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명의 끝..'저성장'의 암흑기가 왔다?

박종훈 2015. 2. 2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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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14]

지난해 초만 해도 정부는 하반기로 가면서 경제가 점점 회복될 것이라 낙관하며 지난해 4분기 성장률 전망치를 전분기 대비 1%로 잡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4분기 성장률이 정부 예상치의 절반도 안 되는 0.4%에 그치면서 5분기 연속 0%대 성장을 기록해, 말 그대로 '저성장의 충격'이 우리 경제를 덮친 것이다.

정부는 올해는 다를 것이라며 또 다시 성장률 회복을 장담하고 있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전편인 「 최악의 경제 불황,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에서 밝힌 것처럼 2015년 이후 급격히 악화되는 인구구조가 우리 경제에 매우 치명적인 위협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계적으로 경제성장 속도가 급격히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그 타격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빠르고 손쉬운 성장의 시대는 끝났다

인류 역사는 이제까지 놀라운 기술 혁명을 경험하며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러한 혁신은 계속될 것이며 이에 따라 생산성도 끝없이 치솟아 오를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술 발전이 항상 끝없이 이뤄져 왔던 것은 아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전 세계의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르게 둔화되면서 세계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조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The Conference Board)는 '총요소생산성(기술 혁신에 따른 생산성)' 증가 속도가 급속히 추락하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1997년부터 10년 동안 해마다 세계적으로 1.0%씩 증가했던 총요소생산성은 2007년 이후 5년 동안 0.6% 증가하는데 그쳤고, 2013년에는 오히려 0.1%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퍼런스 보드는 "이제 빠르고 손쉬운 성장의 시대는 끝났는지 모른다"며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2013년 12월,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이자 전직 미 재무부 장관이었던 로렌스 서머스 (Lawrence Summers) 전 하버드 대학 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는 충격적인 내용의 칼럼을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하였다. 이 같은 비관적인 전망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프린스턴대 교수가 동조하면서 저성장이 가져올 우울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혁신이 정체된 시기가 도래했다

1957년 미국 보잉사는 최고 시속 1,010km인 경이적인 여객기 'B-707'기를 발표하였다. 1백 년 전에 가장 빠른 운송수단이었던 증기기관차가 시속 30km로 달렸던 것에 비하면 무려 30배나 더 빨라진 가히 혁명이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 당시에는 인류의 이동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빠른 교통수단이 등장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와 달리 인류가 상업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이동 속도는 5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시속 1,000km라는 한계에 묶여 있다. 최근에는 음속의 4배로 날아다닐 수 있는 '성층권 여객기'에 대한 구상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경제성 문제 뿐만 아니라 오존층 파괴라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개발회사조차 3~40년 후에나 본격적으로 상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결국 이대로 간다면 1957년에 돌파한 상업용 여객기의 최고 시속인 1,000km대를 뛰어넘는데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처럼 특정 기술의 발전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이 등장해 과거의 기술을 대체하지 못하면 생산성 향상 속도는 급격히 정체된다. 지금까지 우리 인류는 이런 정체 상황을 여러 번 겪어 왔고, 그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철도나 전기처럼 놀라운 기술 혁신이 일어나 주었기 때문이다. 대략 50년에서 60년을 주기로 일어난 이러한 기술 혁신의 물결에 따라 인류는 거대한 호황과 불황을 반복적으로 겪어온 것이다.

가장 미약했던 다섯번째 '혁신의 물결'마저 끝났다

이 같은 장기적인 경기순환을 처음 발견한 것은 구소련의 우파 경제학자인 니콜라이 콘트라티에프(Nikolai Kondratiev)였다. 하지만 그는 거대한 파동을 발견하였을 뿐, 그 파동의 명확한 이유는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의 발견에 영감을 얻은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증기기관이나 철도, 전기 등 중요한 기술 혁신과 장기적인 경기 파동이 겹치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 혁신의 관점에서 경제 성장의 순환을 설명한 이후 '장기파동 이론'이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인류가 경험한 마지막 다섯번째 파동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통신 혁명이다. 하지만 정보통신 기술은 그 이전의 파동과 달리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지는 못하였다. 1987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성장이론의 거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솔로우(Robert Solow) 교수는 "여기저기서 컴퓨터 시대가 온 것은 확인할 수 있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You can see the computer age everywhere but in the productivity statistics.)"고 평가하였다. 그리고 이처럼 정보통신에 대한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생산성 패러독스(Productivity Paradox)'라고 불렀다.

그 뒤 많은 경제학자들이 솔로우의 생산성 패러독스가 틀렸음을 증명하려고 도전했지만, 아직도 정보통신 혁명이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장하준 케임브릿지대 교수는 그의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인터넷 혁명이 세탁기보다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2012년 미국의 로버트 고든(Robert Gordon)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1990년대 인터넷 기술 혁신이 모두 신화에 불과한 것이며, 앞으로 이 미약한 혁신마저 사라져 경제성장은 더욱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현재 태동(胎動) 단계에 들어간 혁신적인 기술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3D 프린팅이나 생명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로봇공학 등이 모두 잠재적으로 여섯번째 거대한 혁신의 물결을 이끌 수 있는 후보들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혁신의 물결이 과거 다섯 차례의 혁신과 같은 방식으로 찾아온다면, 여섯번째 혁신의 물결은 빨라도 2030년대에나 가능할 것이다. 만일 이전보다 혁신의 보급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고 가정해도 지금 태동단계의 기술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려면 앞으로 10여 년은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소한 2020년대 중반까지는 기술 혁신의 암흑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또한 급속도로 악화되기 때문에, 지금처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우리 경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빠른 추격자' 전략의 종말

그 동안 우리나라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성공한 기술이나 제품을 신속히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 (Fast Follower) 전략 덕분이었다. 이 같은 추격 전략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신속하게 대규모 물량 공급을 할 수 있는 대기업 집단에 매우 유리하다. 그런 면에서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은 '빠른 추격자' 전략에 놀라울 정도로 특화된 장점을 갖고 있어 지금까지 고속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런 추격 전략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선도 국가가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선도 국가의 기술혁신 속도가 늦어지면 더 싼 가격으로 무장한 후발 추격자에게 따라잡혀 '가장 빠른 추격자'의 지위를 위협받게 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 업체의 거센 추격이 시작된 것도 선도 기업의 기술 혁신이 정체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 같은 추격을 따돌리려면 결국 우리 스스로 혁신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빠른 추격자'에 특화되어 있는 재벌 중심의 우리 경제가 갑자기 혁신의 주체가 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혁신의 주체가 되려면 미국처럼 신규 창업 기업이 기존 대기업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공정한 경제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미 '대담한 경제' 6편인 「 한국서 창업은 왜 위험한 도박이 되었나? 」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경제 구조는 그런 창업 환경과는 매우 거리가 멀다.

앞으로도 우리가 공정하고 혁신적인 창업환경을 만들지 않고 대기업만 밀어주는 과거의 추격 전략만을 고집한다면 우리 경제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20년대 후반에 여섯 번째 물결이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우리 경제는 철저하게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일본이 1990년대 정보통신 혁명에 동참하지 못한 것도 바로 이 같은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우리 경제도 변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대가 지금 눈앞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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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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