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된 러시아 야권 지도자 넴초프는 누구인가

입력 2015. 2. 28. 13:39 수정 2015. 2. 2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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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푸틴 운동 선봉..옐친 대통령 시절엔 유력 후계자

反푸틴 운동 선봉…옐친 대통령 시절엔 유력 후계자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불과 2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27일 저녁(현지시간) 총격을 받아 사망한 보리스 넴초프(55) 전(前) 부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야권 운동을 이끌어 온 대표적 반정부 인사다.

지난 2008년 다른 야권 지도자들과 함께 야권 운동 단체 '솔리다르노스티'(연대)를 창설해 이끌어 오면서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와 부패, 경제 실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

2011년 총선 이후엔 유명 블로거이자 변호사 출신의 야권 운동가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과 선거 부정, 푸틴의 장기 집권 시도 등을 규탄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다. 최근 들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과 경제난 등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2012년부터 자유주의 성향의 공화-국민자유당(RPR-PARNAS) 공동의장직도 맡아왔다.

러시아 남부 도시 소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넴초프는 이후 러시아 중부 니제고로드스크주(州) 대학에서 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동안 물리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던 넴초프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1986년에는 새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 시절 제1부총리까지 지낸 그가 정치에 발을 들여 놓은 건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소련 내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의회 격) 대의원 선거에 출마해 공산당 후보들을 제치고 당선되면서부터다.

의회에서 농업개혁과 무역자유화 등을 위한 입법 활동을 주도했던 그는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던 개혁파 옐친의 눈에 띄었으며 이후 대통령이 된 옐친에 대한 보수 강경파의 공격 저지에 앞장서며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 덕에 니제고로드스크주 주지사(1991~97년), 연료·에너지부 장관(1997년), 제1부총리(1997~98년) 등의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끌던 그는 1990년대 후반 옐친 대통령의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여파에 따른 러시아의 치명적 경제위기로 옐친 정권이 흔들리면서 그도 부총리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정치적 인기도 추락하고 말았다.

1999년 자유주의 성향의 다른 정치인들과 함께 '우파세력연합'당을 창당해 하원에 복귀하면서 정치적 재기를 노린 그는 이듬해 하원 부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정당 소속의 일부 정치인들이 2000년 집권한 푸틴 정권 지지 세력으로 돌아서면서 야당 성향 유권자들이 등을 돌렸고 '우파세력연합'은 결국 2003년 총선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넴초프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당 공동대표직을 내놓아야 했다.

의회를 떠난 넴초프는 이후 푸틴에 반대하는 여러 야권 단체와 정당 등을 만들어 이끌면서 재야 반정부 지도자로 활동해왔다. 이 때문에 여러 차례 체포되는 등 정치적 박해를 받았지만 사망하기 전까지 반정부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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