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증세하면 정말 경제가 무너질까?

박종훈 2015. 2. 2.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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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⑨

지난 연말 세수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부자증세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증세를 하면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며 부자증세 논의를 일축하였다. 더구나 일부 경제연구소나 경제단체는 부자 증세를 하면 당장이라도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런데 지난달 20일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경제 1등 미국'을 내세우며 상위 1%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선언하였다. 그리고 모든 이들이 소득을 늘리고 기회를 창출하는 경제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확보된 세수를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부자 증세가 경기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리 정부의 주장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 정부의 주장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 미국 경제를 둔화시킬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오바마 대통령은 무엇을 믿고 상위 1%에 대한 증세와 교육 투자를 외치고 있는 것일까?

◆ 위대한 번영의 비밀

미국에서 부유층에 대한 세율이 가장 높았던 시기는 바로 194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였다. 1951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은 40만 달러를 초과하는 '슈퍼 부자들'의 소득에 대해 최고 91%의 연방소득세율을 적용하였다. 최근 프랑스에서 논란이 됐던 부유세 세율이 최고 75%였던 것에 비교하면 당시 미국의 소득세율이 얼마나 높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유층의 세율을 1% 포인트만 올려도 경제가 망할 것처럼 우려하는 사람들에게 90%가 넘는 최고 소득세율은 당장 경제가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세율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려를 비웃 듯 당시 미국 경제는 경이로운 호황을 누렸다. 중산층의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기업의 투자가 늘어났고, 일자리가 끊임없이 창출되었다.

경제원론은 왜 빗나갔을까?

학부 수준의 '경제원론'만 배운 사람들은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높이면 부유층의 근로의욕과 투자가 줄어 경기 불황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쉽게 결론짓는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이론과 달리 실제 사람들의 행동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의 부유층은 자신의 성취동기나 과시욕, 명예 때문에 세금을 아무리 높여도 노동 공급을 줄이거나 투자를 꺼리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의 투자가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과거에 세율이 최고점이었을 때도 내 주변의 부자들은 투자를 주저하지 않았다"며 슈퍼 부자들에 대한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경제 원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제 현상이 대거 목격되면서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행동 경제학'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호황을 누린 또 다른 이유는 이렇게 걷은 막대한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미래세대에 투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사립대학 학비의 5분의 1에 불과했던 공립대학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1960년대 말에는 전체 4년제 대학생의 70%가 공립대학 학생이 될 정도가 되었다. 이 밖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공교육을 강화한 덕분에 많은 청년들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을 꿈꿀 수 있었다. 미국의 국무장관까지 지낸 콜린 파월(Colin Powell)이 바로 이 같은 청년 투자 덕분에 가난을 딛고 역전에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부자 감세가 호황을 가져온다는 신화는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에서 부자 감세를 가장 확실한 경기 부양책으로 신봉하는 세 명의 대통령이 나타났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대통령과 두 명의 조지 부시(George Bush)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의 대통령이 아무리 대대적인 감세를 단행해도 미국 경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세수 부족 사태가 심각한 상태에 빠지자 절대 증세는 없다던 자신의 약속을 깨고 증세를 단행하였다. 그리고 아들 부시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정책 이후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는커녕 임기 말에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어야 했다. 1970년대 이후 미국 경제가 가장 좋았던 시절은 잠시나마 부자 증세를 단행했던 클린턴 대통령 시절이었다. 결국 부자 감세가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우리나라 일부 경제 관료들의 주장은 아직 실증적 증거가 부족한 '신화(神話)'에 불과하다.

이처럼 부자 감세가 계속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당한 것은 미국의 미래 세대였다. 세수가 부족해진 미국 정부가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투자와 청년을 위한 일자리 정책을 우선적으로 축소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뉴욕타임스의 유명 컬럼리스트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Nicholas Kristof)는 그동안 부자 감세 열풍으로 '미래를 위한 씨앗'인 미국의 교육이 정체되어 왔다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그리고 이 같은 미국의 상황이 암울한 미래의 전조가 되지 않으려면 오바마 대통령의 증세 정책이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국 vs 미국,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결국 오바마 대통령은 독창적인 경제 정책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성장할 당시의 정책 기조로 '아주 조금만'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경제정책이 미국 의회를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만일 미국인들이 워렌 버핏처럼 미국의 역사를 왜곡 없이 기억하고 있다면 성공하겠지만, 대다수 미국인들이 과거를 잊고 오늘의 영광에 안주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어떠한가? 지금 한국에서는 연말정산 대란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하지만 모든 이들의 세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점에서 조세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로 세울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가 1950년대 미국처럼 엄청난 증세를 단행할 필요는 없다. 단지 이 기회에 대다수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조세 체계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면, 우리도 재도약의 기회를 분명히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본 기자가 연구한 '추격의 경제학(Economics of Catch-Up)'의 내용을 인용하자면, 가장 큰 위기가 동시에 가장 위대한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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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기자 ( jongho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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