를 더 투자하면 국가 경제 전체적으로는 무려 16달러 14센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을 일찍 깨달은 선진국들은 아동과 청년 복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장기 불황에서 우리를 구할 최강의 무기

'대담한 경제' 13편에서 15편까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우리 경제는 이제 '일본화'라고 불리는 최악의 장기 불황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그 위기를 맞닥뜨린 일본은 건설 투자로 경기를 부양하려다 시간과 돈을 모두 낭비한 결과, 25년 동안 장기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뒤늦게야 잘못 대응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 정부가 지난해 아동 복지 투자를 강화하려고 했지만, 결국 당장 눈앞의 '표' 계산에 밀려 또 다시 포기하고 말았다.

물론 모든 복지가 다 성장 동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심리에 바탕을 둔 '행동경제학'을 토대로 정교하게 설계된 복지 투자만이 우리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동과 청년 복지 투자는 우리 경제의 미래를 지키는 소중한 등불이 될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포퓰리즘 논란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장기 불황이 우리 경제를 습격하기 전에 어떻게 그 불씨를 살릴 것인지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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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월요일과 목요일에 주 2회 연재되었던「대담한 경제」는 다음주부터 월요일에 주 1회 연재로 바뀝니다. 횟수가 줄어든 대신 더욱 높은 품질의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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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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