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①]피로 회복·다이어트·성적 쾌감 증대..청정국 오염시키는 신종 마약이 몰려온다

김정환 입력 2015. 3. 3. 16:04 수정 2015. 3. 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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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국제연합(UN)은 인구 1만 명당 마약사범이 2명 이하인 나라를 '마약 청정국'으로 분류한다. 인구가 약 5000만 명인 한국은 그동안 마약사범이 9800명 미만이어서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해 올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청정함이 점점 오염되고 있다. 마약 청정국에서 수입된 물품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통관이 상대적으로 쉬운 것을 역이용하기 위해 중국, 동남아 국가 등 마약 생산국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는 필로폰(히로뽕·메스암페타민) 등 마약류가 급증한 탓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필로폰, 코카인처럼 누구나 마약이라고 인식하는 전통적인 마약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마약들이 피로회복·다이어트·성적 쾌감 증대 등 거짓 효능을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국내에 퍼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건실한 직장인, 순진한 대학생, 세상 물정 모르는 청소년 등 일반인들이 '하얀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신종마약에 대해 우리 사회가 빨간 불을 켜고 사이렌을 울려야 하는 이유다. 신종마약의 실태와 대비책을 알아본다. 단 일부 독자의 그릇된 정보 이용을 차단하기 위해 신종마약의 이름을 그대로 적시하는 대신 X, Z로 처리하기로 한다.

# 지난 1월10일 오전 8시5분께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대당 4억원에 육박하는 수입 럭셔리 세단 벤틀리 한 대가 맹렬한 속도로 도산사거리 쪽으로 달려가다 승용차, 택시 등 차량 4대를 추돌했다. 추돌을 당한 차량 한 대는 아예 전복되기까지 했다. 벤틀리도 차량 바퀴가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운전자 A(36)씨는 500m 가까이 더 달리다 차가 결국 멈춰 서자 주변에 주차돼 있던 아반떼 승용차를 훔쳐 타고 달아났다. A씨는 서울 성동구 금호터널 안에서 BMW 승용차를 추돌한 뒤 피해 여성 운전자를 폭행했으며, 경찰이 출동하자 옷을 벗은 채 저항하기도 했다.

이날 음주 운전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구속 입건돼 귀가 조처됐던 A씨는 한 달여 뒤인 2월11일 검찰에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강해운)는 그에게 마약류 관리법 위반, 절도,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위험운전치사상 등 6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충격적인 사실은 A씨가 29세에 800만원을 갖고 창업해 '대박 신화'를 써 내려가던 전도유망한 청년 기업인인 아기용 물티슈 업체 몽드드 유정환(35) 전 대표였다는 것.

검찰에 따르면 무면허 상태인 유씨는 사건 당일 오전 7시30분께 서울 시내 한 특급호텔에서 의사의 정식 처방 없이 향정신성의약품인 'X' 6~7정을 투약한 뒤 이 같은 행각을 벌였으며, 경찰이 귀가시키자 자숙하기는커녕 오후 1시쯤 강남구 청담동 자신의 빌라에서 다시 J 6∼7정을 투약했다.

유씨는 지난해 8월부터 회사 직원들에게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오게 하는 방법으로 5차례에 걸쳐 졸피뎀 64정을 건네받아 이 중 일부를 복용했음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유씨는 이와 함께 1월5일 태국 파타야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사실도 적발됐다.

유씨는 구속 전 서둘러 몽드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으나 몽드드의 브랜드 이미지 실추는 불가피해졌다.

◇수면제를 신종마약으로X는 이미 여성 방송인 에이미(23)가 지난해 2월 이를 복용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목받았다.

앞서 2012년 11월 수면유도제 Y 상습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던 에이미는 2013년11월 한 달간 약물치료 강의를 받던 서울의 한 보호관찰소에서 만난 여성 권모(37)씨로부터 4차례에 걸쳐 X 수십 정을 입수, 이 중 일부를 복용한 혐의를 받았다.

X는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계 수면제보다 약효가 3배 정도 강해 불면증 치료용 수면제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를 복용한 사람은 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환각에 빠진 상태다.

지난 2012년 미국 식품의약청(FDA)은 투약하고 난 다음 날 운전 등의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X의 복용량 감소를 권고했다. 또 2013년 3월 미국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청(SAMHSA)은 약물남용경고 보고서를 통해 지난 5년간 X의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례가 220%나 증가했다는 사례를 들어 오·남용 위험성을 경고했다. 국내에서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돼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X를 투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작용은 오히려 X가 신종마약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했다. 특히 유씨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국내 병·의원에서 불면증 처방을 받으면 약을 사는 데 어려움이 거의 없다. 심지어 국산보다 미국산이 효력이 2배 강하다는 이유로 인터넷을 통해 미국 사이트에 접속해 X를 직접 구매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다못해 가죽세척제까지 해외직구X 못잖게 최근 주목받는 신종마약이 'Z'다. 노란색 조그만 유리병에 'Z'라고 상품명이 쓰여 있는 이 신종 마약은 병당 액체 10㎖가 들어있는데 뚜껑을 열어 냄새를 코로 들이마시면 환각 상태에 빠진다. 한 병이면 수십 회 흡입할 수 있다.

Z는 미국에서 '가죽 세척제'로 판매되고 있어 국내에서도 해외직구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지난해 1분기에만 통관 도중 62건이 적발돼 2013년 동기와 비교해 3배가량 증가했을 정도다. 2013년 총 적발 건수는 153건이었다. 적발된 사람 중에는 대학생, 회사원, 심지어 대학교수까지 있었다.

함께 부각되고 있는 신종마약이 '합성 대마'다. 합성 대마란 일반 식물에 화학약품을 섞어서 대마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으로 2013년까지 주로 주한미군 탈영병들이 제조·유통하다 적발됐지만, 지난해 인천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가 내국인 합성 대마 사범 50여 명을 검거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새 국내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

지난 2월25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허브 마약'을 제조·판매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조모씨(43), 이모씨(44) 등 25명을 구속하고, 이를 사들여 되팔거나 투약한 대학생, 직장인 7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허브 마약은 원료를 물에 희석한 뒤 허브 식물에 뿌려 말린 다음 담배처럼 피우는 것으로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 있다. 조씨 등은 허브 마약 20㎏(6만여 명분)을 일본에서 몰래 들여오거나 국내에서 제조한 뒤 13㎏을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3g당 5만∼15만원을 받고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구매자 61명 중 8명은 중·고교생이어서 더욱 놀라움을 안겨줬다.

◇젊음의 해방구 클럽이 신종마약의 온상으로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의 유명 나이트클럽에서 횡행하던 소문이 있었다. 웨이터에게 10만원짜리 수표를 한 장을 찔러주면서 "그거"라고 한마디만 하면 잠시 뒤 술잔 밑에 '디자이너 드러그(Designer Drug)' 소포장을 테이프로 붙여 갖다 준다는 것이었다.

디자이너 드러그는 각종 합성물질을 디자이너처럼 뒤섞어 환각작용을 일으키도록 만든 신종마약을 뜻한다. 당시 대표적인 디자이너 드러그는 '엑스터시'다. 1997년 IMF 금융위기로 미국에서 유학하던 젊은이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현지에서 한창 유행하던 엑스터시를 국내로 밀반입했다. 이는 필로폰(메스암페타민)보다 가격은 싸지만, 환각 작용은 3∼4배나 강하다는 점, 필로폰이나 코카인보다 중독성이 가볍고, 다른 마약에 비해 구하기 쉽다는 점, 알약이기 때문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 등으로 서울 강남·이태원 등지의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확산했다.

급기야 2009년 가수 K, 배우 J 등이 인기 연예인들이 이를 복용한 혐의로 구속돼 충격을 줬다. 엑스터시는 일시적으로 기분이 들뜨고, 비현실감과 함께 타인에 대한 친밀도가 증가하는 효과를 보이며, 특히 술과 함께 복용하게 될 경우 그 효과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한의학회 안전정보센터는 "엑스터시는 화학 구조상 암페타민과 유사해 대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대사 체계에 치명적이고도 지속적인 손상을 입혀 기억력, 학습능력 및 실행기능 등 인지기능의 저하와 정서장애 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단 한 차례의 엑스터시 투약만으로도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계 질환이 보고된 사례가 있을 정도로 강한 신경독성을 지닌 약물이며, 대뇌의 체온조절중추의 기능의 마비시켜 고열에 의한 사망을 초래해 해외에서는 이미 이로 인한 사망 사례들이 여러 차례 사회 문제화했다"고 경고했다.

최근 홍대·이태원 등의 클럽을 중심으로 '슈퍼 밤(Super Bomb)'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각성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해 고용량의 카페인이 함유된 음료와 위스키를 사용해 만든다. 물론 술과 에너지 음료를 마약류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만, 과다 복용할 경우 중독 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의사들은 충고한다. 특히 짧은 시간 동안 알코올의 섭취와 함께 고농도의 카페인이 체내에 흡수될 경우 부작용 및 건강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신종마약= 그동안 없던 새롭게 만든 종류의 마약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기존 마약류의 변형된 형태인 유사 제제(Analogues)나 유도제(Derivatives)가 신종마약으로 개발돼 사용되기도 한다. 또 수면유도제인 X나 Y처럼 의학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던 제재이나 중독성이 심각한 것으로 확인된 것들, 몇 가지 약물을 섞어 새로 조합한 물질들도 해당한다.

ace@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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