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주의 일상 톡톡] "블랙박스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김현주 2015. 2. 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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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김모(34)씨는 최근 아파트의 한 이웃주민이 내심 못마땅했다. 그는 장애인이 아니면서 승용차를 장애인 주차구역에 버젓이 세워두곤 했기 때문. 괘씸한 생각이 든 김씨는 차량 사진을 찍어 불법주차로 신고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의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운전자가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해 내가 신고한 것을 알면 괜히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생각을 접었다"고 말했다.

#2. 직장인 최모(29·여)씨는 지난 20일 택시를 탔다가 크게 당황했다. 뒷좌석에 앉아 화장을 고치는 자신의 모습이 룸미러 아래 설치된 블랙박스에 고스란히 녹화되고 있었기 때문. 최씨는 "엉망이던 내 얼굴이 그대로 찍히고 있었다"며 "블랙박스 설치 안내문이 붙은 택시는 거의 못 봤다"고 하소연했다.

#3. 직장인 박모(41)씨는 "혼자 가끔 내 차의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들여다보곤 한다"며 "흔히 '김여사'로 불리는 초보운전자의 모습이나 거리를 걷는 늘씬한 여성의 모습이 찍혀 있으면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최근 블랙박스는 자동차에 장착되는 옵션이 아닌 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동차 인구의 증가와 함께 시시비비를 가리기 어려운 사고들이 많아지면서 하나의 증거로써 블랙박스의 필요성이 제기되는데다 근래 들어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나는 범죄행위와 같은 사회적 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블랙박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증가의 이면에는 한국사회의 불신과 불안이 담겨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고 증거자료와 예방책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만 하기엔 블랙박스의 악용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사실상 사방에 깔려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를 통해 우리의 사생활이 일거수일투족 감시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블랙박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생각을 알아본다.

27일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자동차를 보유했거나, 월 평균 1회 이상 직접 운전을 하고 있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차량용 블랙박스와 관련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91.5%가 차량용 블랙박스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 2013년 같은 조사 결과에 비해서도 높아진 것으로, 이제는 대부분 운전자들이 블랙박스를 당연히 설치해야만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고 가해자가 잘못을 부인할 경우 증거자료가 될 수 있으며, 피해자가 누군지 애매한 사고 시에는 잘잘못을 가리기 쉬워서 필요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실제 차량용 블랙박스의 장착도 짧은 기간에 매우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조사에서는 38.2%에 불과했던 차량용 블랙박스 장착률이 이번 조사에서는 전체 61.1%에 달할 만큼 높아진 것이다. 여성보다는 남성, 그리고 젊은 운전자들이 자동차에 블랙박스를 많이 장착하고 있었으며, 운전빈도와 자동차 원산지에 따른 블랙박스 설치율의 차이도 두드러지는 특징을 보였다.

차량용 블랙박스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결과에서도 운전자 대부분이 블랙박스의 필요성과 효과에 대해 공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92.9%가 교통범죄를 줄이는 데 블랙박스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바라봤으며, 교통사고뿐 아니라 다양한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은 95.3%에 이르렀다. 운전자의 84.5%는 블랙박스가 없으면 왠지 억울한 일을 겪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6.4%는 아예 블랙박스를 의무적으로 설치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이는 2013년 같은 조사보다 크게 증가한 결과로, 교통사고 분쟁과 다양한 범죄들의 증거자료 및 예방책으로 활용되는 블랙박스의 역할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블랙박스 의무 설치화에 대한 의견은 특히 2030대 젊은 운전자에서 많이 나왔다. 블랙박스 설치자에게 보험금 할인혜택을 주는 것이 정당하다는 의견이 증가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블랙박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으며, 블랙박스의 대중적인 보급으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도 상당히 큰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전체 10명 중 6명이 블랙박스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는 2013년 보다 늘어난 결과다. 또한 블랙박스의 보급이 늘어날수록 개인의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는 의견에 64.3%가 공감했으며, 전체 81.8%는 블랙박스 동영상을 무분별하게 유포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함께 피력했다.

한국사회에 자리잡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 블랙박스라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블랙박스가 우리 사회의 불신 수준을 나타내주는 바로미터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의견이 비동의 의견보다 훨씬 우세한 것이다. 다만 블랙박스가 '필요악'인가를 묻는 질문에는 동의 의견보다 비동의 의견이 더 많았다.

현재 블랙박스를 장착한 운전자들은 대체로 블랙박스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박스 사용자의 67.6%가 블랙박스 사용에 만족감을 나타냈으며,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은 7%에 불과했다. 블랙박스 보유자 2명 중 1명 이상은 블랙박스에 녹화된 영상을 실제 활용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또 블랙박스를 장착한 운전자들이 실제 사용 후 블랙박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은 녹화품질이었다. 그 다음으로 ▲녹화 안전성·견고성 ▲배터리 방전 차단장치 유무 ▲자동포맷·경보장치 등 부가기능 ▲사용자 조작 편리성 ▲SD카드 용량 ▲A/S 편의성 여부 ▲가격이 중요한 것 같다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반면 현재 블랙박스 비보유자의 경우에는 가격이 비쌀 것 같아서 구매하지 않았다는 운전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돼, 블랙박스 가격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제품에 대해 잘 모르거나,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장착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블랙박스 비보유자의 향후 블랙박스 구매의향이 83.5%에 이를 만큼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2013년 당시 비보유자의 구매의향 보다 더 높아진 수준이다. 블랙박스를 구매하고자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였으며, 사고를 겪거나 겪을뻔한 후 필요성을 느꼈거나 새 차 구입 후 차량도난이나 파손을 우려해 구입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블랙박스 구입 시 가장 고려할 조건으로는 ▲블랙박스 녹화품질 ▲녹화 안전성·견고성 ▲사용자 조작 편리성 ▲A/S 편의성이 꼽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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