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

박종훈 2015. 2. 5.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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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⑩▲ 2033년 국가 파산을 막아라!

지난달 국회 예산처는 복지를 전혀 늘리지 않더라도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2033년에 파산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았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복지혜택이 필요한 고령층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위해 세금을 내줄 청장년층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20년 먼저 고령화가 시작된 일본을 보면, 우리나라가 겪게 될 암울한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 2014년 일본 국가예산의 43%를 국채로 충당해, 나라 살림의 절반 가까이를 빚으로 메웠다. 그 결과 지난해 6월을 기준으로 일본의 국가부채는 1039조엔, 우리 돈으로 1경원에 육박하고 있다.

일본이 이처럼 천문학적인 빚을 지고도 아직까지 국가부도 사태를 겪지 않은 것은 일본의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일본 정도의 재정적자를 본다면 곧바로 국가부도 사태를 맞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가 심각해진 이유는 과도한 건설 경기 부양책을 남발한 탓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고령화와 저출산 때문이었다.

일본보다 고령화의 속도가 훨씬 빠른 우리나라가 앞으로의 국가재정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때 증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다. 그 이유는 세금이 그 어떤 군대보다 강력하고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전통까지 바꾸는 세금의 힘

제정(帝政) 러시아 귀족들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턱수염을 하고 있었다. 당시 귀족들에게 턱수염은 큰 자랑이자 귀족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유럽 유학길에 올랐던 표트르(Pyotr Alexeyevich Romanov) 대제가 돌아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유럽 유학시절 근대화된 유럽을 동경하며, 하루빨리 러시아를 근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이복 누이인 소피아(Sofia) 공주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표트르 대제는 유럽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낡은 전통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러시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런 표트르 대제가 보기에 덥수룩한 러시아 귀족들의 턱수염은 낡아 빠진 전통에 불과했다. 그는 유럽의 날렵한 콧수염에 비해 지저분한 턱수염은 러시아의 후진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해 귀족들에게 수염을 깎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러시아 귀족들은 자신들의 긴 수염은 신이 내려주신 것이라며, 목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턱수염을 자를 수는 없다고 강하게 저항했다.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을 전근대적으로 탄압하는 대신, 한 발짝 물러서는 척 하면서 꾀를 냈다.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허용하되 '턱수염세'로 100루블, 지금 화폐가치로 400만 원 정도를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금을 낸 귀족에게 그 징표로 동전을 하나 지급했다. 러시아 귀족들은 턱수염을 깎지 않는 한, 세금을 냈다는 뜻으로 항상 동전을 휴대해야 했다. 이 동전에는 "턱수염은 쓸모없는 짐이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세금의 효과는 그 어떤 제재나 탄압보다도 강력했다. 일부 귀족은 세금을 내고 턱수염을 길러 끝까지 전통을 수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잠시뿐이었고, 결국 세금에 굴복해 러시아 귀족들은 하나둘씩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 마침내 세금 앞에서 러시아의 전통은 힘없이 무너지고 가장 완고했던 귀족들조차 턱수염을 포기하였다. 결국 제정 러시아는 1772년, 귀족들의 자랑이었던 턱수염이 없어지자, 용도가 사라진 턱수염세를 폐기했다.

▲ 어떻게 증세하느냐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세를 해야 할까?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업이 가져가는 몫이 너무 큰 반면, 가계의 몫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그렇게 가져간 돈을 쌓아놓기만 할 뿐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혈액처럼 계속 흘러야 하는 돈이 일단 대기업이라는 우물에 갇히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세금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적절히 활용해 돈의 과도한 쏠림 현상을 막고 돈을 다시 흐르게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과도한 돈을 쌓아두지 않고 투자에 나서도록 세금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조세 정책은 왜 기업의 투자를 유인하는데 실패했을까?

▲ 정부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난 법인세 감세

이명박 정부는 기업에 세금을 깎아주면 투자가 늘어나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며 2008년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다. 하지만 아무리 법인세를 낮춰도 기업들은 늘어난 이윤으로 투자를 늘리기는커녕 돈을 쌓아두는 데만 급급했다. 3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2008년 37조원에서 단 5년 만에 158조원으로 급증했지만, 그만큼 투자를 늘린 기업은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에 유리한 온갖 공제제도 덕분에 재벌에게는 법인세 세율도 큰 의미가 없다. 특히 삼성전자는 2012년 한 해 동안에만 1조 8천억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감면받았다. 삼성그룹 전체도 아니고 삼성전자라는 기업 단 하나가 감면받은 법인세가 전체 기업 법인세 감면액의 5분의 1이나 되었다. 그 결과 삼성전자에 적용되는 법인세 실효세율은 웬만한 중소기업들보다도 낮아졌다.

정부가 이렇게 재벌들에게 천문학적인 세금 감면을 해주면서 내세운 명목은 세금을 깎아주면 재벌이 고용을 창출해 한국 경제 전체적으로는 이득이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2011년 이후 3년 동안 당기 순이익이 14조 원에서 23조 원으로 1.5배가 넘게 늘어났지만 100,353명이었던 정규직 직원은 오히려 4,377명(2014년 6월말 기준)이나 줄였다. 결국 대규모 법인세 감면은 사실상 정부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끝나고 만 것이다.

▲ 그렇게 쉽게 따먹을 수 있는 열매는 없었다

기업에 법인세만 깎아주면 경제가 좋아진다는 감세의 달콤한 유혹은 정부 관료나 정치인들을 쉽게 사로잡는다. 세금을 깎아주는 일이니 정부가 누구에게 욕먹을 필요도 없고, 기업에 선심을 쓰면 경제까지 좋아진다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지만 그들의 헛된 희망과 달리 현실에서는 '법인세 감세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기업이 투자하느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것은 법인세 세율 몇 %포인트가 아니라 시장의 전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세계적인 불황으로 믿었던 수출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민간소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가 대기업에만 이윤을 몰아준 탓에 그만 가계의 몫이 쪼그라들면서 소비 기반이 크게 약화되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법인세 감세는 대기업 쏠림 현상을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소비를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증세를 논의한다면 과거처럼 기업의 몫을 늘리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어떻게 민간 소비를 다시 회복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미래의 소비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다음 세대에 대한 투자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 같은 정책이 선행돼 민간 소비가 살아난다면 법인세가 조금 더 높아지더라도 기업은 얼마든지 다시 투자를 시작할 것이다.

이제 고령화와 저출산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구조는 급격히 바뀌고 있다. 과거의 경제 정책을 고집하다가는 이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어떤 군대보다도 강력한 조세 정책을 '제대로' 개혁해 추락하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되살릴 수 있다면 우리의 노후와 자녀들의 미래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미국 GE사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Jack Welch)는 "조직 외부의 변화속도가 조직 내부의 변화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은 몰락이 머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하였다. 만일 우리 경제정책이 빠르게 변하는 외부환경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우리의 몰락은 머지않을 것이다.

* 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본 편의 제목은 미국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남긴 "은행은 군대보다 더 무서운 무기다"라는 말에 대한 오마쥬(Hommag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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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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