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깔린 경제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박종훈 2015. 3.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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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5]

지금 당신에겐 2,150만 원의 빚이 있다

지난해 가계부채가 1089조원을 기록했다. 이는 일인당 무려 2,150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4인 가족의 경우 평균 8,600만 원의 빚이 있는 셈이다. 게다가 빚이 늘어나는 속도 또한 심각한 수준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늘어난 가계빚이 무려 68조원이나 된다.

더 큰 문제는 가계와 정부, 기업 부채를 모두 합친 '총부채 비율'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MGI)의 조사 결과, 2011년 우리나라의 총부채비율이 무려 314%를 기록해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받았던 그리스의 267%는 물론, 세계 대공황 당시 미국의 총부채 비율인 299%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당장 눈앞에 다가온 불황을 모면하기 위해 빚더미를 부풀리는 정책을 반복적으로 써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 빚더미가 불어나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정부는 빚더미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빚더미 정책으로 눈에 띄는 경기 회복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우리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다.

옐로스톤은 산불을 끄지 않는다

1988년 6월, 미국의 최고 국립공원인 옐로스톤(Yellowstone)에 산불이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벼락으로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번지면서 무려 4개월을 계속해서 타들어 갔다. 산불을 잡기 위해 대규모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되었지만, 정작 불길을 잡은 것은 그해 9월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눈이었다. 이 초대형 화재로 충청남도 면적보다도 넓은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3분의 1이 완전히 타버려, 국립공원으로 선정된 이후 사상 최대의 피해를 남겼다.

옐로스톤에는 매년 수백, 수천 건이 벼락이 내리친다. 그런데 왜 1988년의 그 벼락만 유독 달랐던 것일까? 1872년 옐로스톤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미국 정부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의 모든 산불을 철저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산불이 나면 언제나 적극적인 진화에 나서 피해를 최소화했다. 그러나 인간의 인위적인 노력으로 오랫동안 큰 산불이 일어나지 않게 되자,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불에 타기 쉬운 마른 나무와 죽은 나무가 급속도로 늘어나기 시작해서, 한 번 불이 붙기만 하면 초대형 산불이 되기 쉬운 상태로 변해갔다. 그러다 우연히 내리친 작은 벼락 하나가 극도로 불안정해진 옐로스톤에 산불을 일으키자, 불길이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게 번져나간 것이다.

이 산불 이후 미연방국립공원관리청(National Park Service)은 인공조림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불에 타버린 모습 그대로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발화한 산불은 끄지 않는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다. 산불을 끄려는 인간의 개입이 오히려 더 큰 산불을 일으킨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금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는 그 때 타다 남은 앙상한 나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처럼 인간이 인위적으로 억눌러 자연계의 불안정성이 증폭되면 아주 작은 충격으로도 파국을 부를 수 있는 '임계상태(Critical State)'가 되는데, 이 같은 현상은 자연계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에서도 볼 수 있다. 일시적인 금융위기나 경기 불황에는 금리를 낮추고 돈을 푸는 정책이 분명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 효과에 취해 끝없이 돈을 푸는 정책에만 의지하다 보면, 빚더미의 지속적인 증가 없이는 경제가 더 이상 유지되지 않는 위험한 상태로 변해가게 된다. 경기 불황을 가져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계속 빚더미로 버티려다 보면, 마치 옐로스톤의 대화재처럼 경제는 괴멸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임계상태'로 끝없이 돌진하게 된다.

빚더미에만 의존한 정책은 언제나 경제를 파멸로 이끌었다

1987년 6월 미 연준(FRB) 의장에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4개월 만에 다우지수가 무려 23%나 폭락하는 블랙먼데이라는 큰 위기를 맞았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그는 평생 신봉해 왔던 '시장은 언제나 옳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시장주의 원칙을 깨고, 대대적인 양적완화로 시장에 직접 개입해 주가를 떠받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아시아 외환 위기와 러시아 채무불이행 사태 등 위기가 올 때마다 먼저 공격적으로 금리를 낮춰 경기를 방어하였다. 그 덕분에 그는 '금융의 거장(마에스트로, Maestro)'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같은 명성은 그를 점점 '빚더미 정책'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이 무너지자, 단 2년 만에 연방기금금리를 연 6.5%에서 1.25%로 끌어 내리는 초강수를 두었다. 그 덕분에 2003년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자, 경제학자들은 물론 심지어 FRB연구원들조차 금리를 올려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저금리가 가져오는 달콤한 유혹에 심취한 그린스펀은 오히려 금리를 1.0%로 더욱 낮추었다. 당시 물가 상승률이 2%대였기 때문에 미국의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상태로 유지된 셈이었다.

이처럼 인위적으로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사이 미국의 빚더미는 급속히 불어났다. 2006년 말 미국의 전체 부채규모는 45조 3천억 달러(우리 돈 5경 원)를 넘어서 불과 4년 전보다 무려 42%나 급증하였다. 이 기간 동안 늘어난 13조 5천억 달러의 빚을 1인당으로 나누면 4만 3천 달러(4,800만 원)에 이른다. 이처럼 빚더미가 급속도로 불어나자 여기저기서 경제 버블에 대한 경고음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린스펀은 이 같은 경고를 묵살하고 계속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2007년 더 이상 빚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사라지자, 2007년부터 미국의 집값과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1988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내리친 평범한 벼락이 사상 최악의 산불을 낸 것처럼, 이미 '임계상태'에 다다른 미국 금융시장은 눈에 띄는 별 충격이 없었는데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결국 세계 최고의 경제 대국인 미국마저도 빚더미로 유지되던 위태롭던 경제 상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임계 상태의 한국 경제, 어떻게 파국을 막을 것인가?

총 3편에 걸친 우리 경제의 위기 상황을 정리해 보면, 우리는 현재 인구구조의 악화 속에 혁신의 속도가 정체되면서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경기 불황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계속 빚더미에만 의존하여 가까스로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의 거장'이라 불리던 앨런 그린스펀조차 결국엔 감당할 수 없었던 것처럼, 빚더미에 의지한 경제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물론 심각한 불황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 우리 경제에 당장 부양책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같은 부양책만으로 경제를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하루 빨리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고 다시 성장 동력을 바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경제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진정한 성장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대기업과 부동산이 우리 경제의 변함없는 성장 동력이라 믿고, 거기에 우리의 남은 자원을 융단 폭격하듯 쏟아 부었다. 하지만 이미 25년 전에 똑같은 정책을 썼던 일본이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을 목격하였고, 우리나라도 이미 2008년부터 대기업과 부동산 정책을 남발해 왔지만 8년째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우리 경제를 살릴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일까? 앞으로 총 3편에 걸쳐 그 해결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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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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