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건설 속에 '미생' 있다

안호기 선임기자 2015. 2. 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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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미생'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내용이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려 많은 직장인들로부터 "그래, 맞아. 우리 회사에서도 저런 일이 있었어!"라는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현실에서도 발생했다.

포스코건설은 지난해 7월 자체 감사에서 해외사업 담당 임원 2명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비자금 100억원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감사 결과 이들은 동남아 현지 하도급 업체와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공사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다. 비자금은 3년간 해외 발주처에 매달 리베이트 형식으로 지급했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원인터내셔널의 최 전무(이경영 분)가 중국 업체와 5억달러 규모의 계약을 추진하면서 이른바 '�시(關係)'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다가 적발된다. 최 전무는 계열사로 좌천되고 실무를 맡았던 오 차장(이성민 분)은 회사를 떠난다.

드라마 '미생' 속 최 전무는 해외사업 계약을 추진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한다. 비자금 용도가 계약 성사를 위해서인지, 혹은 윗선으로의 전달을 위한 다목적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포스코건설 임원이나 원인터내셔널의 최 전무 모두 해외 거래회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회사 발전을 위해 한 일이지만 방법이 옳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징계를 받았다.

여기까지는 드라마와 현실이 같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이완구 총리는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패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비리, 횡령 등 위법이나 탈법이 있을 경우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상 사법당국의 조사를 지시했으니, 회사 징계를 넘어 회사 또는 관련자의 사법처리 가능성이 생긴 셈이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회삿돈을 부정하게 빼돌렸다면 횡령이나 뇌물죄에 해당할 수 있다. 금액이 크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다만 개인이 착복한 사실이 없다면 재판 과정에서 형량 등에 참작사유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미생의 최 전무는 인사조치에 그쳤지만 회사에서 수사기관에 넘겼더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포스코건설도 관련 임원들에 대해 인사조치만 하고 고발 등의 조치는 하지 않았다. 비자금 조성 적발 직후인 지난해 8월 보직해임 등으로 징계 조치하고 올해 1월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비상근으로 사실상 대기발령 조치를 했다. 이들은 다음달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건설 측은 "관련 임직원의 계좌 등을 모두 조사했고 소명 절차를 거친 결과 횡령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개인 비리가 아니어서 고발 조치하지 않고 내부 징계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관련 임원들이 비자금 전액을 발주업체에 리베이트로 전달한 게 사실이라면 이들은 회사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한 셈이다. 실제로 소명 과정에서 이들은 '징계를 받는 것은 억울하다. 발주처에 리베이트를 전달하는 것은 그 국가의 관행이다. 공사를 계속하고, 향후 추가 발주를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포스코건설이 내부 징계로 사건을 조속히 덮으려 했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일단 3년간 100억원이라는 리베이트 규모가 지나치게 크다. 매달 1억원 안팎의 리베이트를 전달한 셈인데, 개인 착복이 없었더라도 발주처 이외에 다른 곳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포스코건설은 상대국 발주처에 자사 임원들이 건넨 리베이트를 받았는지, 받았다면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해 관계가 틀어지면 그 나라에서 앞으로 사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국은 리베이트 사실이 확인되면 엄벌에 처하는 알려져 있다. 만약 상대국에서 리베이트를 건넨 포스코건설 임원까지 처벌하겠다고 나오면 외교마찰로 번질 수도 있다.

포스코건설은 해외 현장 관련자의 계좌를 모두 확인했다고 하지만 개인 계좌의 입출금 내역을 완벽하게 들여다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이 없으면 가족 계좌도 열람할 수 없다. 그래서 수사기관에 고발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금융계좌를 확인했다는 포스코건설의 주장을 모두 신뢰하기는 어렵다.

총리까지 나서서 의혹을 풀겠다고 했으니,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사건이 회사 측 의도대로 곧바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건설 인천 송도사옥

아이러니한 것은 드라마 미생의 실제 모델이 대우인터내셔널로 알려져 있는데, 포스코건설은 대우인터내셔널과 함께 포스코그룹의 계열사이다.

<안호기 선임기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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