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환자 모아오는 브로커가 甲.. 수익 90% 가져가기도"

2015. 2. 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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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시급한 '탈법 성형수술']
中환자 뇌사로 본 성형외과.. 구조적 문제부터 풀어야

[동아일보]

"전업하기를 잘했어요. 성형업계는 희망이 없어요. 원장은 '환자를 만들어서라도 데려오라'며 불법을 강요하는데 더이상 버틸 수가 없었어요."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사무장에서 최근 다른 업종으로 전업한 김모 씨는 28일 한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중국인 여성이 뇌사 상태에 빠진 사고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성형업계가 바뀌지 않으면 이런 일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불법 브로커, 지나친 광고가 주원인

성형외과 불법, 탈법의 원인으로는 브로커 고용이 꼽힌다. 경쟁이 치열해진 성형외과들이 브로커를 고용해 외국인 환자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로커가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환자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고 유령 의사를 고용해 짧은 시간 안에 수술하는 등 불법이 벌어지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전국 성형외과는 1500여 곳. 하지만 업계에서는 서울 강남에만 3000여 곳이 성업 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성형외과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성형업계는 중국인 환자가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형 부작용 등에 관한 보도가 잇따르며 국내 환자는 줄어든 반면에 중국인 환자는 최근 몇 년 새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남인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전체 외국인 환자 21만 명 중 성형외과 환자는 2만4075명(8.6%). 이 중 중국인 환자는 1만6282명으로 전체의 67%에 이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성형외과 원장은 "불법 브로커를 통해 들어온 중국인 환자까지 합치면 공식 통계의 5∼6배는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환자가 많아도 업계의 실제 수익은 적다. 중국인 유학생, 재중 동포, 여행사 직원 등인 브로커는 환자를 유치하고 병원이 얻는 수익의 30∼50%를 가져간다. 많게는 90%를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한 성형외과 사무장이 "브로커가 갑(甲)이고 우리가 을(乙)"이라며 "브로커들이 인천공항에서도 환자를 모아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과다한 광고비 지출도 불법과 탈법을 부추기는 요소다. 성형외과 광고는 2012년부터 허용돼 현재 버스, 지하철, 극장에서도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의료광고 심의 현황'을 보면 2011년 602건이던 성형외과 옥외광고는 지난해 3428건으로 5.6배 이상으로 늘었다. 서울 강남 '빅5' 성형외과의 경우 한 달에 5억∼10억 원의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객관적 정보 제공하고 유령 의사 단속해야

의료계 안팎에서는 현재 한국 의료관광 산업의 문제점으로 불법 브로커라는 '비공식 경로'를 통해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가 많다는 점을 꼽는다. 이에 따라 우리 의료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국제적으로 제대로 알리고,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상반기에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기 적합한 병원인지를 알려주는 '인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상급종합병원과 일반병원 중 연간 외국인 환자 수가 일정 규모 이상인 곳을 대상으로 △진료비 투명성 △통역의 수월성 △전담 인력 수 △안전 관련 행정 제재 여부 등을 평가한 뒤 '정부 인증'을 주겠다는 것이다.

강남 성형외과들 사이에서 만연한 유령 의사 수술도 해결해야 한다. 유령 의사 문제는 단속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 유령 의사 수술은 현재 공정거래법상으로는 문제가 되지만 의료법상으로는 문제가 안 된다. 김선웅 성형외과의사회 이사는 "미국의 경우 1980년대 대법원에서 의료행위는 환자가 허락한 사람만 해야 한다고 판결이 나온 뒤 대리수술 문제를 강력히 처벌하고 있다"며 "우리도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성형외과의사회에서는 국내 성형 외국인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부가가치세를 환급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유치 환자 수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바가지요금 등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성형 의존도 줄이고 의료관광 체질 개선해야

의료관광 산업의 전체 규모를 키우려면 성형외과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2013년 기준 외국인 환자 대상 총 진료비 수입은 3934억 원. 이 중 성형외과는 829억 원으로 21%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에 중증질환을 많이 다룰 수 있는 내과(통합)와 일반외과는 각각 670억 원(17%)과 341억 원(8.6%)에 그쳤다.

성형 의존도를 줄이려면 주요 대학병원들이 경쟁력을 가진 중증질환자 유치에 더 공들여야 한다. 진료비 수입 증가는 물론이고 단기간에 국내 의료기술의 인지도 상승효과가 가능하다. 성형외과처럼 개인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중증질환 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검증된 의료진과 안전 시스템도 기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금지돼 있는 보험사들의 외국인 환자 유치 상품 개발 등을 허용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양균 경희대 경영학부(의료경영) 교수는 "한국 의료기술의 수준을 감안할 때 러시아와 중국 등의 중증질환 환자를 지금보다 더 많이 유치할 수 있다"며 "국내 보험사들과 메이저 병원들이 연계된 건강보험 상품을 개발해 해외에서 판매하는 식의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민병선 bluedot@donga.com·이세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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