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조 食파라치 사기단' 수도권 마트 습격사건

곽래건 기자 2015. 3. 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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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하남에서 대형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A씨는 '영업정지 7일' 아니면 '800만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설 연휴 뒤인 지난달 말 '판매된 제품의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고객 신고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것이다. 유통기한이 한 달가량 지난 수입 오렌지 주스 하나가 지난달 18일 판매됐다는 내용이었다.

신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매장 직원들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신고된 제품은) 지난해 9월 30여개를 상자째 납품받아 달랑 2개가 남았는데 신고된 걸 빼고 남은 한 개는 유통기한이 아직 석 달쯤 남았다"는 것이었다. 같은 상자에 담긴 제품이 유통기한이 다를 리 없었다. 납품 회사에 확인했더니 그쪽 영업사원은 "근처 다른 마트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경쟁 관계라 왕래조차 뜸했던 해당 마트를 찾아가자 그곳 사장 B씨는 신고자로 추정되는 일행들이 찍힌 매장 CCTV 영상을 보여줬다. A씨는 깜짝 놀랐다. 꼭 한 시간 전 자신의 매장을 다녀간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남자 1명과 여자 2명이었다. 나중에 수소문해보니 설 전날인 2월 18일 하루에만 경기도 하남의 대형 수퍼마켓 5곳이 신고를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5곳 모두 반경 700m 안에 있었고, 대부분 매장에서 같은 인물들이 CCTV에 찍혀 있었다.

더구나 CCTV엔 수상한 장면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은 특정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거나 물건 1개만을 콕 집어 가져갔고, 물건을 주머니에 넣는 듯한 모습도 찍혔다. 한 여성이 매대 앞에 한참을 서성이다 물건을 주머니에 넣은 듯한 모습이 보인 뒤 전화하면 다른 여성이 달려왔고, 곧이어 다른 남성이 달려와 해당 매대에서 물건을 집어 동영상을 촬영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B씨의 다른 매장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서울 강동구와 경기도 하남 일대 수퍼마켓 주인들 사이에 '3인조 식파라치 사기꾼' 소문이 급속히 퍼졌다. 그 결과 피해를 주장하는 업체들이 줄줄이 나왔다. 설 연휴 전인 지난달 15일부터 18일 사이 서울과 경기도에서만 최소 40여 군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15일 서울 송파구(23곳), 16일 강동구(7곳), 17일 광진구(6곳), 18일 경기도 하남(5곳)인 식이었다.

상당수 매장 CCTV에선 어김없이 그 3명이 나타났다. 신고가 접수된 제품은 외국산 오렌지주스와 머스터드 소스 등 유통기간이 비교적 긴 제품들이었다. 신고를 당한 매장 중엔 개인이 운영하는 대형 수퍼마켓 외에도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와 기업형 수퍼마켓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납품 업체들은 "해당 유통기한 일자의 제품들은 납품한 적이 없다"며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했다. 유통기한에서 단 몇 시간이 지났다며 신고를 당한 곳도 있었다. 업체들은 "식파라치 3인조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밖에서 가져온 뒤 마치 매장에서 구매한 것처럼 꾸민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다.

설 연휴를 전후해 과징금 폭탄을 맞은 업주들은 이들을 "전문적인 '식파라치'가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피해를 본 곳은 모두 매장 면적이 100평인 대형 매장이었다. 현행법상 불법 판매 신고를 당하면 업주는 통상 7일분 매출액을 과징금으로 물게 되고, 신고자는 그 액수의 최대 20%를 보상금으로 받게 돼 있다.

피해 업주들은 "매출이 큰 대형 매장만 골라, 가장 정신없는 설 연휴에 이런 일을 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고 당한 매장들은 800만~1300만원가량의 과징금 처분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업주들은 지난달 28일 경기도 하남경찰서에 '동일범으로 보이는 이들 3인조를 잡아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관련 자료들을 모아 경찰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경찰서에서도 이 3명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량 식품을 신고하는 신고자에게 포상금을 주는 제도는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일부 부작용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본지는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CCTV에 찍힌 3명과 접촉해보려 했지만 권익위 측은 "공익신고자보호법상 신고자의 신원을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식파라치

연예인 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며 특종 사진을 노리는 '파파라치(paparazzi)'와 '음식(食)'의 합성어.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 등을 신고해 포상금을 타내는 사람을 일컫는다. 지자체에 신고하면 3만~10만원가량 보상을 받고,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면 현행법에 따라 과징금의 최대 20%까지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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