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매달 100만원씩 집 살 때 진 빚 갚느라.. 애들과 놀이공원서 외식 한번 못해

박병률·이윤주 기자 2015. 3. 3.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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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오른다는 보장없어 불안.. 정부 기대와 달리 '가계 긴축'

경기도 분당에 사는 정이현씨(45)는 10년째 '긴축소비'를 하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한창이던 2005년 성남시 분당구에 집을 사면서 1억5000만원의 빚을 진 대가다. 매달 100만원이 넘는 원리금을 갚느라 아이들과 놀이공원에 가서 밥을 사먹어 본 기억이 없다. 아이들 옷은 웬만하면 주변에서 물려받아 입혔다. 한때 레고 시리즈가 아이들 또래에서 유행했지만 한번도 사주지 않았다. 부모 용돈은 10년째 동결하고 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상여금이 깎였고, 그러면서 실제 월급 인상도 얼마 안됐다. 조만간 구조조정에 나설 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어 아직도 10년이 남은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은 대부분 대출을 받아서 집을 사는 데다 막상 사더라도 집값이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니 행복감을 느낄 틈이 없다"며 "그런 불안감이 소비축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그래픽 | 박지선 기자

지난해 7월 최경환 경제팀이 출범하면서 내세웠던 경기부양책이 부동산 정상화였다. 금융대출조건을 완화하고 금리도 두 차례 내렸다. 당초 반대하던 금융당국과 한국은행도 "부동산이 살아야 경기가 산다"는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정부가 부동산 부양에 올인한 것은 부동산 거래가 미치는 내수진작 효과가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동산 거래가 늘어나면 동네 부동산중개업소를 비롯해 이사업체, 인테리어업체들의 수익이 늘어나고, 집값의 점진적인 상승에 대한 기대가 더해지면 자산효과(자산가치의 증가로 소비가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봤다. 지난해 아파트 거래량은 107만1000가구로 2013년(87만6000가구)보다 22.3%인 19만5000가구나 늘어났다. 2006년 이후 집거래량은 최고였다. 정부는 "집값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며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자평했다.

정부가 부동산 부양에 집중하는 사이 '소비위축의 역습'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금리를 낮춰줬지만 대출액 규모가 늘어나자 가계의 빚부담이 커졌다. 부채가 있는 가구의 연간 이자 및 상환액은 2013년 1011만원에서 2014년 1175만원으로 16.2%인 64만원이 늘어났다. 같은 기간 소득증가율은 5.2%에 그쳤다. 빚 갚는 데 돈을 쓰다보니 지출이 늘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은행의 '소비자심리지수'를 보면 지난달 103으로 1년 전인 지난해 2월(108)보다 떨어졌다. 정부가 자랑한 '집값 안정'은 자산효과가 위축되는 결과를 빚었다. 인구감소와 소득정체로 집값이 오른다는 자신감이 없다보니 소비자들의 마음은 더 빈곤해졌다.

대출이 내집마련용으로 쓰이면서 금리인하에 따른 경기진작효과도 떨어졌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담보대출 사용처로 주택구입과 전월세보증금 마련에 쓴 돈의 비중은 2010년 39.2%에서 2014년에는 47.1%로 늘어났다. 반면 사업자금으로 쓴 돈은 30.0%에서 24.4%로 줄어들었다. 투자용으로 자금이 돌지 않으니 소비가 늘 수가 없었다. 박종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빚내서 집을 사는 경우에는 부채 규모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소비가 더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집값을 올린다고 소비가 늘고 내수가 살아나는 것은 2008년 이후로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병률·이윤주 기자 m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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