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막 없이 깨고 부수고.. 쓰레기山, 재개발구역 주민 "목숨 걸고 다닐판"

입력 2015. 3. 5. 03:05 수정 2015. 3. 5.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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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길음동 등 곳곳 안전불감

[동아일보]

주민 90%가 떠난 서울 성북구 길음동 골목 귀퉁이에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쨍그랑' '쾅쾅'.

지난달 25일 오후 4시 반. 서울 성북구 길음동의 한 골목에 들어서자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들려왔다. 3층짜리 주택 2층에서 인부 3명이 떼어 낸 유리창을 부수는 소리였다. 가로 3m, 세로 1.2m나 되는 대형 유리창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인부들은 찌그러진 창틀을 창밖 골목길로 던졌다. 창틀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주택 앞 골목은 차량 두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 주택 근처에는 가림막이나 펜스 등 어떤 안전시설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른 채 지나가다 떨어진 창틀에 크게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보다 못한 주민 이모 씨(67)가 "왜 (위험하게) 하느냐"며 항의하자 인부들이 잠시 작업을 멈췄다. 이 씨가 "취재 중"이라며 기자를 가리키자 인부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이곳은 지난해 4월 이주가 시작됐다. 기존 2000가구 가운데 약 90%가 떠났고 현재 200가구가 남아 있다.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해 여전히 500명 안팎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주거환경은 끔찍할 정도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길에는 쓰레기더미가 50cm 높이로 수북이 쌓였다. 골목 바닥에는 깨진 화분과 유리, 부서진 의자, 썩은 음식물, 구겨진 페트병 등이 뒤엉켜 아수라장이다. 주민 김모 씨(57)는 "규격봉투에 담아 쓰레기를 내놓아도 3, 4일간 수거하지 않는다"며 "예전에는 매일 청소차가 다녔는데 한 달 전부터는 구청에 전화를 해야 치운다"고 말했다.

안전사고 위험도 커지고 있다. 올해 1월 쓰레기더미에서 원인 모를 큰불이 2건이나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공사 때 가스와 수도를 차단하려고 보도블록 파헤치기를 반복하면서 도로는 온통 울퉁불퉁해졌다. 밤에 가로등이 들어오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 골목도 여러 곳이다. 아이 넷을 키우는 김모 씨(54·여)는 "골목을 오가는 아이들이 행여 다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리는 공사 소음도 골칫거리다. 경비원으로 일하는 주민 채모 씨(73)는 밤샘 근무를 마치고 오전 7시 반에 귀가한다. 그러나 날카로운 공사 소음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다.

건물 철거 과정에서 석면에 노출될 위험도 제기됐다. 주민 박모 씨(70·여)는 "시공사에서 제대로 펜스도 설치하지 않고 석면 제거 작업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건축자재에 많이 포함된 석면은 폐암을 유발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반면 석면 해체를 담당한 업체는 "기준에 맞게 안전막을 설치하고, 습윤제(분진 발생을 막는 것)도 뿌리며 작업했다"고 반박했다.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된 재개발구역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성북구 장위동, 서대문구 북아현동 등지의 재개발구역에도 빈집이 늘면서 안전사고는 물론이고 범죄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시공사 측에 가림막을 제대로 설치하고 폐기물은 담장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당부했다"며 "다만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주민 불편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은서 clue@donga.com·이샘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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