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10개월 장관' 잔혹사

2015. 3. 4. 10:2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ㆍ평균 재임기간 9개월 남짓… 윤진숙·이주영 이어 유기준 내정자도 '단명' 예고

평균 재임기간이 9개월하고 며칠. 이런 저런 이유로 열 달 '깔딱고개'를 넘지 못한다. 해양수산부 장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개월마다 장관이 바뀌다 보니 "장관이 엔진오일이냐. 10개월마다 바꾸게"(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MBC <100분 토론>에서)라는 말까지 나왔다.

해수부 장관 잔혹사는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유기준 해수부 장관 내정자가 한술 더 떠 아예 취임하기도 전부터 '10개월 장관'을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만약 유 내정자마저 단명(短命) 장관으로 끝나면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한 해수부는 세 번 연속 10개월 미만 장관을 배출하게 된다.

청와대는 2월 17일 해수부 장관 내정자를 발표했다. 유기준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해수부 장관 자리가 공석이 된 지 50여일 만이었다. 유 내정자는 부산 서구에 지역구를 둔 3선 의원으로 해양전문 변호사를 지냈다. 부산 서구에는 부산 공동어시장을 비롯, 각종 해양수산 관련 단체와 기업이 몰려 있다.

유 내정자는 발표 직후 부산 서구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정치인은 장관을 겸직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총선 때도 계속 출마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렵지만"이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총선 출마의사를 직접 밝혔다는 것은 상당한 파격이었다. 4선 고지를 향한 유 내정자의 의지가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총선 출마의지 밝혀 10개월 못 채울 듯

문제는 재임기간이다. 내정은 됐지만 장관 인사청문회는 3월 중순에 열린다. 인사청문회를 무리 없이 통과했다고 쳐도 임명되면 벌써 3월 말이다. 총선에 출마하려면 총선 90일 전에는 사퇴를 해야 한다. 내년 4월 말이 총선이니 늦어도 내년 1월 말까지는 물러나야 한다. 3월 말에 임기를 시작해서 이듬해 1월 말 마치는 일정이다. 임기 10개월을 채우기도 빠듯하다.

앞선 윤진숙, 이주영 전 장관도 '마의 10개월' 벽을 넘지 못했다. 윤 전 장관은 2013년 4월 17일 임명됐다가 이듬해 2월 6일 해임됐다. 9개월 25일(295일) 만이었다. 윤 전 장관은 임명 직후부터 가벼운 처신에다 부적절한 언행들을 하면서 자리가 위태위태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롱런'이 예상됐다. 결정타는 우이산호 기름유출 사고였다. 방송과 국회에서 또다시 실언을 반복하면서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고, 청와대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해임 건의를 하는 형식으로 윤 전 장관은 경질됐다. 이어 소방수로 투입된 인물이 이주영 전 장관이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지역구를 둔 3선 의원인 이 전 장관은 장수가 예상됐다. 야당도 호의적이어서 인사청문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통과했다. 하지만 임명 한 달 만에 예상치 못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였다. 이 전 장관은 진도 현지에 머물며 수습에 나섰다. 몸도 마음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 전 장관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이 전 장관은 지난해 3월 6일 취임해 12월 23일 물러났다. 임명된 지 9개월 22일(292일) 만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은 대체적으로 장수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해수부 장관의 잦은 교체는 매우 이례적이다.

해수부 장관은 과거 정부에서도 대표적인 단명 자리였다. 1996년 해수부 설립 이후 2008년 통·폐합되기까지 15명의 장관 중 11명이 임기 1년을 넘기지 못했다. 평균 재임기간은 9개월에 그쳤다.

역대 장관 중 가장 장수한 장관은 장승우 전 장관으로 1년 3개월(15개월)에 불과하다. 그 다음 오래 장관 자리에 있었던 인물은 오거돈, 김성진 전 장관으로 14개월이다. 초단명 장관도 있었다. 최낙정 전 장관이다. 최 전 장관의 재임기간은 불과 보름이었다. 이때도 설화가 문제였다.

김무성 "장관 자리 경력관리용 아니다"

해수부 장관의 '단명 장관' 전통이 만들어진 것은 해수부의 탄생 배경과 관련이 깊다. 해수부는 정치적으로 탄생한 부처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YS는 집권 4년차였던 1996년 5월 31일 부산에서 가진 '제1회 바다의 날' 행사에서 "정부는 종합적인 해양 개발과 이용·보전정책을 전담할 해양부를 신설하기로 했다"며 부처 신설을 깜짝 발표했다. 전날까지 아무도 몰랐다. 관련 부처의 반발을 고려해 비밀에 부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장관은 초대부터 정치인이 기용됐다. 초대 해수부 장관은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이었다. 신 전 부의장은 상도동 YS계의 중진으로 7선 의원이었다. 갓 태어난 해수부를 조기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측근 정치인을 기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후 해수부는 어느 부처보다 정치인 외풍을 많이 탔다. 정치적 환경이 변할 때마다 낙하산 장관이 수시로 내려왔다.

DJP(DJ와 JP) 공조가 이뤄지면서 해수부 장관 자리는 자민련 몫이 됐다. 해수부 장관에 부산·경남 출신 외 충청권 출신이 4명(정우택 전 장관을 충청으로 분류)으로 가장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또 정치인의 행정경험 쌓기용으로도 이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장관이다. 노 전 장관은 해수부에서 익힌 행정개혁을 토대로 대통령이 된 뒤에는 국정개혁에 나서기도 했다. 임명된 정치인 장관들은 수시로 총선 차출용으로 불려나갔다.

해수부는 타 부처에 비해 조직이 작고 부처 내 위상도 크지 않다. 임명권자로서는 장관직을 어떻게 써도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기준 내정자를 임명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유 내정자는 친박 의원으로 분류된다. 해수부에서 경험을 쌓게 한 뒤 내년 총선에 차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내정자뿐이 아니다. 이번 개각에서 제외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도 내년 선거 출마설이 나온다.

하지만 유 내정자 뜻대로 10개월 만에 장관직을 그만둘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는 설 연휴가 끝난 2월 23일 당 최고위원 회의에서 "장관이라는 자리를 한 정치인의 경력 관리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개혁에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날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를 만나서도 "농담이 아니라 개혁의 성과를 내지 않으면 (입각의원들을) 당에서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유 내정자를 겨냥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유 내정자 지역구인 서구는 인구가 적어 20대 총선에서 통·폐합된다. 통·폐합되는 인근 구는 부산 영도구, 중·동구, 사하구 등으로 고려된다. 그 중에서도 영도구와의 통합 가능성이 가장 높다. 영도구 지역구 의원이 바로 김무성 대표다. 유 내정자가 사퇴를 하면 '비박'인 김 대표와 경선에서 맞붙는다는 얘기다.

답답해진 것은 해수부다. 힘 있는 장관이 와서 조직을 이른 시간 안에 정비해주기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10개월짜리 장관이 되면 업무 파악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또 떠나는 꼴이 된다. 만약 유 내정자가 김무성 대표와 대결을 피할 경우는 3년짜리 장관이 될 수도 있다. 해수부 고위 관계자는 "(임기 여부는) 내정자가 청문회에서 입장을 밝히지 않겠느냐"며 "일단 임명되면 쉽게 처신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우리는 그런 상황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

주간경향 공식 SNS 계정 [ 페이스북] [ 트위터]

모바일 주간경향[ 모바일웹][ 경향 뉴스진]

-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