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우여곡절 끝 총리 임명, 국민에 진 빚 크다

한국일보 2015. 2. 1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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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국회동의를 얻어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제43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여느 때 같으면 장기화한 사실상의 총리 공백 상태를 메워줄 새 총리의 등장을 축하하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러기 어렵다. 이 총리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제기된 의문이 끝내 말끔히 지워지지 않은 채 여권의 정치적 위기 의식에 따른 '울며 겨자 먹기'식 선택에 기대어서야 임명동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당의 반대야 어차피 정해진 운명이나 다름 없었다. 다만 여론의 대체적 반대는 물론이고 여당 내의 반발까지 고개를 들었다. 이 총리 본인은 물론이고 그를 지명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도력에 상징적 손상이 갈 수밖에 없는 결과다. 그것이 곧바로 박 대통령의 권력누수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집권 3년 차를 맞아 본격화할 적극적 국정운영의 추동력을 갉아먹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

어제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안 표결에는 새누리당 소속 의원 155명, 새정치민주연합 124명, 무소속 2명 등 281명이 참여했다. 거기서 찬성 148표, 반대 128표, 무효 5표가 나왔다. 과반수인 141표를 겨우 7표 넘겼다. 본회의에 앞서 야당이 '당론투표' 대신 반대 투표 권고가 덧붙은 '자율 투표'를 결정했는데도 그랬다. 결국 야당과 무소속 투표 의원이 100% 반대나 무효 표를 던졌다 하더라도 최소한 7표의 반대ㆍ무효 표가 여당에서 나왔다. 표결에 앞서 '반대' 입장을 공개한 이재오 의원을 빼고도 최소 6명이 '찬성'에 따르지 않았다. 한편으로 강고하게 반대론을 밀어붙인 야당은 막판에 지극히 정상적 국회 운영에 임했다. 새 지도부의 국립현충원 이승만ㆍ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 참배와 함께 문재인 대표 체제 출범에 따른 '강경 야당' 우려를 덜어낸 합리적 선택으로 비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민심을 변수에 넣은 정치적 계산의 결과이겠지만 본회의에 참석, 찬반토론과 표결에 차분히 임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문제는 임명동의 절차가 이 총리에 남긴 상처를 어떻게 싸매느냐다. 처음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이 총리는 오랫동안 거론된 책임총리의 최적 후보자로 여겨졌다. 수십 년 된 증빙자료를 사본까지 떠 두었다고, 제기된 의혹의 깔끔한 해명을 자신하던 그의 군색한 변명은 애초의 좋은 이미지를 거의 지웠다. 그런 상처를 안은 채로는, 박 대통령이 아무리 역할 공간을 떼어주어도 책임총리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그의 정치적 소통 역량과 행정 능력은 청문회에서 미처 거론되지 않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상처를 덜 입었다. 야당, 국회와의 소통 능력을 갖춘 '소통 총리'로서 박 대통령의 빈틈을 메우는 진정한 의미의 '보필 총리'가 될 수는 있겠다.

따라서 많은 결점을 안은 그를 총리에 앉힘으로써 박 대통령이 지게 된 정치적 책임의 이행도 결국 앞으로 그가 들고 올'소통 의제(議題)'의 적극적 수용에서 시작돼야 한다. 이르면 오늘 발표될 청와대 비서실장 인사와 일부 개각이 그 첫 시험대라 할 수 있다. 유능하고 도덕적 긴장감이 투철한 인물의 기용을 바라고, 또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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