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2] 김성근과 구로다 - 언더독의 기적을 일으키다

스페셜 2015. 3. 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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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JR 히로시마 역 바로 앞에 있는 백화점 후쿠야(福屋)의 정면에는 며칠전 대형 현수막 하나가 걸렸다. '어서오세요. 구로다 투수 (おかえりなさい!黑田投手)'.

역에서부터 홈구장 마쓰다 스타디움까지 800미터 길. 이른바 '카프 로드'로 불리는 거리의 상점들도 요즘 심상치 않다. 그곳의 오코노미야키(일본식 파전?) 전문점 <koubouichi> 매니저는 "앞으로 한달이나 남은 구로다 선수 복귀전 날 오겠다는 예약 전화가 벌써부터 밀려든다"며 신바람이다. 그는 매장 내에 설치된 대형 스코어 보드에 복귀전 경기 결과까지 예언처럼 적어놓았다. '1-0 완봉승'.

근처에 있는 라면집 <고멘야> 업주는 한 술 더 뜬다. "히로시마가 일본 최고가 되는 날 라면 한 그릇에 100엔(약 920원)씩만 받겠다"고 들떠 있다. 개막도 하기 전에 우승 세일을 약속하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

2월초 인근에 오픈한 선술집 <베이스볼 바 C>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점점 많아진다. 자리가 꽉 찰 때도 있다. 그들 입에서는 나오는 자연스러운 단어가 있다. 우승이다." 점장의 말이다.

구로다의 첫 등판이 예상되는 홈 개막 3번째 게임 야쿠르트 전은 이미 입장권이 바닥났다. 이 표를 구하기 위해 철야조가 등장해 전날 밤부터 줄이 100미터를 넘었다. 구단은 혹시라도 사고가 날까봐 부랴부랴 새벽부터 발권을 시작했다. 불과 2시간 여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연간 회원권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배정했던 6,300장이 부족할 것 같아 2,000장을 늘렸다. 8,300석이나 마련했지만 이마저도 벌써 매진됐다.

요미우리, 한신도 깜짝 놀란 '구로다 피버'

일본 미디어들은 이를 '구로다 피버(fever)'라고 부른다. 20억엔을 포기하고, 그 반의 반도 안되는 4억엔에 친정으로 돌아온 의리남 때문에 열도가 뜨겁다.

지금 카프의 2차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오키나와시에는 8년만에 돌아온 그를 보기 위한 팬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예년 같으면 200~300명 수준. 그러나 올해는 1천명이 넘는 인파가 바글바글 한다. 매일 훈련장에 모여들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환성을 지른다. 구단은 달랑 2명 배치했던 안전요원을 10명으로 늘였다. 그 중에 5명은 구로다만 전담한다.

이 정도 폭발적인 이슈면 으레 따라다니는 언론용 통계가 있다. 경제효과다. 간사이 대학교 미야모토 교수팀이 밥숟가락을 얹었다. 그들이 추정한 수치는 무려 52억 2,582만엔. 우리 돈으로 약 480억원 쯤 된다. 입장권, 유니폼 등 각종 판매 수익으로 인한 직접 효과가 24억 9,800만엔, 이로 인한 파급효과를 27억 2,782만엔으로 계산했다고 밝혔다.

팬들만 몰리는 게 아니다. 그를 취재하는 보도진이 적게는 90명, 많을 때는 230명까지 늘어난다. 이들이 쏟아내는 뉴스는 하루에 수백가지 아이템에 달한다. 최고의 인기구단이라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한신 타이거스조차도 요즘은 찬밥 신세다.

'카프여자' 그리고 '구로다남자'

히로시마 카프가 어떤 팀인가. 일본 12개 구단 가운데 가장 별 볼일 없는 곳이었다. 2차 대전 때 원폭 피해로 완전히 궤멸됐던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창단됐다. 시내 한복판을 지나가는 강에 잉어(carp)가 많다고 해서 팀 이름이 됐다.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의 기백을 닮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픈 탄생의 역사만큼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아무도 맡으려는 기업이 없어 구걸하다시피 스폰서를 찾아다녔다. 그나마 그 지방에서 규모가 큰 도요공업(현재 마쓰다 자동차)이 지원금을 냈다. 두번째 스폰서는 히로시마 어시장. 나머지 재원은 시민들의 힘으로 충당됐다. 가난한 시민구단이 오죽 하겠는가. 대형 FA나 거물 외국인 용병은 꿈도 꾸지 못했다. 반대로 조금 한다 싶은 선수는 죄다 팔려 나간다. 창단후 18년간(1950~1967년)은 한번도 A클래스(상위권)에 올라가지 못했다.

1970~80년대에 힘을 좀 쓰는듯 했지만 1998년부터 다시 암흑기가 왔다. 이때부터 2012년까지 15년간 또다시 하위권에서 맴돌았다.

가난한 만년 꼴찌팀을 누가 거들떠나 보겠는가. 하지만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마에다 켄타라는 특급 투수를 주축으로 전력이 안정되며 2년 연속(2013~2014)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게다가 눈물겨운 팀 역사에 대한 동정 여론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특히 도쿄 지역을 중심으로) 젊은 여성들이 대거 팬으로 유입됐다. 신기한 사회 현상은 '카프여자(Carp女子)' 또는 '카프녀(Carp女)'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어렵게 피어나던 온기에 펄펄 끓는 기름을 부은 게 구로다의 복귀다. '의리' '사나이'를 외치는 3,40대 샐러리맨들로 이뤄진 팬층의 열광적인 호응이다. '카프여자'를 빗대 '구로다남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밑에 깔린 개는 이길 확률이 없다고?

뜨거운 현상은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성적으로 놓고 보면 한화 이글스도 비슷하다. 7,80년대 히로시마가 '붉은 헬멧'으로 불리는 가공할 공격력으로 리그를 호령했던 것처럼, 이글스도 한때 무림의 강호로 군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2007년을 끝으로 그들에게 가을은 없다. 최근 6년간 5차례나 꼴찌였다. 우승 청부사를 모셔와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절실해지자 팬들이 일어섰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역사상 최초로 팬들에 의해 감독이 임명됐다. 도저히 현장 복귀가 어려울 것 같았던 73세의 노감독은 그렇게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그리고 그 효과는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다. 모든 미디어가 그를 주인공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각종 포털 사이트의 검색 순위는 그와 관련된 얘기가 점령하고 있다.

잔인한 게임 투견에서 밑에 깔린 개(underdog)는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 카프도, 이글스도 그런 언더독이었다. 누구의 주목도 끌지 못하던 변방에 불과했다. 이기는 것 보다, 지는 것에 훨씬 익숙했다. 인기나 관심보다는 무시, 비아냥에 내버려졌던 비주류였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이던 반전은 결국 일어났다. 거대한 열정과 간절함은 비틀거리던 언더독을 일으켜세웠다. 그들은 이미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스타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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