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마녀'를 살려낸 김수미의 독특한 쇼맨십

박진규 입력 2015. 2. 28. 13:17 수정 2015. 2. 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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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마녀'를 들쑤신 블랙홀 마녀 김수미의 마법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MBC 주말드라마 <전설의 마녀>는 '깜빵'에서 만난 여인들이 눈물 젖은 빵을 만드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에는 각각 억울한 사연(오현경이 연기하는 손풍금은 약 파는 걸로 사기 치다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됐지만)을 지닌 여인들이 의기투합해 빵집을 열어 행복해지는 그런 드라마로 기획되지 않았을까 싶다.물론 대개의 드라마들처럼 해피엔딩을 위한 절절한 복수는 필수다. <전설의 마녀> 역시 교도소의 여인들이 그녀들에게 누명을 씌운 마태산(박근형) 회장과 그의 신화그룹 일가에 복수하는 내용이 줄거리의 주요흐름을 차지하고 있다. 아마…… 드라마 초반부의 기획의도는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진정한 마녀가 여자교도소에 등장하면서 드라마 <전설의 마녀>는 마법에 걸려 버렸다.

"내가 먼저 소개할게. 난 10번방 빵장 김영옥이야." (김영옥)

드라마 초반 카메오로 등장한 여자교도소의 영옥 이모 김수미는 <전설의 마녀>의 블랙홀 마녀다. 등장인물 소개에도 없던 이 인물이 드라마를 다 잡숴 버린 지는 이미 오래다. 영옥이란 인물의 설정이 대단한 건 아니다. 복권당첨으로 돈벼락 맞은 조폭 마누라에 그저 사사건건 시비 거는 어그레시브 조연 캐릭터다. 거기에 심복녀(고두심)와 박이문(박일환) 사이에서 어깃장을 놓는 진상 여인이란 설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상투성을 김수미가 꽤 컬트적이고 고급스럽게 연기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특히 인간의 속물성과 천박성을 이만큼 독특한 쇼맨십으로 보여주는 여배우는 흔치않다. 거기에 더해 영옥이란 캐릭터를 바탕으로 <전원일기>의 일용엄니나 <안녕, 프란체스카>의 이사벨을 넘나들며 다양한 애드리브까지 펼치면서 그녀는 블랙홀처럼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때로는 양촌리 땅 팔아서 벼락부자 된 졸부스타일로, 때로는 고시원의 여왕벌로, 때로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일본어를 간질간질하게 구사하며 김수미는 <전설의 마녀>를 들썩들썩 들쑤신다.

그런데 <전설의 마녀>를 보다보면 이상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김수미가 연기하는 블랙홀 마녀가 혹 다른 마녀들에게까지 마법을 시전한 건 아닐까 종종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시아버지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도 모자라 사사건건 신화일가 사람들에게 당하는 문수인(한지혜)이 특히 그렇다. 당차게 칼을 갈고 싸워도 이길까 말까한 판이건만 <전설의 마녀> 문수인은 '청순갸륵' 마법에 걸린 인물처럼 보인다. 그녀가 지금껏 신화가에 대적한 건 겨우 크림빵 몇 개 시아버지에게 던진 것이 전부다. 더구나 대사의 톤은 마법에 홀린 듯 특유의 청순함과 갸륵함이 묻어나는 청순갸륵으로 일관한다. 결국 문수인의 청순갸륵한 대사와 행동들은 어느새 주인공인 그녀를 청승맞고 계륵 같은 존재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블랙홀 마녀는 문수인에게 마법을 건 것만으로 모자랐던 모양이다. 문수인의 남자인 남우석(하석진)과 죽은 줄 알았다 살아 돌아온 남편 마도현(고주원)은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무미건조하게 읊는 목석마법에 걸려 있다. 하지만 수인과 우석, 도현보다 더 심각한 마법에 걸린 인물은 문수인의 동생처럼 등장하는 하연수가 연기하는 서지오다. 서지오는 사이보그 마법에 걸려 모든 감정 연기를 로봇처럼 소화한다.

<전설의 마녀>의 모든 비밀의 키를 쥐고 있는 여인 차앵란(전인화) 역시 마법에 걸린 지 오래다. 현재 신화그룹 회장 마태산의 아내이자 거북당 빵집의 비밀까지 모두 알고 있는 그녀는 <전설의 마녀>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 같은 인물이다. 하지만 차앵란은 이 드라마에서 특별한 존재감 없는 투명인간 마법에 걸렸다. 이 특별한 캐릭터가 기껏해야 말 안 듣는 아들 마도진(도상우) 때문에 속 끓이는 엄마 정도로 변해 버렸다. 좀 더 흥미롭게 풀 수 있는 인물을 평면적으로 소비한 셈이다. 그나마 차앵란이 완전히 투명인간이 되지 않은 까닭은 어떤 립스틱이나 화장도 어울리는 전인화의 우아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달콤한 로맨스그레이의 여주인공이어야 할 마녀들의 엄마 심복녀(고두심)나 치매에 걸린 마태산의 본처 복단심(정혜선)은 그나마 블랙홀 마녀의 마법을 피해간 인물들이다. 아마 치매 때문에 방 안에서 나가지 못하는 복단심은 마녀 영옥과 부딪힐 일이 없어 마법을 걸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심복녀는 <전원일기> 시절 일용엄니와 회장님댁 큰며느리 사이의 의리 덕에 블랙홀 마녀의 마법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반대로 손풍금(오현경)이나 마주란(변정수)의 경우는 블랙홀 마녀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영옥이 손풍금을 수하에 두고 재일교포로 변신해 말도 안 되는 일본어로 마주란에게 사기를 치면서 두 인물도 동시에 <전설의 마녀>에서 더 반짝반짝 눈에 띄기 때문이다.

블랙홀 마녀 김수미의 마법에 걸려버린 <전설의 마녀>는 기획의도를 벗어나 산으로 가버린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반대로 그나마 블랙홀 마녀 같은 김수미 덕에 이 드라마의 재미가 이어져 온 것도 사실이다. 이 드라마의 스토리라인은 초반의 쫄깃쫄깃함을 잃고 축 처진 반죽이 된 지 이미 오래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수미는 무조건 애드리브로 튀려고만 하는 배우는 아니다. JTBC <맏이>에서의 치매 노인 연기 등등을 보면 그녀는 안정된 정극에서는 극 속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반대로 <안녕, 프란체스카3>때처럼 드라마 자체의 극적인 재미가 떨어졌을 때 그녀는 애드리브로 그 드라마를 끌어올린다.

<전설의 마녀> 또한 실은 블랙홀 마녀의 마법에 걸린 게 아닐지 모른다. 블랙홀에 빠질 위기에 처한 드라마를 <전설의 마녀> 김수미의 애드리브로 겨우 살려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더구나 그 애드리브와 독특한 개성으로 캐릭터를 재창조하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배우가 만들어낸 독특한 인물 설정이 과잉되고 엉성할 때 얼마나 난감한지 시청자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KBS 월화드라마 <블러드>의 여주인공 유리타(구혜선)를 보면 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외부필자의 칼럼은 DAUM 연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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