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턱에 선 의학자.."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

2015. 2. 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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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말기암' 선고받은 저명한 의학자 올리버 색스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나의 인생' 잔잔한 울림

"2%의 불행에 속했지만 남은 시간 내게 달려…

아름다운 지구에서 산 것만으로도 큰 특혜였다"

"한달 전, 나는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팔팔하다고까지 느꼈다. 여든한살에 나는 여전히 날마다 1마일(1.6㎞)씩 수영을 한다. 하지만 내 운은 다했다. 몇주 전 암이 간으로 전이된 것을 알았다. 9년 전 안구 흑색종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방사선 치료 등을 했지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이 암이 전이될 확률은 무척 낮다. 내가 바로 그 불행한 2%에 속했다."

평생 다른 이의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나이가 든 의사가 자신에게 남은 날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떻게 할까?

'의학계의 문인'으로 유명한 미국의 신경학 전문의 올리버 색스 박사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둔 심경을 담담하게 밝힌 글 을 <뉴욕 타임스>(NYT)에 지난 19일(현지시각) 기고해 잔잔한 울림을 주고 있다.

최초 암 진단 이후 9년 동안의 시간에 감사한다는 색스 박사는 "이제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간의 3분의 1을 이미 차지한 암세포의 확산을 조금 늦출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나에게 남은 몇 개월을 어떻게 살지는 나한테 달렸다. 최대한 풍요롭고 깊이 있게 생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한다.

인생의 끝자락에서 색스 박사는 평소 좋아했던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을 떠올렸다. 65살에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흄은 1776년 4월의 어느 날, 하루 만에 짧은 자서전을 썼다. 제목은 '나의 인생'(My Own Life). 색스 박사의 기고문도 같은 제목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이 순간보다 삶에서 더 초연해지기는 어렵다"는 흄의 말을 인용하며, 지난 며칠간 인생을 한발 떨어져 조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삶의 끝은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반대로 나는 살아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그 시간에 우정을 깊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하고, 더 많이 쓰고, 힘이 닿는다면 여행도 하고, 이해와 통찰력을 한 단계 높이게 되기를 희망한다."

색스 박사는 "나와 내 일, 친구들에게 집중하겠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뉴스를 보지 않을 것이며 정치와 지구 온난화 논쟁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전히 중동 문제와 지구 온난화, 불평등의 심화를 걱정하지만 이제는 내 일이 아니라 후세들의 문제라고 한걸음 물러섰다.

색스 박사는 죽음이 두렵지만,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썼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지각력 있는 존재였으며, 생각하는 동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특혜와 모험이었다"고 글을 맺었다.

색스 박사는 다양한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모은 책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로 널리 알려졌다. 임상 사례도 소설처럼 엮어내는 이 신경학 전문의를 두고 <뉴욕 타임스>는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고 불렀다. 또 파킨슨병 환자 치료기를 담은 <소생>은 로버트 드니로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에서는 자신이 병상에서 경험한 환자의 병원 생활을 신랄하게 담았으며, 이밖에도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영국의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색스 박사는 옥스퍼드대학을 나와 미국 컬럼비아대학 의료센터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뉴욕대학 의과대학원에서 신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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