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역경을 뛰어넘은 러브 스토리

2015. 2. 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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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로맨스를 꿈꾼다. 백마 탄 왕자와의 꿈같은 로맨스는 아닐지라도, 내 눈에는 완벽한 나만의 이상형과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것. 평범한 노부부의 사랑을 담은 다큐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그토록 인기몰이를 한 것도 소박하면서도 진실된 로맨스를 향한 많은 이들의 갈망이 반영됐기 때문일 거다. 이달, 코스모는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뛰어넘는 위대한 사랑의 힘을 몸소 증명한 아름다운 커플들을 만나봤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러브 스토리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story 1. 사랑에 장애가 있나요?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도전하며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그의 멋진 영혼을 알아볼 줄 아는 여자. 그 어떤 커플보다 완벽한 그들의 사랑 이야기. -권주리(30세, 뮤지컬 배우) & 박항승(30세, 교사)

그를 만난 건 6년 전 소개팅에서였어요.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팅 전날 밤에야 알게 됐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당황했지만 이미 잡은 약속을 취소할 수도 없으니 일단 소개팅에 나갔죠. 약속 장소는 강남역. 당시 여름이었는데, 반팔 티셔츠를 입은 그가 팔 한쪽이 없이 걸어오더군요.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어요. 만나자마자 자기 소개를 하고, 바지 한쪽도 걷어 올려 의족을 보여주더라고요. 깜짝 놀랐죠. 그런데 사는 얘기를 들어보니까 저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더라고요. 장애가 있음에도 그것이 크게 불편하지 않은 듯 행동하는데, 그의 건강한 마음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대화도 잘 통했고, 꽤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남역 7번 출구에서 작별 인사를 하며, 그는 “다음에 인연이 되면 또 봬요”라고 하더군요.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았고요. 나름 그를 괜찮게 봤던 터라 좀 실망을 했어요. 사실은 제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서 연락을 못 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요.

6개월 뒤, 그와의 만남을 서서히 잊어갈 때쯤 대전에서 지내던 그가 시험을 끝내고 서울에 올라왔다며 만나자고 연락이 왔어요.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가 이번 겨울에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그때 저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터라 같이 가자고 제안했죠. 2박 3일 내내 같이 여행을 하면서 이성적인 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도 그랬는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뒤 저에게 고백을 했어요. 허브아일랜드에 데려가더니, 가방에 숨겨뒀던 꽃을 내밀며 수줍게 고백하더라고요. 기분이 정말 좋았지만 한 번쯤 튕겨줘야 할 것 같아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죠. 그렇게 거절을 당하면 자존심이 상해 포기할 법도 한데, 일주일 뒤에 저를 또 찾아와서 진심 어린 표정으로 또다시 고백을 하더군요. 저는 그에게 제 단점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죠. “난 성격도 더럽고 청소도 잘 안 한다. 단점이 정말 많다. 나의 바닥까지 사랑할 수 있겠냐?”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는 “자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2011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 한강에서 세 번째 고백을 받고 결국 우리는 사귀게 되었어요. 

연애를 시작한 뒤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저희에게도 위기는 있었어요. 연애 초반 부모님에게 그를 소개해주려고 데려갔는데, 그의 모습을 보시고는 “그냥 친구로 잘 지내라”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얼마 뒤 부모님에게 친구가 아니라 사귀는 사이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셨어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니까 저도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정말이지 거의 매일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눈물 흘리고 있는 제 옆에서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장애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바꿀 수 없는 걸 슬퍼하지 말고 같이 해결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라고요. 그때 그의 말을 듣고 ‘와, 이 남자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여자들이 원하는 게 그거잖아요. 어려운 순간이 찾아왔을 때 주저앉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 말이에요. 그때부터 저도 울기만 할 게 아니라 엄마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를 우리 집에 자주 오게 만들었어요. 장작 패는 것도 보여드리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모습도 보여드리면서 신체적으로 불편한 점이 있지만 그것이 삶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게 나와의 사랑에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드렸어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나니, 점점 부모님도 그의 진면목을 알아보시더군요. 이제는 오히려 아빠가 “사는 데 장애는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는가가 중요한 거다” 이런 얘기를 해주시고, 종종 제가 “아,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하면 오히려 “넌 살면서 고민할 게 얼마나 많은데 그깟 다리 한쪽 때문에 고민하고 있느냐?”라고 핀잔을 주시죠.

그는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거나 절망하지 않아요.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장애 때문에 자기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제한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저는 그가 세상의 재미있는 것들을 더 많이 경험하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늘려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라며 도전 과제를 던져줬죠. 그는 보드를 타기 시작했고, 수영, 요리에도 도전했어요. 그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오히려 제가 말릴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요. 의족을 끼고 스노보드를 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정말 누구보다 열심히 타죠. 스노보드를 한 번 타려면 의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살이 뭉개질 정도로 고통을 감수해야 해요. 그런데도 너무 즐거워하면서 4~5시간을 멈추지 않고 타는 거예요. 제가 “도대체 뭐가 그렇게 재밌느냐”라고 물었더니, 그는 “내가 기억하는 한 내 인생에 이런 스피드로 달려본 적이 없다. 늘 의족을 끼고 달리기 때문에 이제까지 나는 빨리 뛸 수가 없었는데, 스노보드를 타면 빠르게 달릴 수 있다. 그래서 보드를 타면 너무 벅차고 가슴이 뛴다”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데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죠. 우리는 성향도 많이 다른 편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장점을 키워주며 더욱 멋있는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정말 인연을 만나면 ‘종이 울리는’ 경험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종소리를 듣진 못했지만 그와 함께라면 평생 재미있게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드는 걸 보면 우리가 인연임은 분명한 것 같아요.

4년간의 열애 끝에 드디어 우리는 결혼을 해요. 결혼식에서도 보드를 타면 좋겠다는 그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렴해 강원도의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차림으로 스노보드를 타고 행진하는 신랑 신부, 아름답지 않나요? 하하.

story 2.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사랑하기에 그의 불치병조차 두렵지 않았던 여자, 사랑하는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헌신적인 서포터즈를 자처한 남자.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이상적인 사랑의 정의를 실현한 이들의 아름다운 로맨스. -고민정(37세, 아나운서) & 조기영(48세, 시인)

대학교 1학년 때, 동아리 방에서 그를 처음 봤어요. 당시 그는 졸업한 선배로서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잠시 학교에 들른 거였는데, 완전 새내기인 저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저 대선배님으로 그를 대했지만 그는 계속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나중에 말했어요. 그러다가 친한 선배와 후배로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죠. 제가 심적으로 너무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그가 대뜸 “바다 보러 갈래?” 하더군요. 해변을 거니는데 그가 음악을 한 곡 들려줬어요. 푸른하늘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기 위함이 아니라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그걸 듣고 ‘아, 이 사람이 나를 여자로서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어쨌든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는 연애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서울 집을 정리하고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으로 내려갔어요.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돌봐드려야 하고 조용하게 고향 집에서 글을 좀 써야 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를 자주 볼 수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었는데, 동아리 선배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조기영 선배,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병에 걸렸대. 불치병이라는데?” 하필 날씨도 너무 좋은 봄날이었죠. 그에게 전화해서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고 펑펑 울었어요. 그는 “네가 나 같은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게 너무 미안하고 못된 일을 하는 것 같다”며 헤어지자는 얘기를 어렵게 꺼내더라고요. 물론 저는 싫다고 했죠. 그가 불치병에 걸렸다 해도 ‘어떻게 하면 이 사람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지,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되지?’ 같은 고민은 아예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왜 당신은 빨리 병을 털어버릴 생각은 안 하고 나를 밀어내려고만 하느냐. 그런 말 하지 말라달라”고 말했죠. 저는 어떻게든 그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과 각종 서적을 뒤적이며 치료약을 찾고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을 연구했어요.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비를 벌어 매주 그를 보러 정읍에 내려갔죠.

내려갈 때는 그를 만난다는 생각에 웃으면서 내려갔다가 올라올 때는 병이 더욱 악화된 모습을 보면서 올라와야 되니 정말이지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어요.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세 시간 내내 울곤 했죠. 얼마 뒤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 병을 치료하는 클리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치료를 받기 시작하니 눈에 띄게 병세가 호전되더군요. 완치라는 것은 없는 병이기 때문에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회복이 되었어요. 그리고 저는 4학년이 되었죠. 졸업 후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저에게 그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제안했어요. 그리고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었고요. 카메라 테스트를 연습하도록 캠코더로 저를 촬영하며 피드백을 해주고, 직접 작문 코칭도 해주었죠. 열정적인 그의 개인 교습 덕분에 저는 아나운서라는 꿈을 이루게 됐어요. 그가 저에게 정말 특별한 존재인 것은, 단순히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그 재능을 갈고닦게 이끌어준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이자 인생의 스승과 같은 존재랄까요? 지금 우리는 결혼해서 귀여운 두 아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종종 싸우기도 하지만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옛날에 함께했던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그때를 회상하면서 “우리가 그런 시절을 같이 겪어왔지. 그땐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렇게 행복했는데”라는 얘기도 하고, 함께할 수 있는 현재의 삶에 고마워하기도 하죠. 요즘은 부부 MC로 KBS2 <결혼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그와 함께이기에, 인생이 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아요. 정말로요!

Editor 김혜미 Photo (메인)GettyImagesBank, (커플)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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