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택배'가 실버일자리 대안? "온종일 일해도 일당 2천원"

김유진|구예훈 기자|기자 2015. 3. 2.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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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수수료율·교통비 부담 등 문제.."협동조합 등 대안 모색 필요"

[머니투데이 김유진 기자, 구예훈 기자] [높은 수수료율·교통비 부담 등 문제…"협동조합 등 대안 모색 필요"]

"따르르릉~."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해 7월. 서울 충무로 한 노인택배업체 사무실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사무실에 앉아있던 노인 12명의 고개가 일제히 전화기 쪽으로 돌아갔다. 주문을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 묻어났다.

머리가 희끗한 노인 윤모씨(70)에게 주문이 떨어졌다. 서울 충무로역에서 충남 아산시의 신창역까지 10kg짜리 쌀 한 포대를 배달하는 일이었다. 윤씨는 쌀 포대를 짊어지고 쏟아지는 7월의 땡볕을 헤치고 나갔다.

윤씨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탔다. 충무로역이 있는 4호선에서 신창역이 있는 1호선까지는 두 번이나 환승을 해야 했다. 지하철 환승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몇 년 전 부러졌던 발목 부근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시큰거렸다.

간신히 신창역에 도착했지만 그때부터 또 다른 난관이 시작됐다. 목적지인 집까지는 또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한참 가야했다. 윤씨는 "그날 버스비 2500원이 사비로 들어갔다"며 "결국 노인택배를 시작한지 닷새 만에 때려치우고 나왔다"고 말했다.

65세 이상 노인 일자리의 희망적 대안처럼 여겨지던 지하철 노인택배가 정작 노인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과도한 수수료와 제반비용 부담 때문에 아침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한달 꼬박 일해도 30만원을 벌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 노인택배는 2005년쯤 처음 도입됐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탑승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일반 퀵서비스보다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배송받기를 원하는 수요와 일자리 부족에 시달리는 노인 구직자들이 만나 형성됐다.

실제 택배 업무를 경험해본 노인들에 따르면 지하철 노인택배 한달 수입은 30만원을 넘기기 힘들다. 1건당 거리에 따라 5000원~2만원 정도를 받지만 왕복 시간을 포함하면 하루에 5건도 배달하기가 쉽지 않고, 30~40%의 수수료와 교통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이모씨(75)도 지난해 한 달 노인택배를 해본 뒤 그만뒀다. 그는 "내가 했던 실버퀵(노인택배의 다른 이름)의 경우 5kg이 최대 중량이었는데 젊은이들도 두어시간씩 들고 다니기 쉽지 않은 무게"라며 "수수료 떼고, 3000원짜리 콩나물국밥 한 그릇 먹으면 수중에 2000원 남을까말까 했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의 경우 매달 보증금도 낸다. 이씨는 "일을 하려면 회사 측에 보증금 명목으로 매달 2만원을 입금해야 했다"며 "다치거나 사정이 있어 택배 업무를 쉴 경우 업체가 가져가던 수수료를 보증금에서 제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많아 4대 보험 가입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했다.

지자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들의 경우 수수료를 20% 수준으로 적게 받고, 국가에서 매월 10만~15만원의 기본급을 제공하기 때문에 일정 수익이 보장된다. 그러나 노인인구에 비해 자리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대부분은 조건이 열악한 소규모 사설 업체에서 일을 한다.

사설 업체들은 이같은 지적에 대해 "택배 건당 붙는 부가세 10%를 제외하고, 전화비나 콜을 받는 직원 인건비 등 시설 운영에 사용되는 비용 때문에 수수료를 받는 것"이라며 "노인 분들이 요청하시면 손님에게 교통비를 받아드리기도 한다"고 해명했다.

최근에는 노인들이 노인택배 취업을 기피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70대 이상 노인분들의 경우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노인택배를 많이 해 왔다"며 "그러나 요새는 수수료와 교통비 문제로 인해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인들끼리 협동조합 등을 만들어 수수료를 낮추는 방안이나 기존의 택배업체들이 꺼려하는 배달업무로 사업영역을 확장해 가는 방법 등을 통해 노인택배를 점진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민간시장에서 이미 형성되어버린 택배 가격을 갑자기 높여 노인들에게 돈을 많이 돌아가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며 "현재 운영되고 있는 노인택배 사업 중 만족도가 높고 지속가능한 사업들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택배가 수익성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에 의존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가 사실 쉽지 않다"며 "노인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체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며 적은 수수료를 떼고 수익을 가져가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진 기자 yoojin@, 구예훈 기자 goog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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