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원세훈 원장 '지시' 받고..오후엔 카페 돌며 지침 수행

이효상 기자 2015. 2. 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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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판결문으로 본 국정원 대선개입 활동원세훈 취임 후 조직 확대..매일 '이슈와 논지' 회람휴일엔 '휴일용 지시'..설 연휴에도 '당번' 정해 활동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국정원 직원들의 인터넷 댓글 작성 과정을 판결문에 상세히 담았다. 판결문에 나타난 '댓글 담당' 국정원 직원들의 업무는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댓글 작성과 관련된 업무는 국정원 심리전단이 맡았다. 2009년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취임하며 심리전 업무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대선이 있던 2012년에는 심리전단도 4개의 사이버팀에 70~80명이 활동하는 조직으로 확대·재편됐다.

검찰이 인식한 이들의 최초 활동 시점은 2009년 2월이다. 진보 성향 누리꾼들의 활동이 활발한 일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정부의 활동을 지지하고 야당 또는 야당 정치인을 비방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2011년 1월부터는 새로운 미디어로 진보인사들이 활발히 이용하던 '트위터'에서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의 댓글 작성 활동은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19일까지 계속됐다.

업무를 수행하는 동안 심리전단 직원들은 오전에는 국정원 사무실로 출근했다가 오후에는 외근을 했다. 비밀리에 댓글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서는 매일 구두나 메모 또는 e메일 등으로 일명 '이슈와 논지'를 전달받았다. '이슈'는 직원들이 그날 집중 작성해야 할 글의 주제를 의미했다. 해당 주제를 어떤 입장에서 어떻게 쓸지에 대해 2~3줄 요약 정리한 것이 '논지'다. '이슈와 논지'를 작성하는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원 전 원장의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을 '이슈와 논지'에 반영하기도 했다.

논지 밑에는 그날 글을 작성할 계정이 적혀 있었다. 이 계정은 해당 날짜의 '당번'을 의미했다. 이 계정에 글을 쓰면 다른 직원들은 자신들의 계정으로 해당 글을 퍼날랐다. 주말에는 '주말 확산'이라는 내용의 지시가 따로 내려왔다. 설 연휴에는 '설 연휴 대응'이라는 논지가 내려왔다. 대선이 다가올수록 '보안'을 강조하는 지시가 많았다.

이렇게 지시를 받은 직원들은 오후에는 카페를 찾아 지시에 따른 댓글작업을 했다. "박근혜 통합행보에 종북좌파 멘붕" "안철수는 룸살롱 안 가봤다니 거짓말" "문재인은 역대 최약체" 등의 글을 올렸다. 활동 범위는 서울 금천구, 송파구부터 경기 용인시까지 광범위했다. 상부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사무실 인근에서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 카페 점원이나 단골 손님들의 눈길을 끌지 않기 위해 심리전단 직원들은 하루에도 3~4번씩 카페를 옮기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트위터에서 가장 왕성했다. 선거 관련 글 13만6000여회가 트윗 내지 리트윗됐다. 트위터에서는 글 작성뿐만 아니라 보수언론의 기사와 이른바 보수논객의 글을 퍼나르는 활동도 활발히 이뤄졌다. '이슈와 논지'에는 때때로 보수논객의 트위터 계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해당 계정의 글을 확산하라는 지시였다. 주로 선택된 보수논객은 변희재씨와 '십알단' 윤정훈 목사 등이었다. 트위터 가입 때는 신분 위장을 위해 해외 e메일을 사용하도록 했다.

모든 직원들이 '신문물'인 트위터 사용에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직원들은 '계정이 정지당한 경우 계정 정지를 해제하는 법'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글이 확산되도록 팔로어를 모으는 법' '트윗 글을 자동으로 리트윗하는 법' 등을 새로 배웠다는 증거도 드러났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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