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포통장과 전쟁 중이라고?..인턴기자는 이틀새 10개 만들었다

안재만 기자 입력 2015. 2. 27. 13:50 수정 2015. 2. 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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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끼린 정보 공유하지만 제2금융권 무용지물..목적확인서 안 받는 증권사도 통장 시세는 10만원에서 한때 200만원까지 치솟아..업자 "OTP 아니면 다 사겠다"

"지난해 대포통장이 4만4705개 만들어졌어요. 이제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이 가능하게 법이 바뀌었는데,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요새는 무슨 세무사, 회계사 처럼 해서 등록금 200만원 지원한다는 식으로 (불법)광고하는데 취약계층은 속을 수 있습니다. 법 개정된 것 홍보 잘해주시고, 대포통장 규제 강화해주세요"(신동우 새누리당 의원)

"금융권 공동 협의체를 마련해서 체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시민 감시단 및 포상금 제도를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진웅섭 금융감독원장)

지난 5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당국 업무계획 때의 발언이다. 실제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감독당국은 대포통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대포통장 근절에 착수했다. 그런데 성과는 얼마나 있을까. 미취업 상태여서 계좌 개설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조선비즈 인턴기자가 체험을 해봤다. 현재는 미취업 상태일 경우 주소지와 지점 주소가 인근이어야 하는 등의 통장 발급 기준이 있다. 다만 이는 강제 사항은 아니다.

◆ 은행은 2개까지만…증권사·저축銀은 얼마든지 만들어

먼저 하나은행을 방문했다. 금융거래 목적확인서도 쓰지 않고 아무 문제 없이 통장이 발급됐다.

두번째로 찾은 곳은 농협은행. "계좌를 만들어주세요"라고 하자 농협 직원이 한참 절차를 진행하다가 고개를 들고 되묻는다. "혹시 최근에 계좌 만드셨어요?"

"그렇다"고 했더니 머뭇거린다. 한참을 고민하는 듯 하더니 질문한다. "최근에 계좌를 만드셨는데 왜 또 만들려고 하시는 거예요?"

"생활비를 나눠서 관리하려고요"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몸을 일으키고 상급 직원에게 찾아가더니 서로 대화를 나눈다. 돌아온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계좌를 만들어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소지가 지방이고, 최근에 계좌를 만드셔서요."

일부러 화를 조금 내봤다. "아니, 지금 서울에서 인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살고 있는데 통장을 만들려고 고향까지 내려가란 말입니까?" 그랬더니 직원이 이렇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만들어드릴게요."

세번째로 찾은 곳은 국민은행. 국민은행 직원은 통장 개설 절차를 진행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최근에 계좌를 만드셨네요. 계좌 개설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 통장을 한꺼번에 만들려고 하시면 안됩니다. 처벌 받으실 수도 있어요" 네번째로 다른 은행을 찾았는데도 똑같은 응답을 들었다. "아마 한동안은 계좌를 못 만드실 거예요."

이제 시중은행은 포기다. 하지만 대포통장은 제2금융권 통장이어도 사용할 수 있다. 어차피 체크카드를 함께 발급받으면 어떤 현금입출금기(ATM기)로도 쉽게 거래된다.

먼저 KDB대우증권을 찾아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만들었다. 하나은행과 농협은행에서 통장을 만든 직후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대포통장 개설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는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자 어려움 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다음으로 찾아간 NH투자증권에서도 별 어려움 없이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다른 금융회사에서 이미 계좌를 3개 개설하고 왔지만 차명거래나 대포통장에 대한 주의를 듣지 못했다. 20분만에 CMA 통장을 받아들었다.

어느새 벌써 오후 4시. 업무 시간이 끝났기 때문에 이제 더는 만들 수 없다. 애초 10개의 통장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터였다. 나머지는 내일 만들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 9시. 한국투자증권·유진투자증권·유안타증권을 찾았다. 그리고 아무 문제 없이 계좌를 만들었다. 증권사 직원들은 "대포통장 하실거 아니죠?"라고 농담처럼 물어본 뒤 계좌를 만들어줬다. 최근 대포통장 감독이 강화되지 않았냐고 물어보자 직원은 "계좌를 만들땐 별도로 확인하지 않고, 나중에 대포통장으로 의심되는 거래가 발생하면 다른 은행의 정보를 조회해본다"고 말했다.

저축은행도 대포통장 개설에 취약했다. 이날 오후 하나·웰컴·대신저축은행을 찾아 예금계좌를 만들었다. 저축은행에서도 대신저축은행을 제외하면 큰 의심을 받지 않고 통장을 개설했다. 대신저축은행은 계좌를 한꺼번에 만들 경우 금융정보분석원에 의심거래에 해당한다고 통보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결국 10개를 모두 채웠다.

◆ 한개당 50만원씩 제안…업자 "시세변동 심하다. 맘에 안들면 다른데서 팔아라"

불법으로 대포 통장이 거래되는 현황을 파악해 보기로 했다. 조선족이 주로 접속하는 사이트를 찾아봤다. 통장을 사겠다는 글이 많았다. 남겨진 연락처로 전화를 해봤지만 거의 다 연결이 되지는 않았다.

조금 뒤 한 곳에서 회신이 왔다. 아마도 공중전화인 것 같았다. 그는 "통장 팔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더니, 몇개나 있냐고 한다. "10개 만들었다"고 했더니 "우와"라고 반응하며 좋아한다. 곧바로 흥정을 시작했다. "얼마까지 되나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까지 원하느냐"고 오히려 되묻는다.

"많이 주면 좋다. 대학 등록금 때문에 그런다"라고 했더니 싱글싱글 웃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다가 기사를 쓰기 위해 몇가지 추가 질문(하루에 몇 명과 접촉하는지 등등)을 던졌더니 갑자기 전화가 끊긴다. 수상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이후 간신히 한명이 더 연결됐다. 그는 인터넷뱅킹을 전문으로 한다고 했다. 인터넷뱅킹은 신청을 안했다고 했더니 그것까지 해오면 건당 50만원씩 준다고 했다. 그러더니 한마디 덧붙인다. "OTP 같은 건 하면 안돼. 그런 건 못써."

시세를 물어봤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300만원까지 준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조금 주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럼 거기서 팔아라"고 말하며 화를 낸다. 그는 "시세는 급변하는 편이다. 갑자기 필요하면 비싸게도 살 수 있지만, 300만원씩 주면 우리는 남는 게 있겠느냐. 너무 욕심내면 안된다"고 훈계한다. 업자에 따르면 원래 대포통장은 10만원선이었으나 규제가 강화된 직후엔 200만원까지 뛰었다가 요새는 워낙 거래가 뜸해서 들쑥날쑥한단다.

◆ 금융당국 "저축銀 등은 상대적으로 느슨…강화하겠다"

금융당국은 전쟁 중이라는데, 왜 이렇게 통장 개설이 쉬운 것일까. 통장 개설을 체험하면서 겪은 문제는 크게 3가지다. 미취업자가 타 지역에서 통장을 발급받았는데도 자세히 확인해보지 않은 것, 목적확인서를 받지 않은 금융사가 있다는 것, 그리고 시중은행과 제2금융권, 증권사나 저축은행간에도 정보 교류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계좌 개설 여부는 해당 지점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다. 대포통장이 발급되면 본인 KPI(핵심성과지표) 평가에도 악영향이 있어 조심하는 경우가 있고 본사에서 고객 확대 방침이 내려질 땐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계좌를 개설한 곳 중 일부는 고객 확대 정책이 추진 중인 것 같다"면서 "기본적으로는 계좌를 만들어줄지 말지를 은행 직원이 결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목적확인서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되도록이면 목적확인서를 받으라고 하고 있고, 목적확인서를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지만 100% 의무화된 상태는 아니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점 직원의 실수이거나 해당 금융사의 방침이 그런 경우일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계좌 개설이 쉬운 원인은 무엇일까. 현 규정상 은행과 저축은행, 증권사, 상호금융 등은 서로 통장 발급 정보가 공유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2금융권은 이틀에 걸쳐 통장을 발급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시중은행과도, 서로간에도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단위농협 같은 곳은 서로 잘 관리하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증권사나 저축은행은 미흡하다"면서 "특히 저축은행 일반통장은 대포통장으로 잘 활용이 안되다보니 상대적으로 느슨한 감이 있는데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쪽에서는 대포통장을 줄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한쪽에서는 통장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현장에서는 관리에 애로사항이 많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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