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한테 위험해".. 무한도전 징계, 정당했을까

입력 2015. 2. 28. 21:13 수정 2015. 2. 28.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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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 '무한도전' 징계의 순간..무도보다 더 웃긴 방송심위 회의록

[오마이뉴스 이선필 기자]

MBC <무한도전> '나는 액션배우다' 특집.

ⓒ MBC

장면 하나. 제작진의 함구령으로 방송 주제도 모른 채 차를 타고 이동하던 <무한도전> 멤버들이 괴한에게 습격당한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건장한 사내들이 당장이라도 차를 부수려는 듯 위협하고 이들을 화물차 짐칸에 가둔다. 적잖이 놀란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도착한 곳은 액션 배우의 산실인 액션스쿨이었다.

장면 둘. 액션스쿨에서 기본을 익힌 정준하가 영화 <신세계> 패러디에 뛰어들었다. 그 유명한 엘리베이터 격투신이다. 괴한과 정준하가 들고 있는 무기는 당근과 소시지. 괴한은 정준하의 허리춤에 당근을 꽂고 실제로 칼을 맞은 듯 정준하는 괴로워한다. '당근 X침'이라는 자막과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산하 방송심의소위가 지난 25일 <무한도전-나는 액션배우다> 편에 대해 행정 제재 수준인 '권고' 결정을 내렸다. 심의위원들은 당근과 소시지로 칼싸움하며 X침을 놓는 행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며 '품위유지' 미준수로, 화물차 짐칸에 멤버들을 태우고 이동한 것을 '법령 준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봤다. <무한도전>에게 내려진 열여섯 번째 징계의 순간이었다.

정상적인 제재일까. 아니면 과도한 트집 잡기인가. <오마이스타>는 당시 심의과정을 참관했다. 징계의 그 순간까지 당시 심의위원들은 어떤 대화를 나눴을까. 이른바 '심의의 재구성'이다.

# 1. 오후 3시 4분 개회 선언...허리침이냐, 똥침이냐?

방송심의소위는 김성묵 소위원장을 필두로 장낙인, 박신서, 고대석, 함귀용 심의위원 등 5명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김성묵 위원장은 김구산 CP에게 간략하게 사안 진술을 요구했다. 김 CP는 "영화의 숨은 주인공인 액션 배우를 새롭게 조명하고, 묵묵히 자기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고자 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일부 심의위원들은 김 CP에게 "소재 선택이야 PD의 자유"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런 소재를 택한 것에) 시청자들도 굉장히 위험하게 생각하고,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 질타했다. 이에 김구산 CP는 "소재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게 창작자의 고유 성질이나 앞으로 더욱 조심히 다루겠다"고 답했다. 심의위원들과의 문답이 이어졌다.

함귀용"트럭 적재함에 출연자를 태워 이동하는 게 법 위반 소지가 있을 거라는 걸 생각했던 건가. 아니면 위반인 걸 이미 알았다는 건가."

김구산"도로교통법 위반이라 생각 못했다. 안전해 보이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다."

함귀용"위반 소지가 있다고 하면 자문을 받아볼 수 있지 않나? KBS <1박2일>도 적재함에 사람 태워서 징계 받았다. (정준하가) 허리춤에 당근을 꽂았다고 했는데 자막 보면 '당근 X침' 이렇게 나온다. 이게 허리 부분은 아니잖나."

김구산"화면에 보인 건 허리 쪽이었다. 확인한 결과 허리춤은 맞다. 자막은 웃기려는 생각에 좀 과했다."

장낙인"시청자들이 이 프로를 보면서 <신세계>란 영화를 패러디한 거다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인가?"

김구산"공개적으로 표현했다. 우리 프로에 출연한 (무술감독) 두 분이 모두 <신세계>에 참여했다는 걸 앞부분에 표시했다."

# 2. 오후 3시 29분. 김구산 CP 퇴장 "<1박2일>보다 더 위험한 짓"

MBC <무한도전> '나는 액션배우다' 특집.

ⓒ MBC

의견 진술을 마친 김구산 CP를 내보내고 5인의 심의위원들은 도로교통법 위반 여부와 품위유지 미준수를 두고 토론을 벌였다. 정부 여당 추천인사(김성묵, 함귀용, 고대석) 위원과 야당 추천 인사(장낙인, 박신서) 간 의견이 엇갈렸다.

함귀용"<무한도전>이 품위 유지 위반으로 자주 권고 조치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또 품위 유지를 준수하지 ?았다.

화물칸에 사람 태우고 방송한 KBS <1박2일>도 법정 제재인 '주의'를 내렸기에 <무한도전>도 '주의' 의견을 낸다."

박신서"<무한도전>은 스스로 패러디라고 밝혔다. 화물 적재를 위반했다는 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 엘리베이터 액션 장면도 자막이 자극적이긴 하지만 웃음 코드를 유발하기 위함이지 피 튀기고 심각한 정도 아니다. 주의는 지나치다."

김성묵"방송을 보면 (자막을 통해) '봉인'하고 '출발'이라 말한다. 떠나는 장면이 나왔기에 도로교통법 위반이 명백하다. 차가 출발하고 코너 도는 게 다 나온다. <1박2일>에 나온 차는 (적재함이) 오픈이 돼서 위험 대처가 가능하지만 이건 밀폐다. 차가 전복 되면, 외부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서 큰 피해를 본다. <1박2일> 보다 더 위험한 짓을 한 거다."

장낙인"<무한도전> 프로가 갖고 있는 장점, 창의적 발상에 주목해야 한다. 영화를 패러디한 거고 (설정 상) 납치 상황인데 안전띠를 멜 건 아니라고 보인다. 두 번째로 중요한 건 사람이 타는 장면과 내리는 장면 말고 보여준 게 없다. 화물칸을 탄 멤버들이 (이동 시) 흔들린다거나 그런 모습은 안 나왔다. 다만 화물칸을 탔겠다고 유추는 할 수 있다. 드라마에서 연인이 잠자리에 드는 장면을 보이고 아무 내용 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장면을 보인다고 하자. (관계를 했겠구나) 유추는 가능하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면까지 유추해서 선정성을 논할 수 없는 것과 똑같다. 더구나 <무한도전>은 패러디다. 도로교통법은 문제 삼을 수 없다."

# 3. 오후 3시 43분. 더 뜨거워진 난상토론, 심지어 IS 이야기까지

도로교통법 위반 여부를 두고 심의위원들 간 설전은 더욱 뜨거워졌다.

고대석"내 생각에 도로교통법 위반은 맞다. 장 위원님은 위험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장낙인(목소리 높이며) "아니 위험하다니 무슨 말을..."

김성묵"가만히 있길. 이건(<무한도전>) 분명히 리얼 프로다."

장낙인"패러디 한 거다. 영화에서 낙태하는 장면 등을 다 법령위반으로 심의할 건가?"

김성묵"<1박2일>도 마찬가지다."

장낙인"그건 리얼리티 프로다!"

김성묵"이런 프로를 만들 때 납치하는 장면을 패러디 한답시고 화물차에 태우면 되나? 영화의 폭력과 사람 죽이는 장면이 (TV 예능프로에) 나올 수도 있다."

장낙인"그때는 심의 규정을 적용해야지! 폭력적 장면이 나오는데."

김성묵"<1박2일>이나 <무한도전>이 IS 관련해서 패러디 한다며 목 따는 장면을 내보내면 어찌하겠나?"

장낙인"(흥분하며) 그건 제재해야지! 왜 제재 안 하나! 목 따는 장면을 안 보여주면 제재 할 수 없는 거고."

# 4. 오후 3시 57분, 상황 종료 "뭐, 세 분이 그렇게 하자면..."

25일 오후 3시 서울 목동 방송회관 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MBC <무한도전>에 대한 방송심의소위가 열렸다.

ⓒ 이선필

김성묵"자, 합의하자. 도로교통법 넣을지 말지. (여당 추천 위원들 : 넣어야지)"

장낙인"뭐, 세 분이 그렇게 하자면, 도로교통법이 들어가겠지."

김성묵"독자 의견 낸다는 건가? 그렇게는 합의 못하지. 나도 독자 의견 내겠다.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 설명 후) 자 이렇게 권고로 선언하자. 합의한 걸로. '품위유지'와 '법령준수' 넣고 '권고' 결정으로."

장장 한 시간에 이르는 공방 끝에 '권고' 제재로 결정 났다. 이 과정을 전해들은 김구산 CP는 <오마이스타>에 "창작하는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특성이 있고, 심의 기관은 좀 더 보수적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심의 결과에 그는 "다행이다"라면서도 "대중의 눈높이와 접점을 찾기 어렵다. 사실 웃자고 하는데 과할 때도 있고, 분명 심의하는 분 입장에서도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구산 CP가 남긴 마지막 말은 "사회적 의무를 생각하며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가겠다"였다.

이와 관련 PD연합회는 지난 11일 성명을 통해 "장르와 매체, 다양성 차이를 무시하는 무분별한 심의는 방송심의의 최소주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무한도전> 잔혹사 - 징계의 기록들

MBC <무한도전>의 한 장면. 지난해 8월 방송된 폭염 기획.

ⓒ MBC

2008년 2월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하에 <무한도전>은 법정 제재와 행정 제재를 포함해 총 16번의 징계성 처분을 받았다. 경고 2회, 주의 1회, 권고 10회, 의견제시 3회다. 일각에서는 표적 심의 의혹을 보내기도 했지만, 타 예능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라는 보도 또한 있었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을 비롯한 타 프로그램의 징계 건 수가 근 3년 간 부쩍 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 보인다.

▲ 2008년 2월 23일 방송 - 하하의 특정 상품 노출 빈도 및 티셔츠 문구 등을 이유로 방송심의 규정 제46조(간접광고) 위반 판단. 경고 의결.▲ 2008년 7월 12일, 7월 26일 방송 - 일명 통아저씨 게임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일부 가학적이라는 민원이 있었음. 제27조(품위유지) 및 제44조(수용수준) 위반으로 권고 의결.▲ 2008년 10월 4일 방송 - 가수 전진이 특정 영화 및 빙과 제품, 자신의 노래를 사용해 UCC 제작. 노래 가사에서 특정 상품을 연상할 수 있다며 의견제시 의결.▲ 2009년 3월 14일 방송 - 출연자들이 '허리띠 많이 졸라매기', '베개싸움' 게임을 하면서 서로 가격하는 모습이 가학적이라는 판단. 권고 의결.▲ 2010년 2월 13일 방송 - 출연자들 끼리 엉덩이를 발로 차고, '미친 놈', '똥을 싸겠다' 는 등의 저속한 표현을 썼다는 이유로 제27조(품위유지), 제51조(방송언어) 위반 판단. 권고 의결.▲ 2010년 8월 7일 방송 - 과도한 몸동작, 특정 출연자 외모 비하 등으로 제27조(품위유지), 제21조(인권침해의 제한), 제51조(방송언어) 위반 판단으로 주의 의결.▲ 2010년 12월 4일 방송 - 특정 출연자의 반복되는 고성 및 특정 태블릿 PD 사용 모습을 장시간 노출. 제51조(방송언어), 제46조(광고효과 제한) 등을 위반했다고 판단. 권고 의결.▲ 2011년 4월 2일 방송 - 출연자들이 방송 품위 저해하는 과도한 고성, 저속한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 제27조(품위유지), 제51조(방송언어) 위반 판단으로 권고 의결.▲ 2011년 7월2일, 7월9일, 7월23일, 7월30일 방송 등 - 말 혹은 자막을 통해 '대갈리니', '원펀치 파이브 강냉이 거뜬' 등의 표현, 과도한 고성 등으로 만장일치 경고 의결.▲ 2011년 9월 17일 방송 - 자동차 폭파 장면 등이 청소년들에게 위험 행위를 하게 할 수 있다며 전체회의 통해 권고 의결.▲ 2012년 1월 28일 방송 - 제14조(객관성) 위반 판단으로 권고 의결.▲ 2012년 9월 8일 방송 - 특정 출연자가 엄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넣었다는 민원 접수. 제27조(품위유지), 44조(수용수준) 위반으로 권고 의결.▲ 2012년 10월 6일, 10월 20일, 11월 3일 방송 - '무한상사' 편 등에서 출연자끼리 뺨을 때리는 장면 반복, 만취해 노래방 가는 장면 등으로 제27조(품위유지)를 근거로 의견제시.▲ 2013년 6월 29일 방송 - 상대방의 바지를 벗겨 엉덩이를 보였다는 이유. 제27조(품위유지) 근거로 권고 의결.▲ 2013년 11월 9일 방송 - 자메이카 레게 축제 참여한 특정 멤버가 불필요하게 상의 브랜드 노출시킴. 제46조(광고효과의 제한) 근거로 의견제시.▲ 2015년 1월 24일 방송 - '나는 액션배우다' 편에서 적재함에 인원을 실은 채 이동, 당근과 소시지로 멤버들이 싸우는 모습 지적. 제27조(품위유지), 33조(법령의 준수) 위반. 권고 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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