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시대에 80년대식 전단 살포, 왜?

김현빈 입력 2015. 3. 5. 04:51 수정 2015. 3. 5.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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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홍대 등장 후 전국 확산 "사이버 추적 피하기 위한 의도"

"정부 권위주의 행태에 반감 표출" 사회·심리학자들 진단·분석 분분

'전단'이 부활했다.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첨단 소통방식이 즐비한 시대에 1980년대 대학가에서나 볼 법한 민주화 투쟁식 아날로그 종이 글이 도심을 수놓고 있다. 익명으로 반정부 전단을 뿌리는 이들의 신원은 아직 오리무중. 정부가 사이버검열 의지를 내비치자 반정부 여론 조성 수단도 온라인을 탈피해 아날로그로 회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은 지난달 25일 서울 경복궁과 신촌 일대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국가정보원법 위반, 모두 유죄판결!"이라고 적힌 정부 비판 전단 수백장이 뿌려졌다. 전단 작성 주체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로 돼 있었으나 이들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단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지난해 12월 16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직후 서울 지하철 홍대입구역에 '진짜 종북은 누구인가?'라며 박근혜정부를 정조준한 전단이 살포됐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역, 27일 명동, 28일 회현동에 뿌려진 전단도 같은 단체가 살포한 것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옥상에서 기습적으로 전단을 뿌린 뒤 사라지는 탓에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남대문서 관계자는 4일 "현재 각 경찰서별로 분석한 폐쇄회로(CC)TV 장면을 대조하고 있지만 살포자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뿐이 아니다. 1월 13일 광주공항 화장실, 2월 16일 대구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 도로, 3월 1일 인천 동인천역 인근에서도 정부를 비판한 익명의 전단 수백~수천장이 발견되는 등 전단 살포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의 권위주의적 행태, 특히 지난해 '사이버 공안' 논란이 제기된 이후 생겨난 반감의 표출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지난해 9월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 직후 검찰을 위시한 사정당국은 온라인 공간에 대한 실시간 검열 방침을 내비쳤고, 이 여파로 카카오톡 등 국산 SNS를 버리고 해외 메신저로 옮기는 '사이버 망명'이 불거진 것과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표현이 문제가 될 때 해외 인터넷주소(IP)가 아닌 이상 검찰과 경찰이 맘만 먹으면 IP추적을 통해 금세 신원을 밝혀낼 수 있다"며 "존재를 숨기기 위해선 번거롭겠지만 아날로그 방식이 더 안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이중잣대를 희화화하려는 퍼포먼스의 일종이란 견해도 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수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삐라) 살포가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결론 내렸다. "자기들이 하면 평화활동, 남이 하면 종북 반국가행위"라는 한 전단의 문구는 이에 대한 비판 의식을 함축해 보여준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북의 위협이 예상되는데도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로 포장하는 정부 행태를 보고 반대 진영에서 '같은 방식으로 의견을 밝힐 때 사정당국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고 전략을 짠 것일 수도 있다"고 풀이했다.

전단 살포를 처벌하기 위한 법 적용이 마땅치 않다는 점도 정부 비판세력을 온라인 밖으로 불러낸 원인으로 꼽힌다. 경찰은 설령 살포자를 붙잡더라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기껏해야 과태료를 무는 수준의 광고물 무단 부착이나 옥외광고물법 위반 적용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은 "무리를 하면 형법상 주거침입죄 정도의 책임을 물릴 수 있는데 처벌 수위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단은 출판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범주에 벗어나고 모욕죄는 친고죄라 이 역시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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