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들이 뜬다…요직 맡는 서울대 82학번 정객들

입력 2015. 2. 28. 05:21 수정 2015. 2. 2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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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정두언에 경선 압도적 승리…'맨파워' 과시
나경원·조해진과 '과 친구' 원희룡도 서울대 82학번
개성 강해 별칭이 '똥파리'…"사회중추 책임감 있다"
나경원 신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이 정도로 표(票) 차이가 많이 날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 다른 의원들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새누리당 소속 A 재선 의원)

지난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몫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후보자 경선. 나경원 의원이 정두언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자 장내는 순간 다소 술렁였다. 표결 결과는 92 대 43. 열세라는 당초 예상을 완전히 뒤집고 더블스코어 이상 압승을 거둔 것이다. 나 의원은 당선 직후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면서 제대로 된 소감도 전하지 못했다.

당내에서는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나 의원도 ‘스타급’이긴 하지만 정 의원의 지명도 역시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한 의원은 “정 의원의 감이 좀 떨어진 것 같다”면서도 “나 의원도 의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 하는 것을 보니 대단하더라”라고 했다. 나 의원이 ‘맨파워’를 오롯이 증명했다는 것이다.

당시 나 의원의 당선을 최종 호명한 이는 조해진 의원. 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조 의원이 당내 경선까지 총괄한 것이다.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 입법의 최전선에 서는 만큼 가장 힘있는 보직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런 나·조 의원에겐 특별한 인연이 있다. 바로 서울대 법학과 82학번 동기라는 점. 이 때문에 외통위원장 경선은 50대를 넘긴 이들이 요직을 맡기 시작한 방증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가능성 정도로 회자되던 ‘서울대 82학번’이 이제는 본격 ‘파워그룹’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정가 한 관계자는 “사회 각층에서 서울대 82학번이 잘 나간다는 얘기는 새로운 건 아니지만 이젠 연륜까지 더해진 정객(政客)의 분위기가 난다”고 평했다.

◇나경원·조해진과 ‘과 친구’ 원희룡도 서울대 82학번나·조 의원의 ‘과 친구’ 정객은 또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그다. 대입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모두 수석 합격한 ‘공부의 신’ 원 지사는 정치권에서도 둘보다 앞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미 차기 혹은 차차기 잠룡으로 분류돼있다. 특히 원 지사는 지난해 9~12월 리얼미터의 전국 시도지사 여론조사에서 61%의 지지율을 얻어 경쟁력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는 전임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경제학)도 대표적인 82학번 정치인이다. 강 의원은 여권의 실세 경제통으로 꼽힌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정부), 안종범 경제수석(청와대)과 함께 당·정·청간 경제정책 조율의 최선봉에 선 인사다. 정권 인수위 시절부터 정책 공약을 다듬어왔다.

이외에 이혜훈 전 의원(경제학)은 강 의원과 같은 과 동기다. 둘은 재학 당시부터 같은 서클에 있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신성범 의원(인류학)도 82학번이다.

여의도에만 있지 않을 뿐 정치권에 영향력이 상당한 이들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인사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 교수는 야권의 웬만한 의원 이상의 정치적 영향력을 지녔다는 평가다.

관가에서는 송언석 기획재정부 예산실장(법학)이 거론된다.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사가 예산인 만큼 그 어떤 관료보다 정가와 가까이 있어서다. 지난해 연말 예산정국 때 송 실장이 전(全) 의원의 ‘밥줄’을 좌지우지한 실세였다는 점은 정가에서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최상목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법학)도 정·관계에서 자주 언급된다.

◇개성 강해 별칭이 ‘똥파리’…“사회중추 책임감 있다”그렇다면 그들의 대학생활은 어땠을까. 82학번은 일단 그 인원수가 많았다. 81학번 당시 본고사 폐지와 졸업정원제 등 입시제도가 바뀌어 초유의 서울대 미달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에 82학번 때는 졸업정원의 130%를 뽑았기 때문이다. 사회 요직 곳곳에서 갑자기 주목을 받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82학번 출신 한 여당 의원은 “‘양질 전환의 법칙’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라면서 “양적인 팽창이 있어야 질적인 도약도 있다는 것인데, 꼭 우리 학번에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동기들 숫자가 많다보니 존재감도 그만큼 컸다고 한다. 그래서 위아래 선후배 학번들로부터 들었던 별칭이 ‘똥파리’였다. 82 숫자 발음과 비슷한데다 유독 개성이 강하고 어디든 이리저리 몰려다닌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군사정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고리로 결속력이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환경도 있었다.

또다른 82학번 출신 한 인사는 “이제는 정가든 법조계든 관가든 민간기업이든 우리 학번이 최고위층 바로 아래 업무를 총괄하는 위치까지 올라왔다”면서 “사회의 중추가 됐다는 책임감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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