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중국인 돌아가라" 홍콩의 절규..우리는?

우상욱 기자 입력 2015. 3. 4. 11:33 수정 2015. 3. 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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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돌아가라."

"중국 보따리상 때문에 못 살겠다."

"중국인은 중국 분유 먹어라."

요즘 홍콩에서는 주말마다 이런 구호가 거리를 채웁니다. 매주 200~300명의 홍콩인들이 모여 중국 여행객들에게 '돌아가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오지 마라'이겠죠. 이를 막는 홍콩 경찰과 몸싸움도 불사합니다. 친중 단체들이 맞시위를 하면서 홍콩 곳곳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으면 홍콩 경제에 도움이 될 텐데요. 그들이 뿌리고 가는 돈이 홍콩의 주 수입원일 텐데요. 돈 들고 물건 사러온 고객을 상점 주인이 나가라고 소리 지르는 격 아닌가요?

사실 홍콩 시민과 홍콩을 찾는 중국인들의 갈등은 올해 들어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꽤 역사가 깊습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홍콩에서 중국인들의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본토인은 일종의 불법 체류자였으니까요. 영화 '첨밀밀'을 보면 잘 나타납니다. 주인공으로 분한 장만옥과 여명(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식 발음대로 읽었습니다)은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온 본토인이었습니다.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어렵게 삽니다. 영어와 광둥어를 못한다고 무시를 당합니다. 갑인 홍콩인, 을인 중국인. 갑을 갈등이었습니다.

홍콩의 반환 이후 중국인들의 위상은 달라집니다. 돈을 쓰러오는 '손님'이 됐습니다. 다만 본토인이 홍콩에 오가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숫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갈등은 내재된 상태였습니다. 2009년 홍콩과 마주보고 있는 선전 시민들에게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그전에는 여행사가 조직한 단체 여행만 가능하던 중국인들이 개인적으로 쉽게 비자를 받아 홍콩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은 선전과 같이 홍콩의 자유여행을 허용한 도시를 매년 늘려 이제는 49곳에 달합니다. 2003년 한해 800만 명에 불과했던 홍콩 방문 중국인은 2009년 이후 급증하면서 2013년에는 5배인 4천만 명을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2012년 초 갈등이 터졌습니다. 계기는 지하철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였습니다. 아직도 중국의 지하철에서는 이런저런 음식을 먹는 승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컵라면도 먹습니다. 한 중국인 부부가 홍콩에서 하던 대로 했습니다. 홍콩 승객들의 항의를 받았습니다. 중국인 부부는 같이 삿대질을 했고 결국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촬영한 화면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홍콩인들의 반중국인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초에는 노상방뇨가 문제 됐습니다. 홍콩에 놀러온 한 중국인 부부가 2살짜리 여자아이를 길가에서 오줌

을 누게 했습니다. 중국에서라면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홍콩은 달랐습니다. 홍콩인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홍콩과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일대 대전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홍콩인의 이번 갈등은 궤를 달리 합니다. 앞에서 보셨듯이 이전까지의 갈등은 생활 습관의 차이였습니다. 문화적 이질성 탓이었습니다. 다분히 감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홍콩인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원인입니다. 보다 근원적 갈등입니다.

중국인 방문객이 수용 가능한 인원수를 넘다보니 대중교통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이 턱없이 모자라게 됐습니다. 그 불편은 중국인 방문객뿐 아니라 홍콩인들에게도 지워졌습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인들이 홍콩에서 생활필수품을 싹쓸이 하다시피 한다는 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분유입니다. 오죽하면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한도까지 정했습니다. 물건을 구하기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수요가 넘치다보니 값이 오릅니다. 생필품 값 인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홍콩 서민들의 몫입니다. 내가 직접 중국을 상대로 돈을 벌고 있지 않다면 홍콩 서민의 입장에서 찾아오는 중국인은 삶을 어렵게 만들고 피해를 주는 대상일 뿐입니다.

그래서인지 홍콩 행정당국도 과거보다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은 최근 공식석상에서 "중국인 방문객 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올 양회에서 중국 중앙 정부 인사들을 상대로 관련 제안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렁 장관은 "중국인 관광객 때문에 홍콩 시민의 일상생활이 영향을 받는 점을 알고 있다"며 개인자격으로 홍콩을 방문할 수 있는 중국 본토 도시의 수를 더 늘리는 방안에도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홍콩인의 생각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중국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사업가들은 렁 장관의 이런 움직임에 반대합니다. 홍콩의 가장 부유한 사업가인 리카싱이 그렇습니다. "중국은 홍콩에 있어 기댈 언덕이고 경제적 기반이다. 이런 중국과 자유로운 통행을 막는 것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당장 중국인의 자유 왕래를 막을 경우 홍콩 항셍지수가 1천 포인트는 떨어질 것이다."

최근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철수하고 있는 리카싱이 중국 정부를 위해 립 서비스를 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목소리가 홍콩 경제계에서는 흘러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홍콩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입니다. 중국인을 얼마나 수용할지, 어떻게 감당할지, 아무런 밑그림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합니다. 홍콩 당국의 실책입니다. 애초 중국에 문호를 열면서 정밀한 청사진과 시간표를 세우고 주도적으로 실행했어야 합니다. 홍콩의 특유한 색깔과 향기를 지키면서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적화된 규모의 중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고민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중국 중앙 정부에 끌려가듯 무분별하게 문을 열다보니 지금의 혼란과 부작용을 겪게 됐습니다.

이런 홍콩의 어려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습니다. 우리도 조만간 같은 고민에 부딪히거나, 이미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중국 방문객 600만 시대를 열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몇 년 안에 1천만 시대가 올 전망입니다.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가 돼있습니까?

벌써 아무런 준비 없이 허둥지둥,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적절한 숙박시설이 없어 서울에 온 중국인 관광객을 경기도 평택에서 재우고 있습니다. 관광 콘텐츠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고 사기성 농후한 바가지 쇼핑을 시키는데 혈안입니다. 중국인을 위한 관광 관련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에 다녀간 중국인들마다 한국에 대한 나쁜 인상만 가져가기 일쑤입니다.

제주도의 사례는 더욱 극명합니다. 중국인 관광을 끌어들이기 위해 무비자 입경을 허용했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중국 자본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제주도를 중국에 빼앗기게 됐다고 호들갑입니다. 멀쩡히 허가를 내줬던 사업을 뒤늦게 막다보니 중국과 외교적 갈등만 초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 홍콩이나 중국과 갈라져서는 살기 어렵습니다. 이미 서로 엮여 있는 부분이 너무 크고 많습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미래를 중국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넋 놓고 무조건 수용하다가는 홍콩과 같이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 배보다 큰 배꼽을 안고 끙끙 앓을 수 있습니다. 인구가 700만인 홍콩보다는 조금 낫겠지만 5천만도 사실 14억 앞에서는 한 줌이니까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도찐개찐(맞춤법 상으로는 도긴개긴)입니다.

▶ 목청 높인 홍콩 시민 "中 보따리상 물러가라" 시위

▶ 홍콩, 밀려드는 중국인 쇼핑객에 '몸살'

우상욱 기자 woos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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