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사를 관통했던 차부자의 'A매치 207경기 63골'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입력 2015. 2. 1. 13:39 수정 2015. 2. 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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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차범근의 통산 A매치 기록은 132경기 59골(121경기 55골에서 기록 수정-2014년 11월 4일 스포츠한국 단독 보도). 그의 아들이자 1월 31일부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차두리의 통산 A매치 기록은 75경기 4골.

차 부자(父子)의 A매치 통산 기록은 207경기 63골로 막을 내렸다. 물론 차두리의 아들 차아일(5) 군이 이 기록을 이어나갈 수도 있지만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차범근과 차두리는 207번의 A매치를 통해 한국 축구사의 심장을 관통하는 감동의 대서사시를 남긴 채 그렇게 빨간 유니폼을 벗었다.

차두리는 1월 31일 열린 2015 AFC 아시안컵 결승전 호주와의 경기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이미 대회전부터 여러 차례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할 것임을 알렸었기에 마음의 준비는 되어있었지만 막상 이별의 시간이 오니 착잡한 것은 사실이다.

차두리는 2001년 11월 세네갈과의 경기를 통해 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A매치를 치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수식어와 프로선수도 아님에도 A매치를 뛰는 신분까지 모든 것이 놀라웠다. 그는 누구도 예상 못했던 대학생 신분의 월드컵 대표팀 발탁까지 성공하며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사 최고의 순간인 4강 신화를 함께 했다.

뒤이어 아버지가 활약했던 독일 레버쿠젠에 입단하면서 또 다른 놀라움을 선사했던 '원더 보이'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다소 프로로서 큰 활약을 하지 못하며 독일 1부리그와 2부리그를 전전하다 2006 독일 월드컵에는 참가조차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겪었다.

그러나 와신상담한 그 이후 2010 남아공 월드컵서 한국의 원정 월드컵 최초 16강 진출과 스코틀랜드 최강팀 셀틱 진출 등의 업적을 남기고 2013시즌부터 FC서울로 돌아와 국내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그와 함께한 FC서울은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고, 차두리는 2015년 어느덧 한국나이 36세가 됐다. 선수생활 은퇴를 선언해도 이상치 않을 나이에 차두리는 한국의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진출이라는 대업에 결정적 기여까지 하며 대표 생활을 마무리한 것이다.

월드컵 4강과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이라는 대업을 함께한 차두리보다 더 뛰어난 업적을 지닌 것이 차범근이다.

한국 A매치 역사상 최다골(59골), 한국인 최초의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가입을 했던 차범근은 클럽 선수로서도 엄청난 업적(분데스리가 98골)을 이뤘지만 단 한번 출전한 월드컵에서도 한국 축구사와 함께했다.

당시 그가 출전했던 1986 월드컵은 한국의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이었고 당시 차범근은 33세의 나이로 후배들을 이끌고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이 월드컵에서 한국은 월드컵 역사상 첫 골(박창선), 첫 승점(불가리아전 무승부)을 따냈고 이 자양분으로 16년 후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4강은 가능했다.

이처럼 부자는 한국 축구사의 가장 중요하고 영광의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게 그들이 남긴 A매치 207경기 63골의 기록은 비록 잠시 멈췄지만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숨쉬고 있다.

스포츠한국미디어 이재호 기자 jay12@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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