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니페스토 도입 10년, 어떻게 변했나

박영준 입력 2015. 2. 1. 19:14 수정 2015. 2. 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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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페스토 10년 明] 2005년 4월 세계일보 보도로 '물꼬'
"공약 현미경 검증".. 깜깜이 선거→정책선거 대결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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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세계일보가 국내 종합일간지 중 최초로 매니페스토( Manifesto·유권자에 대한 계약으로서의 정책공약)를 소개하고 국내 도입을 촉구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세계일보 2005년 4월14일자 1면 참조〉 유권자를 현혹하는 '공약'(空約)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풍토를 '지킬 수 있는 공약', '책임지는 공약'으로 바꿔보자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매니페스토 운동은 빠르게 외연을 넓혀왔다. 이제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뽑는 선거 등에서 정책공약 발표는 필수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무늬만' 매니페스토 선거일 뿐 여전히 인물·지연·학연·이념 등이 승부를 좌우하는 게 현실이다. 세계일보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매니페스토 운동 10년의 명암과 향후 과제를 짚어봤다.

매니페스토 운동이 도입된 2006년 '초고령 도시'인 전북 김제에서 놀라운 변화가 시작됐다. 경로당을 리모델링해 지역 노인들의 문화센터, 공동 주거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룹홈(Group Home) 제도' 공약이 현실이 되면서다. 자연스럽게 독거 노인의 사회안전망이 구축됐고 독거노인 문제가 풀리게 됐다. 2006년 2곳으로 출발한 김제의 그룹홈은 2015년 현재 130여곳을 넘어섰다. 그룹홈 제도가 성과를 내자 주변 지자체들이 이를 '벤치마킹'하며 비슷한 제도를 앞다퉈 도입했다. 지자체 간 정책 경쟁이 불붙은 것이다.

◆메니페스토 10년 어떻게 변했나.

2005년 4월 세계일보 탐사기획 보도로 물꼬가 트인 우리나라의 매니페스토는 2006년 제4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부터 시민사회 운동 등으로 이어지며 윤곽이 잡혔다. 지방자치와 맞물린 매니페스토 운동은 '깜깜이 선거'가 정책선거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기존 시민단체들이 낙천·낙선 운동 중심의 부정적 선거 캠페인을 벌인 탓에 정책·공약 검증 중심의 긍정적 선거 캠페인은 신선하게 받아들여져 착근에 성공했다.

17대 대선 이듬해인 2008년 2월에는 선거공약 및 추진계획으로 각 사업의 목표·우선순위·이행절차·이행기한·재원조달 방안을 게재하는 선거공약서를 작성하는 법안이 마련됐다. 추상적인 공약, 중간 목표 없는 장기적 공약 등 무의미한 공약이 줄어드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정책의 질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좋은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붐이 일었고 정책 경쟁이 벌어졌다.

2010년 5회 지방선거에선 중앙선관위를 중심으로 매니페스토 운동이 본격화했다. 선관위는 210여회의 정책선거 실천협약식을 진행했고 정책선거 설명회 160여회, 토론회·간담회 300여회를 개최했다. 선거와 정당,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도 활성화됐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는 '공약정보센터'를 개설했고 언론과 시민단체의 관심이 높아졌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자유선진당, 통합진보당이 총선 10대 공약을 공개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핵심공약이 '일자리 창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 양당 공약을 비교할 수 있게 됐다.

충청남도 공약배심원들이 지난해 10월 25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관계자들로부터 2014년 지방선거 공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사진제공=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매니페스토 운동은 현재진행형

매니페스토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지자체의 매니페스토 활동을 중앙정치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한 해 앞둔 올해 정책경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새누리당은 최근 "현장에 답이 있다"는 판단 하에 현장정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는 지난달 19일 제주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22일에는 불모지인 전북 전주에서도 최고위원회의를 가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는 4월 정책엑스포를 계획 중이다. 일반인부터 전문가 그룹까지 다양하게 참여해 '좋은 정책'을 함께하고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각 지자체와 지방의원은 지역에서 성과를 거둔 정책이나 조례 등을 엑스포에서 공유하고, 직능단체는 국회의원 후원이나 출판기념회, 입법로비가 아니라 공개적인 장에서 정책 출품을 통해 입법 창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빠르게 자리 잡은 반면 중앙정치가 뒤처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대 총선 당시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역구 후보 가운데 의정활동 계획서를 제출한 386명의 핵심공약 1182개를 분석한 결과 전체 공약 중 절반이 넘는 636개(54%)는 복지·일자리 확충, 경제민주화 같은 소속 정당의 정책기조와 동떨어진 재개발·재건축·도로 및 산업단지 조성 등의 개발공약인 것으로 나타났다. 총선 1년 뒤인 2013년12월 여야 의원은 '국회 매니페스토 연구회'를 창립하고 국회의원, 지방의회 의원 선거 후보자도 선거공약서를 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현출 국회입법조사처 심의관은 1일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중심으로 매니페스토 운동이 성과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지만 중앙정치나 총선, 대선에선 아직 논의가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이 심의관은 "매니페스토가 제도화되면 선거과정에서 국정의 중요한 논점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고 정책 선거를 통해 각각의 안건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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