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보고 먹고 걷고, 살오른 후포에 빠지다.. 눈도 입도 즐거운 곳 울진

울진 | 글·사진 최병준 선임기자 2015. 2. 2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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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울진은 볼 데가 많다. 일단 왕피천, 성류굴, 금강송림이 유명하다. 불영계곡과 불영사도 명소다. 동해안을 따라 펼쳐진 해변길도 아름답다. 관동팔경이 2개나 있다. 망양정과 월송정이다. 소문난 온천도 두 개 있다. 덕구온천, 백암온천은 모두 물 좋기로 유명하다. 덕구온천 뒤에 응봉산, 백암온천 뒤엔 백암산이 있다. 산행도 즐길 수 있다. 먹거리도 많다. 대게 홍게가 요즘 한창이다. 문어와 물곰탕도 지금 좋다. 수도권에서 가면 멀다고? 맞다. 거리를 감안하더라도 이만하면 겨울 여행지로 손색없는 것 아닌가?

울진 '폭풍 속으로' 세트장 절벽에서 내려다본 해안 풍경. 울진 해변을 돌다보면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보고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해변도로다. 울진의 해안선은 102㎞다. 이 중 근남면~덕산리로 이어지는 쪽빛 바닷길이 20㎞, 후포면 후포항~직산리 코스가 20㎞다. 달려보면 안다. 가슴이 탁, 트인다. 차라리 찻길이 아니라 걷는 길이었으면 더 좋겠다 싶었다. 쪽빛 바닷길의 한쪽 옆구리는 바다, 다른 쪽 옆구리는 어촌이다. 집들은 고만고만했다. 파란색 양철지붕집. 희한하게도 붉은 양철지붕집은 별로 없다. 마당은 좁았다. 그래도 태평양을 안고 있는 집이다. 대개 바다가 가까운 길이라고 하면 절벽 길이어서 바다를 내려다보거나, 바다와 좀 떨어져 있다. 해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을이 바다 바로 앞에 들어앉았다. 물론 해안도로에 '너울성 파도를 주의하라'는 안내문은 있었다. 아마도 국내에서 몇 안되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일 것이다. 모래톱에서 대나무에 낫을 매단 갈고리로 해산물을 채취하고 있는 노부부를 만났다. "이게 진저리라. 그냥 지저 먹을라꼬." 진저리? 울진군청 직원은 톳의 사투리라고 했다. 노부부는 비닐 봉투 하나 들고 바다에서 찬거리를 건져냈다. 바다가 냉장고 겸 수족관이다. 아니, 수산물 창고였다.

햇살이 구름을 뚫고 돋았다. 바위에 낚시꾼들이 붙었다. 플라스틱 초장 그릇과 미니 도마와 회칼이 방파제 앞에 있었다. 저 푸른 바다에서 막 잡아올려 먹는 생선회? 카메라를 놓고 낚싯대를 잡고 싶어졌다.

105년 된 울진 죽변등대.

바닷길은 굽이졌다. 뭍으로 파고들었다가 다시 바다로 나갔다. 커브를 돌 때마다 다른 바위를 끼고 있는 바다가 보였다. 바위가 다르면 바다의 모습도 달라진다.

후포항 옆에는 나무 데크로 전망대도 만들어 놓았다. 큼지막한 바윗돌 위마다 데크로 길을 놓아 쉬고 갈 수 있게 만들었다. 울진에는 이런 데크길이 많다. 2월의 해변은 겨울과 봄 사이에 있었다. 볕 없는 첫날, 바람이 차가웠다. 이튿날 곱고 보송보송한 햇살에 졸음이 몰려왔다.

바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하나 더. 울진 북단에 있는 죽변등대와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이다. 등대는 올해로 105년 됐다. 여행자들은 등대보다도 그 아래 드라마 <폭풍 속으로> 세트장을 많이 찾는다. 세트긴 하지만 절벽 위에 세운 교회와 집 풍광이 '그림'이다. 세트장에서 내려다보면 바다는 하트 모양이다. 중년 여성이 하트 해변을 보고 소녀같이 좋아했다. "와, 정말 해변이 하트 모양이네."

'폭풍 속으로' 세트장.

■ 걷고

덕구 계곡길을 걸었다. 산 중턱에 덕구온천 원탕이 있는데, 거기 앉아서 족욕을 할 수 있다. 원탕까지는 딱 왕복 2시간 코스. 여기까지는 길이 대체로 평이해서 걷기 좋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이름들이 우스꽝스러웠다. 산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는 수m~수십m의 다리가 여러 개 있는데 첫 번째 다리 이름은 금문교, 두 번째 다리 이름은 서강대교였다. 이어 독일 다리, 프랑스 다리도 나왔다. 국내외 유명한 다리를 흉내 내 짓고, 이름까지 붙였다. "울진 산골짜기에 웬 금문교? 그냥 나무다리나 흔들다리를 놓으면 더 좋았을 텐데…." 길옆에 놓인 파이프는 온천수 운반용이다.

덕구 온천 뒤로 나있는 계곡길. 원탕까지 왕복 2시간 거리다.

■ 먹고

오전 8시. 후포항을 찾았다. 이날 여행 테마는 울진 별미. 어부들이 갓 잡아온 울진대게를 오전 8시부터 경매한다. 경매장 바닥엔 대게가 빼곡하게 놓였다. 경매에 앞서 게를 살펴보는 경매인의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따로 떼어 놓은 저 두 마리는 뭐죠?" "그게 박달게입니다." 생김새는 똑같고, 그리 크지도 않았는데, 어부와 경매인들은 금방 알아챘다. 박달게는 살이 다른 게보다 더 꽉 차 있다고 한다. 값은 두 배가 넘는단다. 울진 남단과 영덕 북단 앞바다에 왕돌초(왕돌잠)라는 거대한 암반이 펼쳐지는데 거기서 대게가 잡힌다. 영덕에서 잡히면 영덕대게, 울진에서 잡히면 울진대게라고 한다. 울진대게 축제는 2월, 영덕대게 축제는 4월에 열린다. 대게를 놓고 울진과 영덕의 자존심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대게 축제가 시작되면 양쪽 모두 장사가 잘돼요. 서울에서 영덕축제 가다가 울진에 들러서 먹고, 부산에서 울진 오다가 영덕 들러 먹는다네요."

언제 잡힌, 어떤 대게가 좋을까. "무거운 게 좋지요. 살이 꽉 찬 거니까." 경매인이자 횟집 주인인 임효철씨는 "지금부터 좋다"고 했다. 대게는 12월부터 5월까지 잡는다. 12월부터 살이 차기 시작한다. 설이 지난 다음이 가장 좋단다. "테레비 보면 게 다리를 딱 부러뜨려 게살을 쏙 빼내는 법을 알려주는데, 살이 꽉 찬 게는 살이 잘 안 빠져요. 살이 찼는데 어떻게 나옵니까. 이건 신문에 쓰면 안 되는데…." 그런 대게는 드물다고 한다. 대게와 홍게를 함께 먹어보니 맛 차이가 있다. 홍게도 별미였다. 대게는 연안, 홍게는 근해에서 잡는다.

우럭지리도 일품이었다. 주인이 식초병을 내왔다. 웬 식초? 식초를 조금 넣으면 비린 맛을 잡는단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물곰탕·문어·대게(위)와 홍게·우럭지리

다음은 물곰탕이다. 물곰이 바로 수도권에서도 해장에 좋다고 알려진 곰치다. 울진에서는 물곰이라고 부르고, 삼척에서는 곰치라고 한다. 표준말은 물곰도 곰치도 아니다. 꼼치다. 곰치는 장어를 닮은 다른 생선이란다. 죽변항에서 맛본 물곰탕 맛은 기가 막히게 시원했다. 식당 벽엔 '당분간 1만5000원'이라고 붙여놨다. "왜 당분간이죠?" 요즘 한창 물곰철인데 돈 되는 홍게 잡느라 물곰 신경을 별로 안 써서 값이 비싸단다. 10인분 정도 낼 수 있는 곰치 생물 한 마리가 전엔 3만5000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15만원이나 한단다. 그래서 웬만한 횟집에서도 물곰을 시키면 아예 없다고 한다. 대를 이어 물곰 요리를 하는 죽변우성식당 김상진씨는 "물곰 생물은 3일 이상 못 놔둔다"고 했다. 차림표에 물곰회가 있길래 되느냐고 물었더니 "안 된다"고 했다. 길 안내를 맡은 전계욱씨가 귀띔했다. "한 마리를 15만원에 낙찰받았는데 서너 명 밥상에 회로 내면 대체 얼마를 받겠어요. 계산이 안 나와요. 그래서 아예 안 파는 겁니다."

문어도 좋다. 문어는 경북 지역에서 차례상에 올라가기 때문에 설 전에 값이 비싸고, 설 후에 가격이 떨어진다. 설 전 문어 경매가는 1㎏에 4만5000원, 이번주엔 3만5000원 정도였다. 다음주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좋은 문어는? "1~3㎏ 사이가 좋죠." "난 2㎏쯤이 제일 좋던데." 어부·상인들의 말을 종합하면 생선은 대체로 큰 게 좋지만 문어는 크다고 좋은 게 아니란다. 참문어가 맛이 좋은데, 참문어의 공식명칭은 왜문어다. 왜(倭)는 왜소하다는 의미다.

보고 먹고 걷고 보고 먹고…. 울진은 눈도 입도 즐겁다.

'울진대게와 붉은대게 축제'가 27일부터 3월1일까지 후포항 일대에서 열린다. 무료 시식회 등의 행사가 많다. www.uljin.go.kr 울진군청 관광과(02)789-6900~4. 안드로이드 플레이스토어에서 '울진여행' 앱을 다운받을 수 있다.

왕돌회수산(054-788-4959)은 주인이 직접 대게 경매를 받아 온다. 대게·붉은대게는 경매가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 우럭지리탕도 별미다. 2명 정도면 3만원짜리, 3~4명은 4만원짜리를 시키면 된다. 죽변항 죽변우성식당(054-783-8849)은 대를 이어 운영하는 물곰 전문점이다. 문어는 시장에서 살 수도 있고, 횟집에서 먹을 수도 있다.

덕구온천(054-782-0677)은 중탄산나트륨천이다. 가족온천탕도 있다. 응봉산(054-783-9707) 덕구 계곡길은 온천 옆에 산길이 있는데, 입장료는 따로 없다. 백암온천(054-789-5480)

<울진 | 글·사진 최병준 선임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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